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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할머니가 일본어 어머니는 한국어, 외손자는 영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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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2 12:20

할머니가 일본어로 쓴 시 어머니는 한국어, 외손자는 영어로 옮겨
 
·양국 문화받은 손호연 시인 뜻 기려
외손자 결혼식서 시집 전달
  
지난 516일 오후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서울 광진구 야외 결혼식장에서 일본 도쿄에서 활동하는 국제변호사 앤드루 정(30)씨의 결혼식이 열렸다. 하객 100명이 참석한 예식이 끝날 무렵 한복을 곱게 입은 정변호사의 어머니 이승신 시인이 마이크를 잡았다.

"시인이셨던 앤드루의 외할머니는 30년 전 Oswego 뉴욕의 바다같이 큰 호수 앞에서 낳은 첫 손주를 본 그 아름다운 순간을 시로 썼습니다. 7년 전 세상을 다하셨지만 의식이 다하는 순간까지 앤드루를 가슴에 담고 기도하셨지요" 하객들의 손에 '가슴 깊이 아로새겨진 한 줄 사랑의 시'란 부제가 붙은 할머니의 단가집(短歌集) '러브 레터' Love Letter가 전해졌다.

단가(短歌)란 우리가 1400년 전 일본에 전해준 31자의 정형시이다앤드루 리 정 변호사의 외할머니는 한국적 정서를 담은 단가 2000여수를 지어 일본에서도 '단가의 대가(大家)'로 불리는 손호연 시인이다. 손 시인은 일본 유학시절 단가를 배워 2003년 작고할 때까지 '호연가집' '무궁화' 등 시집 7권을 냈다. 그가 지은 단가는 '현해탄을 잇는 단가의 구름다리' '일본 열도를 울린 무궁화의 노래' 등으로 불렸다.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과 평화의 시라는 평가를 받았고 한일 양국 정부로부터 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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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결혼식을 올린 국제변호사 앤드루 정씨가 어머니 이승신 시인과 함께 일본 단가 시인으로 유명한 할머니 손호연 시인을 회상하고 있다. 이 시인은 손 시인의 시를 한국어로, 앤드루 정 외손주는 영어로 번역하여 출간했다 / 이재호기자 superjh@chosun.com
 
특히 지난 20056월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고이즈미 수상이 연설 중 손 시인의 단가인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라는' (誠実みがれにありいのなきなれ)을 읊고 그의 평화정신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손 시인은 1998년 일왕이 주재하는 신년어전가회(新年御前歌會)에 외국인으론 처음으로 초청 받아 한복을 입고 일왕 부부가 낭송하는 자작시를 듣기도 했다. 또 다른 책 한 권은 해외에서 온 국제변호사들에게 건네졌다. '손호연 시 그리고 그림' (Son Hoyun Poems & Pictures)이다. 손 시인이 일본어로 지은 단가를 딸인 이 시인이 우리 말로 옮기고 외손자인 정변호사가 영어로 번역한 '3() 시집'이다

단아한 그림을 곁들인 3개 국어의 짧은 시구 하나가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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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시인이 쓴 'ゆく人生学たるして'를 이 시인은 '흐르는 강물에 인생을 배우고 서있네 지나온 날들 물에 띄워 보내며'로 글맛을 살렸고 정변호사는 'Standing at a river pondering   I float my past days   Away on the water'로 옮긴 것이다.

이 시인은 "어머니의 시를 한국말로 옮기고 책을 펴내면서 사랑과 평화를 간절히 바랐고 임을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를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어머니가 생각했던 그 뜻을 곱십으며 우리 말로 옮기느라 한 권의 책을 내는데 3년 반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뉴욕에서 태어난 앤드루 정변호사는 최고 명문 사립학교인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 후 학교를 나오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지만 검정고시GED를 통해 미국 보스턴 칼리지 심리학과에 입학했고 이어 와싱톤의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거쳐 국제변호사가 되었다.

정변호사는 "방황의 시절, 서울의 할머니가 보내준 편지와 엽서를 보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고 했다"나라는 존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항상 '네가 최고' 라는 글귀를 적어 보내 주셨어요" 외손자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손 시인은 의식이 다하는 순간에도 '앤드루' 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외손자 정변호사는 "어릴 적 할머니는 늘 맛난 것과 쌈짓돈을 챙겨 주시던 '그냥 할머니' 였는데 할머니의 단가를 한 구절씩 읽어가며 그의 내면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단가의 짧은 시구들이 이 3대의 마음을 이어주고 있었다
 
 
 
 
조선일보 2010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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