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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 일생 한일 평화 노래한 어머니 바람 이루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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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1 14:28
 
한국일보 2005  6  22
 
평생 한일 평화 노래한 어머니 바람 이루어졌으면



고이즈미  日총리 언급 단가 시인 손호연씨 딸
단가는 향가에 뿌리 둔 노래 자부심
"국경 초월한 노래"  일본서 더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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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녀 이승신 시인이 무궁화가 그려진 어머니 손호연 시인의
두 번째 단가 시집 ‘제 1무궁화(1958)’를 소개하고 있다. 김주성 기자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어라
切実な望みが一つ吾れにあり諍いのなき国と国なれ 

 20일 한ㆍ일 정상회담 직후 두 정상이 보도진에게 설명하는 내용을 TV로 지켜보던 이승신 손호연단가연구소 이사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손호연 어머니의 시를 인용하는 것을 보고 남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21일 시인의 집 ‘더 소호’에서 만난 이이사장은 “단가를 통해 평생을 사랑과 평화, 특히 한ㆍ일 양국의 평화를 노래해 온 어머니의 노력이 이제야 결실을 맺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손씨의 시를 인용한 뒤 “한국과 일본에서 활약해 온 손 시인의 시를 최근에 접하게 됐다”며 “다툼 없는 나라가 되기 바라는 시심은 시인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국민의 희망이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단가는 31자로 된 5ㆍ7조의 짧은 시로 일본의 국시 國詩로 일컬어진다.  17자 정형시 하이쿠俳句의 모태가 바로 단가다
 
고이즈미 총리가 세 번이나 언급한 손호연 시인은 유일한 한국인 단가 시인이었다
그는 일제 때 일본 동경 제국여자대학에 유학하던 중 유명한 고전 문학의 대가였던 사사키 노부쯔나를 통해 단가에 입문했다  유학 시절을 제외하곤 평생을 서울 종로구 필운동의 오래된 한옥에 살면서 시를 썼는데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60여 년 동안 2,000여 편의 단가를 지었고 일본의 유명 출판사 고단샤에서 시집을 6권이나 펴냈다. 단가의 최고 권위자 나카니시 스스무 교토예술대 총장으로부터 “일본인들이 흉내낼 수 없는 한국인의 감정을 담아낸 국경을 초월한 노래”라는 격찬을 받는 등 ‘명인名人’ 칭호를 얻었다  98년에는 단가의 대가로 천황의 초청을 받기도 했다

2000년엔 한ㆍ일 문화 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 훈장을, 이듬 해엔 같은 공로로 일본 정부 표창을 받았다  일본에는 아오모리현 로카쇼무라에 그를 기리는 시비도 세워져 있다
 
손 시인은 형식은 단가를 빌렸지만 내용은 한복이나 장독대 등을 소재로 한국의 전통 문화와 두 나라가 다툼 없이 지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았다  장녀인 이이사장은 “어머니는‘한국 사람이 왜 일본 시를 짓느냐?’는 질타도 받으셨어요  하지만 단가의 뿌리가 우리의 향가라고 굳게 믿고 오히려 더 자부심을 갖고 진력하셨지요”라고 말했다
 
다섯 권의 시집에 ‘무궁화 1~5’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윤모 변리사협회장의 아내이자 5남매의 어머니로서 해방ㆍ분단ㆍ전쟁의 아픔을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킨 손시인은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경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인 희로애락의 표현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과거 앙금을 조금이나마 삭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시인은 어머니 이름을 딴 문화상 제정 등 각종 손호연 기념사업 www.sonhoyun.co.kr을 준비 중이다.  3년 전‘호연연가 戶姸戀歌 - 찔레꽃 뾰족한 가시 위에 내리는 눈은 찔리지 않으려고 사뿐히 내리네'(샘터사)를 기획 번역하여  펴낸 데 이어 최근엔 시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을 마쳤다
 
이이사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미국에 유학, 20여 년간 TV 방송 앵커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귀국 후 한국 방송위원회와  삼성영상 제일기획 고문 등을 지내고 현재는 필운동 옛 한옥 시인의 집에 지은 손호연 단가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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