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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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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9 23:24
중앙일보  2007  11  23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어라” 


국내 유일 ‘단가 시인’ 손호연
‘한·일 우호’양국 4주기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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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가인(歌人)을 그리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2일 손호연 시인 추모행사에 참석한 임영웅·김남조·박정자·
이승신·홍민·사사키 노리코·유자효씨(왼쪽부터)        [사진=안성식 기자]

지난 밤 험했던 눈바람 그치고  동녘 하늘 밝아오며 아침해는 떠오른다' '평화의 즉흥시’첫눈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22일 저녁 서울 종로구 필운동 ‘더 소호’ 갤러리. 100여 명의 사람이 모여들어 한 시인이 남기고 간 시를 음미했다. 한국 유일의 단가 短歌 시인이었던 손호연 시인의 4주기를 맞아 연 추모행사 ‘사랑과 평화의 깊이, 손호연의 밤’ 자리였다  

시인의 작품을 테마로 한국·미국·일본·프랑스 화가 15명이 그린 시화 40점이 걸린 갤러리에서 유자효 시인 한국방송기자클럽 회장의 사회로 행사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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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인 김남조 시인은 “나는 60년간 시를 써오면서 비교적 따뜻한 문단생활을 해왔지만 손호연 시인은 가시는 날까지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며 “이제라도 대가를 알아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기쁘다”고 인사말을 했다. 손 시인의 조카인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는 ‘내가 본 고모님, 손호연’이라는 회고사를 통해 부모님을 일찍 여읜 자신을 아껴주던 당신과의 일화를 소개, 모인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이어 연극배우 박정자씨와 주한 일본기업인 모임인 서울 재팬 클럽의 사사키 노리코가 시인의 작품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각각 낭송했다.
 
   그대여 나의 사랑의 깊이를 떠보시려 잠시 두 눈을 감으셨나요  

   가신 후 그대는 큰 바위 되어라  나는 담쟁이 넝쿨 되어  천 년을 살리라 

   처음부터 그대는 가진 자 아니었어라 모은 재산 돌려드리오니  목숨 돌려 주소서




손 시인이 83년 별세한 남편 이윤모 선생을 그리며 쓴 애절한 시 ‘그대여’가 낭송되자 앉은 이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눈을 감기도 했다 
 
가수 홍민은 손 시인의 시 ‘찔레꽃’과 ‘첫눈’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불러 박수를 받았다. 그는 “시가 너무 짧아 곡을 붙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막상 접해 보니 짤막한 시 구절 속에 많은 의미가 녹아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작가의 방’ 개방식이었다. 생전에 시인이 작품활동을 했던 자택을 고쳐 만든 작업실을 작품활동에 전념하고자 하는 작가 누구에게라도 개방키로 한 것이다.  
 
손호연 시인은 60년간 2000여 편의 작품을 썼다. 40년 서울 진명여고 졸업 후 도쿄제국여자대학에 유학한 시인은 일본 고전문학 대가 사사키 노부츠나 선생에게서 단가를 사사했다. 44년 첫 단가집 『호연가집』에 이어 58년에는 일본 최고의 출판사‘고단샤’에서 가집 『제1 무궁화』를 출간했다



“왜 하필 일본의 전통시를 쓰느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는 한·일 양국의 평화를 기리는 시를 줄곧 썼고 계속해서 『무궁화』라는 제목으로 다섯 권의 단가집을 냈다  일제강점기부터 질곡의 역사를 몸소 살아오면서도 그는 민족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두 나라의 우호와 평화에 대한 기원을 ‘사랑’으로 노래해 왔다   
 
손 시인의 작품은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98년 아키히토 일왕이 주재하는 ‘신년어전가회’에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초청받아 작품을 낭독하는 기회를 얻었다  97년 아오모리현에선 그를 기리는 노래비가 세워졌다. 그는 양국 문화교류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과 2002년 한국과 일본 정부로부터 각각 문화훈장을 받았다
 
2005년 한·일 정상회담 때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어라’이라는 손 시인의 단가를 읊어 화제가 됐다  당시 고이즈미는 “손 가인(歌人·단가 시인을 이르는 말)이 노래한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날 추모 행사에는 일본에서 사랑받았던 시인의 문학 인생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한 해협을 건너온 손님들도 많았다  최상용 고려대 교수(전 주일대사) 안인해 고려대 교수 다카스기 노부야 후지제록스 회장  기다테 아키라 전 일본관광진흥원장 등도 자리를 빛냈다  
 
손호연기념사업회 이사장이자 시인의 맏딸인 이승신(갤러리 ‘더 소호’ 대표)씨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앗아간대도 이것 하나만은 앗아가지 말아주세요 단가의 예술’이라는 어머니의 시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의 작품과 삶을 아우르는 이런 행사를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으면 어머니도 함께하셨을텐데 아쉽습니다  평화의 시대를 그리던 어머니의 정신이 일본을 넘어 한국에서도 빛을 발했으면 합니다”
 
이에스더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단가 短歌 = 5·7·5·7·7의 5구절 31음의 형식으로 총 31자에 느낌과 생각을 담아내는 일본 고유의 정형·서정시. 17자로 이루어진 하이쿠 俳句와 함께 ‘일본 문학의 꽃’으로 불린다. 왕실에서 전해오는 노래였으나 점차 범위가 확대되 지금은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가집 ‘만요슈 萬葉集’에는 백제 도래인의 자취가 엿보이는 단가 작품들이 수록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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