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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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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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5 16:08



 


                                                                                                    2013   5   2

 

 

                                         꽃 동 산 


 

 이제는 어느 곳에도 벚꽃은 졌다
봄마다 어린 아들과 땅에 떨어져 내린 분홍빛 벚꽃잎을 두 손으로 주워 담던 와싱톤의 베데스다 우리 집 동네의 벚꽃 터널도 다 졌을 것이다 

 

그리운 나의 제 2의 고향이지만 꽃구경하러 가긴엔 너무나 멀다 

하기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꽃구경을 제대로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서 봄이 오면 할머니와 엄마와 창경원 벚꽃 놀이를 갔었는데 같은 꽃을 본 지는 여러 해가 된다 

바로 집 앞의 경복궁에는 내가 미국에 유학가기 며칠 전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가 경회루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어 그 뒷면에 보석 같은 딸을 보내는 아쉬움을 시로 적으신 기억이 있는데도 이번 봄 그 꽃을 또 놓쳤다

 

그러나 연희동의 벚꽃 동산은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12년 전 어머니가 세브란스 입원실을 들락거리실 때였는데 도무지 시적이지 않은 환자복에

스웨터를 걸치시고 연세대의 진분홍 철쭉을 보셨고 거기서 조금 떨어진 연희동 벚꽃 동산을 모시고 가 함께 걸었다. 철쭉꽃 장면은 사진에 담았는데 걸으며 벚꽃잎 수 없이 어머니 앞으로 폭풍처럼 내려오는 그 시적인 장면은 사진에 담지 못했다. 꽃 속을 꿈처럼 걷는 아름다운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 장면은 어머니의 시로 남아 있다

 

아픈 몸 꽃보라가 감싸고 휘날리면 가엾어라 가엾어라 비명을 지르네

花あらし病む身取り卷き吹雪かえば哀れ哀れと悲鳴をあげる

 

그 때 나는 연희동에 살고 있었고 근처 서대문 구청 뒤에 굵은 벚꽃나무가 무리져 피어 있는 걸 어느 날 발견하고 큰 횡재라도 한 듯 봄마다 어머니에게 그 대작품을 보여 드렸는데 그것이 어머니의 어쩌면 이 땅의 마지막 꽃장면이 되었을 것이다 

 

그 우람한 나무들을 다 자르고 높은 아파트를 지으려는 계획이 주민들의 반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한참 후 이제는 구청에서 더 많이 심어 연못에 분수에 대단한 벚꽃 동산이 되었다

 

해마다 벚꽃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그 동산에서 어머니와 걷던 장면이 영화처럼 떠오른다

꿈이었던가 생시였던가

지난 주에 가서 아직도 피어있는 걸 확인하고 최서면 선생을 모시고 갔다

 

그는 근현대사의 전문가이며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수 많은 자료를 가진 한일관계의 권위자다. 며칠 전 동아일보 전면 인터뷰에서 일본 아베 총리가 기시 노부스케 총리인 외할아버지처럼 사토 에아사쿠 총리인 외삼촌할아버지처럼 아베 신타로 일본 외상인 아버지처럼 비록 잘못을 했더라도 뉘우칠 줄을 아는 그 유산을 받아야 한다고 따끔하게 말해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속이 후련하게 해준 분이기도 하다

 

최근 동경에서 나의 출판기념회를 하기로 되었는데 그 의미를 알만한 분들을 모으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기 전날까지 고민하다 그가 생각이 나 청을 하니 내용도 상세히 모르는 채 내 앞에서 일본으로 단박에 열사람을 전화해 행동력을 발휘했다 

그 분 때문에 억지로 온 일본의 주요한 분들이 감동으로 눈시울을 적시며 기립 박수까지 하고, 안갔으면 큰 손해 볼 뻔했다고 편지와 연락들이 온다니 그의 체면을 깎은 것은 아니어 다행이다

 

그러나 그보다 나는 그가 나의 어머니를 한번 만났다는 것이 고맙다

이 나라에 일생 사셨어도 만난 분이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꽃구경 볼 틈도 없이 일생 공부만 해온 분이, 마치 보여 주는 내가 만들기라도 한 작품인듯 절로 핀 꽃무리에 감격해 하며 생각에 잠긴다
내가 어머니 생각이 나듯, 낳고 한달만에 가셨다는 자신의 어머니 생각이 났는지 모른다

 

아름다움을 접하면 누군들 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그때는 몰랐었지
    어머니 없이 그 꽃길을 걷게 되리라는 걸

 

    그러나
    나만 못보는
    함께 걸으시는 어머니의
    화안한 미소

 

 

 

 

 

 


최서면 선생과 장세정 외교부출입 외교안보 전문기자 - 연희동 벚꽃동산   201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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