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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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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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5 14:36

 

 


                                                                                                      2012   10   3

 

 

                         약 속 

 

 

꼭 4 년 전이다

경복궁으로 해서 광화문으로 걸어 내려가 동아일보를 끼고 청계천으로 들어가

내리 꽂히는 물줄기를 바라보고는 계단을 내려가 천천히 물을 따라 걸었다

 

늦가을 이었던가

지금은 아쉽게도 잃어버린 홑겹 자주 빛 잠바를 입고 있었고 청계천 물줄기를

따라 피어있는 억새들을 보았으니까

그 긴 길을 마음먹고 꽤 많이 걸었던 것은 생각할 게 그만큼 많았던 것이리라

 

어스름해 지려고해 도로 오던 길로 한참이나 되돌아 왔다

왕복 두어 시간은 족히 걸었고 초입의 큰 물줄기에 거의 다해 가자 서양 노부부

가 물을 배경으로 서로 한 사람씩 사진 찍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걸음을 멈추고 같이 찍어 주겠다고 하자 그들은 포즈를 취했다

 

퉁퉁한 뱃살의 남자와 여자의 키 차이는 컸지만 서로 바라보는 눈길에 미소가

그치지 않았다

호주에서 왔다고 했고 유럽에 갔다 오며 집으로 가는 길에 하루를 서울에 머문

다고 했다. 물을 보는 눈길이나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정다웠다

나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 여러 일 중에 시를 짓는다고 하니 무슨 시냐고

관심을 와락 보였다

 

어머니와 함께 '모녀 시인'으로 어머니 시의

 

 그대여 나의 사랑의 깊이를 시험하시려

 잠시 두 눈을 감으셨나요

 

 my dearest, have thou closed thy eyes on purpose

 just to measure the depth of my love toward thee

 

 

나의 시 중에

 

 하루가 가면 엄마와 멀어지고

 하루가 가면 엄마에 가까워지고

 

 one day more, farther from my mother

 one day more, closer to my mother

 

 

를 읊어 주었다

 

그 순간 그 남자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국내와 일본 미국 유럽에서 손호연 시인의 행사와 강연을 해 오며 감동해

하는 걸 보았지만 커다란 서양 남자가 시 한 줄에 굵은 눈물을 흘리며 우는 건

처음이었다

 

가까이에 시인의 문학 코너가 있으니 안내하겠다고 하자 이미 어두웠고 새벽에

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했다

다음에 와 보겠다고

그리고는 우는 남자를 뒤로 하고 나는 돌아왔다

 

 

청계천을 걸으며 가끔 그 생각이 났지마는 잊은 적도 많았다

 

그런데 4 년 후 그 부부에게서 연락이 왔고 나는 그들을 청계천으로 안내해

다시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그리고는 필운동 "손호연 시인의 집"에 있

는 문학 코너를 안내했다

 

그는 감격해 했고 일본 독자들이 1997년 아오모리에 세운 시비에 새겨진 사진 속

예의 그 시 한 줄, 그대여 ~ 와

 

 

 가신 후 그대는 큰 바위 되어라

 나는 담쟁이 넝쿨되어 천년을 살리라

 

 

사랑의 시에 그 남자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의 손에 영어 시집 'Son Hoyun Poems and Pictures'를 들려주었다

 

70억 세계 인구에 이런 만남이 있을까

먼 곳에서 런던을 들려 온 그 부부와 동아시아 끝자락에 있는 나와의 만남

그리고 이제는 이 땅에 보이지 않으나 시에 스며 있는 그 정신과의 만남

그것은 우연일까

 

십 여년 전 가 본 호주의 인상은 캥거루와 거기에 흔한 유클렙터시스 향기로운

잎들 그리고 바닷가의 오페라 하우스였다

 

그러나 그 곳에서 온 그들의 약속을 지킨 마음과 그 진심을 접한 후엔 호주

Australia가 나에게 다른 이미지로 다가왔다

 

청계천을 산책하다 그 지점에 이르면 다시 호주의 David와 Joan의 아름다운

마음이 떠오르리라

그리고는 무엇으로 이웃과 내가 만나는 세계 사람들에게 조국 코리아의 격을 높여 줄  

수  있을까를 나는 곰곰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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