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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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향하며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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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8 11:18

 

1월에 다쳐 몇 달 병원에 힘겹게 있으면서 불현듯 이런 시를 떠올린 적이 있습니다.

 

UN에 '세계 고아의 날' 제정을 청원하면서 그걸 3 언어로 낭독하고 스피치를 하러 지금

뉴욕을 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자라난 고아 60여 명이 이미 뉴욕에 가 있습니다. 

 

세상엔 상상보다 많은 고아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어려서 부모 잃은 아이만 고아인지 알았지

우리 모두가 어느 날 고아가 되는 건지는 몰랐습니다.

 

전쟁고아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 현존하는 가엾은 우리 모든 고아를 위하여 이 새벽

기도를 합니다.

 

기도해 주십시요

 

 

2018 10 14 새벽

 

이승신 드림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우리는 모두가 고아

 

 

영하 16도 차디찬 날, 갑자기 준비없이 병원에 들어가 세달 후 나오니 봄 햇살에 눈이 부셨습니다.

긴 겨울이었습니다.

 

전전한 세 병원마다 창으로는 아파트 건물들만 빼곡히 보였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도시, 미국의 삶 20여 년에 그토록 그리워 한 것이 이 곳 맞나 싶었습니다. 내가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20권의 책을 만드는 동안 사람들은 이렇게나 많은 건물들을 지었구나 놀라며, 한칸한칸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왜 거기서 그 광경을 매일 내다보아야만 했던가.

목에 난 상처에 의사의 실수로 염증이 생겼고 그것을 긁어내는 일을 눈이 날리던 때부터 봄 햇살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서럽고 아픈 작업이었습니다.

숨을 몰아쉬며 낯설고 식막한 그 광경을 내다보았습니다. 

신간이 나올 참이었고 교토에서 찍은 12개 다큐를 만들고 있는 와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하니까 하나님이 쉬라고 그러시는 거야 라고 했지만 한 치 앞을 모르는 안개속 참담함에 매일이 긴장된 시간이어 그건 쉬는 게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그리워 한 건 어느 특정지역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라는 고향이었네,

고아 란 어려서 부모 잃는 것만이 아니로구나 를 절감하며, 벽에 붙은 TV로 평창 올림픽의 넘어지면서도 승리하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 '하뉴 유즈루'의 힘겨운 과거를 떠올리다, 그 순간 내려 온 영감의 시를 병원 식사 메뉴 작은 메모지에 끄적여 보았습니다. 두어 달 연필을 쥐지 않았고 노트도 공책도 책도 없이 울기만 했었습니다. 

 

 

퇴원하기 전날 일본의 윤기 선생이 찾아왔습니다. 그간 방문객을 받지않았는데 먼 곳 일본에서 왔기도 했지만 보아야 한다는 그의 끈질김에 설득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파트 공화국이 보이는 큰 창을 낀 방에서 3장의 작은 메모지에 다시 1 2 3 절을 또박또박 썼고 그는 그것을 고아 기념관에 전시하겠다고 했습니다.

 

 

윤기 선생의 어머니는 일본분으로 목포의 청년 목사 윤치호가 90년 전 만든 고아원에 고아들에게 세끼 밥만 먹일 수는 없다, 웃음도 주어야한다는 마음으로 받은 피아노 선생이었습니다. 청년 목사와 결혼한 그 분은 남편이 후에 행방불명이 되고도 고아원을 이끌었고 해방 때는 일본인이 한국에서 다 쫒겨 갔음에도 이 나라에 남아 고아 3천명을 키웠습니다. 

 

한복을 입고 한국말만 하는 어머니를 그는 한국사람인 줄 알고 자랐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고아를 아들과 함께 차별없이 키웠습니다. 고아원이 2대를 가지 않는다는데 그 차별없이 키움으로 2대 3대를 가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의 동경 교토 오사카 고베 사카이에 한 일 양국 노인을 받는 큰 규모의 양로원을 다섯개나 지었습니다.

 

'고아 없는 세상'을 꿈꾸던 어머니의 그 정신을 이어 올 해 그가 UN 에 '세계 고아의 날' 제정을 추진합니다. 그 때에 노래로 작곡해 부를 시를 저에게 부탁한지 3년 만에 마침내 나온 순전한 어린 마음의 시입니다.

 

퇴원 다음 날 고아원 '공생원' 90주년을 기념으로 하는 모임에서 그 '고아의 시'를 낭송해 달라는 말을 듣고 지금은 도저히 못가니 대타로 하시라 했으나 그는 오리지날이 해야 한다고, 내가 할 것을 믿고는 시가 적힌 세쪽 메모지를 들고 갔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매일 보던 아파트 광경과 계절이 바뀌어, 커다란 서향 창으로 인왕산과 십자가와 뒷집의 펄럭이는 빨래와 언덕 위 수백년 된 은행나무가 드높은 하늘로 수 많은 가지를 팔처럼 뻗고 있었고, 어려서부터 본 정겨운 까치들이 싱그러운 봄하늘을 자유로이 날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모임에 가기를 망서렸으나, 하늘 나라에 가서 '수고 했소' 한국인 남편의 그 한마디를 들으려 우리나라에서 3천명의 고아를 내 아이처럼 키웠다는 '윤학자' 여사의 순수한 마음을 생각하며, 빗질하지 않은 머리를 공식자리에선 첨으로 모자로 가리고는 스피치와 시낭송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고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네

                                 곁에 있다고

                                 울지 말라고

                                 일어서라고

                                 우리 모두는 고아

                                 함께 손을 잡아야만 해

                                 손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엄마의 그 소리가 들리네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네

                                 힘을 내라고

                                 걱정하지 말고

                                 꿈을 꾸라고

                                 우리 모두는 고아

                                 서로 마음을 합하여

                                 길을 만들어 나아가야 해

                                 아빠의 그 소리가 들리네

 

 

                                 엄마아 - 아빠아 -

                                 불러봅니다.

                                 눈물을 닦으며

                                 힘을 냅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가 고아

                                 넘어지며 서로를 일으켜 주며

                                 꿈을 이루어 나아가야 해

                                 어머니 아버지 불러봅니다

 

 

 

이 세상에 남겨진 고아와 언젠가 고아가 될 이들을 위하여 이 노래를 바칩니다.

 

 

 

 

 

 

 


 윤기 '마음의 가족' 이사장
 

                                                고아의 노래 '우리 모두는 고아' 낭송

                                                  손봉호 교수와 홍정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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