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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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배명복 대기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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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03 15:10

 

 중앙일보                                                2018  7 14

  

 INTERVIEW  [배명복의 사람속으로]  작가 이승

 

                                        

                     배명복 칼럼니스트· 대기자 

                           

 재팬패싱은 우리에게 손해... 미·중만큼 일본도 필요

 

 
 
초여름 한 줄기 바람처럼 그는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왠지 모를 시원함이 느껴졌다. 녹음기 위로 그의 말 조각이 파편처럼 흩어진다. 생각의 속도를 말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흰색과 파란색이 분주하게 교차하는 하늘빛 아래 여름 나뭇잎은 싱그러웠고 어디선가 새소리도 들렸다. 두 시간 반이 금세 지나갔다.


사람은 대개 일로 규정된다. 하는 일이 그 사람을 정의한다. 이승신. 시인이자 수필가. 책을 써서 직접 출판까지 하니 저술가 겸 출판기획자. TV 방송 일도 하니까 방송인. 질문과 대답 끝에 이승신을 틀에 넣어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그에게 글이나 말은 도구에 불과하다. 작게는 한국과 일본의 우애, 크게는 세계 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평화운동가"가 그에게 어울리는 호칭일지 모른다.

 

 

   일본인들은 마음을 고도로 중시 

  

 

이승신은 ’교토에 가면 한반도서 건너간 조상의 손길이 느껴진다“며 ’자기 문화로 승화시킨 일본인의 노력에도 고개가 숙여진다“고 했다                                                                                         

                                                                                                                                  사진 - 김경빈 기자

 

 

발단은 일본의 고도古都인 교토였다. 십수 년 전 나는 교토를 2박 3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받은 인상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래서 ‘2005년 5월 교토의 추억’이란 칼럼을 썼다.

한 달 전 운명처럼 내 손에 들어온 책 한 권이 희미해진 교토의 추억을 일깨웠다.

 

 


'왜 교토인가?'

 

 

이승신은 최근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고전문학을 만학晩學했고 그때 체험한 교토를『왜 교토인가? 』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그걸 읽고 연락처를 수소문해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배정된 라커 룸을 사용한 흔적조차 안 남기고 깨끗이 치워 놓고 간 러시아 월드컵 일본 축구 대표팀과 자기 팀이 패했음에도 쓰레기 봉투까지 가져와 주변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떠난 일본 응원단이 세계 미디어에 화제가 되었을 무렵이다.

 

                                            

Q 일본 대표팀과 응원단에 세계 언론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걸 보고 놀라는 게 더 놀랍습니다. 일본 사람이 그러는 건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뉴스 거리가 아닌 거죠. 일본 어디를 가도 쓰레기는 고사하고 먼지 한 톨이 없어요. 1년 365일 그렇게 사는 게 일본 사람입니다.”
 

겉보기엔 깨끗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얘기를 하려는 것 같은데 적어도 제가 아는 한 그렇지 않아요. 집안도 깨끗하게 하고 삽니다. 설사 겉과 속이 다르더라도 겉보기에 청결하고 그리고 겉으로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게 나쁜 건 아니지요.”


이승신은 대학생 때 국제청소년회의 참석차 일본을 처음 방문한 이래 100번도 넘게 일본에 갔다. 2015년부터 1년 반 동안은 일본 고전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장기 체류하기도 했다. 
 

일본 축구 대표팀에게 찬사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 종료를 앞두고 10여분 공을 돌리는 ‘산책 축구’로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감독 입장에선 16강 진출이 더 중요했겠지요. 그걸 위해 감독은 욕을 먹더라도 공을 돌리는 선택을 한 것이고 선수들은 그걸 따랐을 겁니다. 다른 나라 감독이라도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요.”
 

방문자로서 교토에 대한 인상을 ‘가슴 속 아득한 고향 같은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막상 살아보니 어떻던가요.


“세계인이 감탄하는 교토의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유적지를 볼 적마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 선조의 손길을 느낍니다. 며칠 다녀오기만 했다면 지금도 그게 다였을 거예요. 교토에서 지내며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 선조와 그 후손이 만들고 가르쳐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보존하고 새것을 위해 옛것을 부수지 않고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하고 이으며 자기 문화로 승화시켜 온 일본인의 대단한 성취와 노력, 그 정신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결국 한국만큼 일본도 대단하단 말씀인가요.
“현해탄을 건너가 이런 위대한 문화를 이룬 조상의 DNA가 우리 안에 있다는 깨우침은 전율이면서 자부심입니다. 이두와 향찰로 지은 우리의 향가와 속요에서 유래한 짧은 시가 일본에서 단가短歌로 발전해 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문화유산이 되었고 프랑스 영국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학교에서 그 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조상의 그런 DNA를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일본 이상으로 잘 할 수 있다는 게 제가 꼭 하고 싶은 말입니다.”
 

뿌리는 많이 겹치지만 지금은 한국과 일본이 상당히 다른데요.
“예를 들어 한국인은 고맙다는 말을 한 번 하지만 일본인은 상대가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몇 번이고 고맙다 하며 절을 합니다. 사촌도 육촌도 안 보면 멀어지듯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 멀어지고 달라진 것이지요. 하지만 역사를 아는 일본 사람들은 자신의 뿌리에 한국이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백제 유민 20만명이 현해탄을 건너가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메이지 유신으로 1869년 도쿄로 천도遷都할 때까지 약 1100년 동안 교토는 일본의 수도였다. 일본의 일곱 번째 도시인 교토에는 사찰만 1600개가 넘는다. 고궁과 유적지도 많다. 벚꽃과 단풍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정보기술 (IT) 등 첨단산업의 메카이기도 하다. 교토대는 과학 분야에서 1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일본엔 도쿄가 있고 오사카도 있는데 왜 하필 '교토' 인가요.
“한·일 관계가 좋아지길 염원하며 교토를 접점으로 삼은 것입니다. 교토에 가면 우리에게서 사라진 먼 옛 고향이 느껴지고 그 도시와 문화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백제와 고구려, 신라와 가야인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동생을 가르친 형의 큰 마음으로 일본을 포용하고 뿌리가 겹치는 이웃 나라 일본과 손잡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교토에 가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한·일 관계의 미래가 보입니다.”
 

말로만 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한·일 양국이 좋은 관계가 되려면 어떤 실천적 노력이 필요할까요.
“표 계산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에게만 기대할 게 아니라 두 나라 사람이 만나 마음과 마음을 주고 받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저런 연유로 일본과 개인적 인연이 없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일본에서 늦깎이 공부를 하면서 새삼 깨달았지만 일본인은 '마음' 을 정말 중시합니다. 우리가 전해준 불교의 영향인지 모르지요.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그랬다는 뜻입니다. 제 어머니가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어라’ 라고 한, 시 한 줄에는 전 생을 품어온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3년 작고한 이승신의 어머니 손호연 시인은 그 전통시인 단가 시인으로 한국보다 일본에 더 잘 알려져 있다. 2000 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31음절로 이루어진 단가는 17음절로 된 하이쿠俳句와 함께 일본인들이 가장 아끼는 문학 장르다. 일본 천왕이 단가의 대가로 궁에 초청했으며 한국의 시인인 그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은 그의 시비詩碑를 아오모리 록까쇼무라에 세웠다. 
  
  
    교토에서 우리 선조의 숨결 느껴 
 

그 절절한 마음이 서로 합쳐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요. 양쪽이 서로 마음을 열고 마음으로 만나야 합니다. 자꾸자꾸 만남과 교류를 이어가면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민간 외교가 중요하단 말씀인가요.
“우리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서로가 서로의 역사를  모르는 게 문제입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물론 잘못입니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요.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일본의 지원을 받은 백제의 부흥군이 나당연합군에 패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유민만 2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왕족과 귀족은 물론, 학자, 고위관료, 지식인에서 장인과 기술자, 일반 백성까지 다양한 계층의 유민이 건너가 일본에 선진 문물과 문명을 전파했지요.

그런 역사를 인정하고 서로가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양국 관계를 길게 봐야 합니다. 싫다고 이사갈 수도 없는 처지 아닙니까. 정상회담이나 정치인의 노력으로 양국 관계가 좋아지길 기다리다간 세월만 갑니다. 서로에게 손해지요. 자꾸 만나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사랑이 싹트고 연애도 하듯 한·일 관계도 그렇게 가야만 합니다.”
 

지금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통일 선진국으로 가려면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미국의 압력에 의해 마지못해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잡아야 하지요. 그게 우리에게 이익입니다. 북한에 올인하면서 일본을 무시하고 방치하고 패싱하는 느낌입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도 중요하지만 일본도 필요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일본 총리와도 만날 것을 적극 권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일본은 진심으로 고마워 할 것입니다.” 

 

 

 

  
20년 미 체류 미국통이자 일본통 “나이 안밝히는 게 원칙”
이승신은 원래 미국통이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떠나 20여년 간 미국에 머물렀다. 2011년 동일본 대재난 때 상처입은 일본인들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시를 쓴 것이 일본통으로 알려진 계기가 됐다.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 제목의 시집은 한·일 양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됐다. '숨을 멈추고' 시집을 읽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승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감동을 전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 일이다.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계를 경험하고 공부해서 생긴 글로벌 안목으로 보는 것이 일본만 깊이 파는 것보다 일본을 오히려 더 잘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본통으로 알려진 게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평양 출신으로 고위 공직을 지낸 선친으로부터 “무엇을 하든 글로벌 안목을 가지고 글로벌리 하라” 는 말을 글로벌이란 어휘를 전혀 쓰지 않던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랐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하면서 나이 밝히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좋은 취지로 말을 해도 나이라는 편견으로 뜻과 내용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배명복 칼럼니스트· 기자 bae.myungb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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