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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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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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5 13:52
 
이승신의 시로 쓰는 컬쳐에세이 Culture Essay

                                                상트 페테르부르그   에르미타쥬 미술관  앙리 마티스의  '댄스'   -    2010  7

                                                 귀한 만남


나는 이번 여름 귀한 만남의 복을 누렸다

세계적인 예술과 문화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여름은 밤 12 시 너머까지 화안한 백야였다
공연장이 백 개가 된다는 도시, 나는 매일 저녁 그 곳 콘서트 홀에서 좋은 음악을 만났다
백건우의 피아노 연주를 만났고 영화 '시詩'의 주인공 윤정희를 만났다
서울에서 간 '삶과 꿈 챔버오페라 싱어즈'가 공연한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이올란타 Iolanta도 만났다

쇼팽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알렉산더 드미트리에프의 지휘로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건반 위의 성자'로 불리는 백건우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2번의 열정적인 피아노 공연은 감동이었다. 1832년에 건립된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니아의 대극장을 가득 메운 청중은 그의 연주가 끝나자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나도 일어났다

한국의 합창단 ‘삶과 꿈 챔버오페라 싱어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원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대극장 무대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를 러시아어로 공연을 하며 섰다는 자체가 감격이었다.
신갑순 선생의 연출로 이루어진 이 오페라의 주역 10명은 한국에서 간 성악가들로 그 곳 러시아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였다. 나는 공연 후 무대로 가서 정성어린 마음으로 조총련계 교포인 지휘자 박태영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2007년에 지어진 현대식 마린스키 콘서트 홀에서의 차이코프스키 6번 비창도 멋졌다. '21세기의 카라얀' ‘유럽의 음악 황제’ 등으로 불리는 러시아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에프가 지휘봉을 들었는데 차이코프스키 곡을 현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차이코프스키 본고장에서 듣는다는 느낌은 각별했다.

피아노 협연자가 교체된 듯 전 날 포스터의 인물이 아닌 새로운 얼굴 임주희의 연주는 뜻밖이었다. 갑자기 서울에서 가 카발레브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세계 무대에 처음 선 것이다. 2000년에 태어나 겨우 10살인 그가 세계적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에프와 공연을 하고 어린이를 위한 작곡이 아닌 어른이 치는 어려운 곡을 그렇게 멋지게 소화하였다는 게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그의 너무나도 작고 여린 손가락을 만지며 그의 밝은 미래에 내 가슴이 벅찼다

공연 후 자랑스러운 한국의 영재를 축하해 주려 무대 뒤로 갔는데 모두 어린 그에게 몰리어 세계적인 지휘자 게르기에프가 혼자 서 있어 그에게 다가간 만남과 대화도 귀했다.
세계에 우뚝 서려면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그런 혼자 서 있음의 순간이 꼭 필요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 푸쉬킨과의 만남이란

시인의 생가를 향하며 같이 간 문화 팀에게 서울에서 들고 와 그 전날 밤 백야의 살아 움직이는 구름과 아래로 에바강과 도스토에프스키의 묘지가 큰 창으로 보이는 호텔 방에서 만나 눈물을 흘렸던 마종기 시인의 가슴 아린 시 '전화'와 푸쉬킨의 유명한 시 몇 수를 읊어 주며 문학의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슴이 설레였다

근대 러시아 문학의 창시자로 37세에 아름다운 아내를 사이에 두고 한 그 유명한 결투로 목숨을 다하기까지 그가 지은 대표적인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를 비롯하여 주옥같은 시들은 전 세계어로 번역되어 그 사랑의 시 몇 수를 연애 시절 암송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그가 시를 쓰던 책상 옆 창으로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운하가 아직도 유유히 흐르고 귀족 출신인 그의 규모 있는 집 마당엔 젊은 시인의 아름다운 동상이 서 있고 그 발치엔 누군가 갖다 놓은 단정한 꽃다발이 보인다

쓰던 책상의 친필 원고와 4천 권이 넘는 시인의 개인 도서관도 인상 깊었고 무엇보다 쓰던 가구들과 물건은 수준 높은 안목의 것이었다. 집 입구에는 '삶과 창조적 활동 A.S. Pushkin, Life and Creative Activity' 라는 입장 포스터가 러시아어와 영어 양국어로 쓰여져 있어 내 눈길을 끈다

이제는 세계인이 모여 오는 기념관이 되었고 한 때는 단란했을 시인의 집. 그의 비극적 죽음의 이야기를 마지막 방에서 영어 해설 이어폰으로 듣고는 다시 입구로 내려 와 러시아 돈을 주고 아프리카인 외할아버지를 조금은 닮은 푸쉬킨의 얼굴이 새겨진 작은 찻잔을 집는다
가신 나의 시인 어머니 생각이 났다

푸쉬킨이 죽기 전 날 저녁을 들었다는 운하가 내려다 보이는 '푸쉬킨 카페'는 이 도시의 명소가 되어 책상에 앉아 펜을 든 시인의 모형이 먼 코리아에서 시를 짓는 나를 맞는다

도스토에프스키가 살았던 집을 둘러보고 그리고 그가 안치된 묘에 가 무덤 위에 세운 그의 얼굴의 부조를 만지면 대문호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했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유명한 그의 문학 작품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그가 숨을 쉰 땅에서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이 도시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겨울 궁전
지금은 에르미타쥬 미술관 Hermitage Museum이기도 한 곳에서의 미술과의 놀라운 만남. 에까뜨리나 여왕의 안목으로 모았다는 그 공간의 수집품들은 많기가 5년을 보아도 다 못 본다는데 관광객들의 수도 엄청나 로비는 인산인해, 그야말로 발디딜 틈이 없다

배정된 시간이 겨우 반나절,
1층에서 '코리아의 천년' 전시회를 뜻밖에 만났고, 그리고는 3층의 인상파 룸을 단숨에 뛰어 올랐다

모네와 고흐, 르노아르와 보나르, 로뎅과 피카소가 아직도 거기에 살아 있고,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가 숨을 불어 넣은 화려한 대작과의 특별한 만남이 있다

내가 와싱톤 시절부터 오랫동안 작은 판화 한 점으로 가지고 있던 'Dancers 무용수'가 커다란 유화 작품으로 백야의 고장에서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가로 세로가 3m 4m는 족히 될, 내가 본 마티스 중에 제일 큰 대작이다. 바로 앞에 마티스의 또 다른 대작, 'Music 음악' 과도 영혼을 마주하고 있다

그 대가의 힘찬 선과 눈부신 색채, 거기에 스며 있는 심오한 혼과 기를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떠한 미문의 글과 말로 표현을 한다 해도 실제로 그 앞에 서 서 두 눈으로 가슴으로 보고 느끼고, 화가가 섬광 같은 영감으로 받아 외롭고 외롭게 그렸을 그 찬란한 그림에서 영감을 얻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기를 받아 멋진 샤워를 온 몸으로 하는 것에 비할 수가 있을까

물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독특한 건축에 에바강과 운하를 낀 낭만의 도시이나 사회주의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여느 나라처럼 사랑하는 남녀의 애틋한 포옹이 보인다. 이 도시 사람들은 밥은 못 먹어도 공연은 볼 정도로 예술을 사랑하는 로맨틱한 사람들이다

열 달 가까이 춥고 어두운 이 도시는 1년에 밝고 따뜻한 겨우 두어 달, 6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를 꿈과 낭만의 수준급 종합 예술을 위해 세계의 관광객이 몰려오고 여름 궁전, 겨울 궁전, 문학관, 미술관, 음악당, 그 독특한 사원 등에 줄을 길게 서는데, 공연 티켓 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서면, 일생에 잊지 못할 황홀한 추억이 가슴에 새겨질 것은 분명하다

문학 음악 미술 건축 발레 연극 영상 요리 ... 여러 장르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하나다
인류가 있는 한 길이길이 남을 예술가의 혼과 하얀 자작나무와의 귀한 만남의 여름이었다
생각의 스케일과 창의력의 마음을 넓히는 참으로 귀한 시간이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백야 축제는 매해 여름마다 있다
강추다


 그 '귀한 만남'을 가져 보시라
 내면의 '귀한 당신'을 만나게 되리라



 푸쉬킨
 톨스토이 도스토에프스키
 문학 천재의 나라에서 내가 숨을 쉬다



 보기 전과 보기 후는 달라야 한다
 그 소리 그 싯귀 그 그림 그 몸짓
 아 - 그 에스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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