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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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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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17 03:30


 

 


 

                                                               

 

                                                     그 대 여


 

            "그대여 나의 사랑의 깊이를 떠보시려 잠시 두 눈을 감으셨나요"

 

일본 아오모리靑森에 있는 손호연 어머니 시비에 새겨진 시이다.

 

어느 날 일본의 경단련 고문에게서 팩스 한장이 어머니에게 날아왔다.

일본에 손호연 시인의 시비를 세우고 싶다고.

어머니의 전기집 작가, 키다데 아키라씨가 쓴 일본 닛케이 신문의 칼럼을 보고 감동하여 차를 타면서도 그 시를 외운다고 했다.

 

 

자그마한 체구의 어머니는 걱정부터 했다. 누가 일본에서 땅이나 돌을 팔려고 하는 것 같다고.

 

내가 만나본 일본사람 중에 영어를 제일 잘하고 밝은 성품의 크리스챤인 누카자와 고문은 진심이었다. 어머니가 1940년대 유학을 했던 동경 여기저기를 수소문 하였으나 여러 규제가 있었다. 그 중 하나 유력한 곳이 동경 중심에 자리한 천왕궁과 데이코쿠 호텔 사이의 역사 깊은 히비야 공원이었다. 그러나 관리하기가 적절치 않았다고 했다.

 

여러곡절 끝에 누카자와 고문이 20여년 자신이 대표로 있던 기업이 있는 아오모리를 생각해냈다. 그 곳 유지인 쯔쿠다 회장이 자신의 넓다란 토지 중 바다가 보이는 좋은 자리를 흔쾌히 내주었다.

 

1997년 6월 아오모리의 태평양 내려다 보이는 곳에 손호연 어머니의 시비는 그렇게 세워졌다. 한국에서 일생 단가 시를 지었으나 바다건너 일본에서 그 시심을 먼저 알아보아 이것저것 해오면 어머니는 미안해 하셨다.

 

아오모리는 일본의 본토인 혼슈의 제일 북쪽이다.

많은 분들이 어머니의 시비가 왜 하필 아오모리에 세워져 있는가를 물으면 하는 답이다.

 

아오모리는 눈이 몇 미터가 쌓여 일본에서 가장 늦게까지 스키를 하고 뒤늦게 봄꽃이 피어나며 단가 문학관이 있는 곳이다.

 

아키타현의 아키타시에서 내가 지은 시를 일본 작곡가가 작곡한 음악회가 있었고, 그 바로 위에 인접한 현이 아오모리여서 그 시비를 보고서 기차를 타고 아래 아키타로 가려는 생각을 했다.

교토에서 아오모리를 국내선 비행기로 가서 기차와 버스로 아키타로 내려가 행사를 하고는 다시 교토로 오는 비행기 왕복은 서울서 가는 것보다 많이 비쌌다. 일본인들이 국내 여행을 잘 안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몸처럼 시비는 여전히 거기에 서 있었다.

시비가 세워진 후 매해 있은 행사에 어머니가 참석하셨고 나도 함께 하였으나

4년 전 KBS 팀과 2월에 거기를 찾은 후로는 처음이다.

 

어머니와 나란히 섰던 기억이 간절하다. 시비 바로 뒤에는 100년 후에 열어볼 어머니의 귀한 원고와 유물, 아버지의 유물을 두 캡슐에 묻었었다.

어머니와 시클라멘 꽃화분을 놓고 시비를 바라보았고 어머니가 서울서 가져와 심으신 열그루의 무궁화를 돌아보고 그리고 그 앞으로 보이는 바다를 보았었다.

 

수 백년 된 온천을 함께 했고 언젠가는 일년에 한번 들리는 천왕만 머무는 600년 된 구택에 어머니와 머물기도 했다. 어머니의 친구들과 제자들과 함께 한 때도 있었다. 그럴 제마다 소녀처럼 홍조를 띄우며 시비 앞 문화센터 무대에서 얌전히 인사하시던 치마저고리의 단아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언젠가 이 지상에서 내 곁에 계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은 때였다.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서 늘 바라보는 한인회에서 세운 정지용 윤동주 시인의 70센티 정도의 작은 시비에 비해 2미터가 훨씬 넘고 일본 유지들이 세운 훌륭한 시비이나 이제 어머니와 함께 바라다보지 못하는 것이 허전하기만 하다.

 

새겨진 사랑의 시는 아버지 갑자기 가시고 펜을 못들다 몇 해 후 쏟아낸  "무궁화4" 권에 실린 사랑의 연시 중 하나로 일본 열도의 심금을 울렸다는 시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그때까지 어머니의 마음이 알려지지 않았고 일본에서도 시작詩作 반세기가 지난 다음에야 알려진 것이다.

 

아버지 가신 것이 잠시인 듯 한 것처럼 어머니 안뵈이는 것도 어머니를 향한 이 딸의 사랑의 깊이를 시험하시려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리 가버리면 저 아이는 엄마가 그립고 서러워 울까 울지 않을까 " 를 살짝 눈을 뜨며 보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한국 신문 여행 광고에 보면 아오모리 행이 있다. 언젠가 궁금하여 전화로 아오모리에 한국분들이 가느냐고 물으니 인기상품이라고 했다. 대단한 청정지역으로 공기와 물이 좋으며 오이라세 긴 계곡과 도와다 호수,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바라보며 하는 노천 온천이 있고 일본 전역에서 사과로 제일 유명하며 고요히 힐링하기 그만인 곳이니 그럴만 하다.

 

거기 세워진 한국인의 시비를 아느냐고 물으니 몰랐다고 했다.

서울에서 나와 함께 간 팀들이 그 곳 자연도 좋아하나 일본인들이 한국 시인의 시혼을 기리려 시비를 세운 것에 감동해 하는 것을 나는 보았었다.

 

그 앞에 서는 많은 한국분들의 가슴도 진하게 적실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국땅 흙에 어우러져 노래비야 서있어라 두 나라 마음의 가교가 되어

 

                                                                                               손호연

 

 

 

 

 

                       시비 길건너의 문화센터 로비 높이 걸려있는 시인의 초상과 한일 양국어로 된 평화의 시


 문화센터 벽에 걸린 이승신의 한 줄 시와 그 유래


어머니 시비 너머로 보이는 태평양 바다  -  2015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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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  시인, 에세이스트, 손호연단가연구소 이사장 

이대영문과 와싱톤 죠지타운 뉴욕 시라큐스 대학원, 교토 동지사대 재학중

방송위원회 국제협력위원, 삼성영상사업단 & 제일기획 제작고문

 

저서 -치유와 깨우침여정, 숨을 멈추고, 오키나와에 물들다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그대의 마음있어 꽃은 피고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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