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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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한매 寒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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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7 22:02


 
도시샤大學 채플 바로 앞, 니시마 조가 심은 매화 4그루                                            2015   8  12

                                                                                               

                                        

                                                        

                                                         내가 만난 한매 寒梅

 

 

교토의 도시샤 대학을 오기 전까진 '니시마 조' 라는 인물을 나는 몰랐다.

 

도시샤 대학은 설립자 니시마 조 新島襄 (1843-1890)가 크리스챤 정신을 기초로 세운 학교인데 천년을 일본의 고도古都였던 교토에 천년의 천왕성인 고쇼御所가 자리하고 있고 바로 그 앞에 도시샤 대학이 위치해 있다. 그 오래된 대학의 캠퍼스를 걷다보면 여기저기 고색이 찬연한 벽돌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한가운데에 역시 찬연한 채플이 서 있다.

 

140년 전 니시마 조가 그 학교를 세울 때에 가장 먼저 지은 건물이다.

 

내가 교토를 처음 방문한 것은 국제청소년 회의로 1970년 동경에 갔을 때 오사카의 아버지 일본 친구분 댁에 잠시 머문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분 딸과 기차를 타고 근처 교토를 간 것이다.

 

그러고도 간간히 갔었으나 2005년 꼭 10년 전, 어머니 가시고 2년 후, 교토 국제 회관에서 일본 정부 차원의 손호연 시인 어머니를 기리는 행사가 연 이틀에 걸쳐 있었다. 한국의 시조 시인인 허영자, 이근배 시인이 함께 하여 일본 저명 시인들과 일본 단가와 한국 시조를 서로 엇갈려 번역해 이웃 나라의 시를 읊고 평하고 토론했고 동경에서 온 일본 문화부 장관의 연설과 어머니의 스승이요 일본 보물인 만엽집의 대가, 나카니시 스스무 선생의 강연이 있은, 양국을 아우르는 의미 깊은 행사였다. 마지막 순서로 나의 연설이 있었고 그리고는 교토의 명소들을 찾게 되었다.

 

단풍이 든 가을 계절, 교토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새삼 교토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오래전의 고향이 펼쳐지는 듯 하고 서양의 문명도 스며든 묘한 아름다움을 만나게 된다. 그 후 나는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행 1시간 거리의 교토를 찾았고 내 나라에는 없어진 천년 전 고향과 새로움을 발견해 냈다

 

여러 해 머문 히가시야마東山의 '네네노 미치道'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별장 앞 료칸(여관)도 좋았지만, 마침 방이 없어 옮긴 옛 천왕 궁성 고쇼 바로 앞의 검소한 호텔도 좋았다. 거기에 머물면서 길 건너의 끝없이 넓은 고쇼도 돌아보고 바로 옆 도시샤 대학의 캠퍼스를 걷게 된다.

 

그러던 어느 봄날 캠퍼스의 분홍꽃 앞에서 처음 보는 은퇴한 역사 교수의 권유로 그 학교에 신청을 하게 되고 지난 3월부터 생각지도 못한 도시샤 대학생이 나는 되었다.

 

그리고는 채플을 매일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니시마 조의 초상화를 바라보게 된다. 그 채플 우편에 우리의 시인 윤동주와 시인 정지용의 아담한 시비가 서 있고 다시 그 우편에는 초기에 교실로 썼던 해리스 과학관이라는 아름다운 벽돌 건물에 니시마 조의 여러 자료가 전시된 박물관이 있어 한 인물의 생각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전혀 몰랐던 니시마 조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막부시대, 항거를 한 이유로 해외여행이 불허되자 그는 한 선장의 도움으로 불법으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가게 된다. 1875년, 140년 전 그렇게 미국 보스톤의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하이스쿨, 앰허스트 칼리지와 앤도버 신학대학을 나온 니시마 조는 졸업 후 한 선교 모임에서 미국 선교사들에게 일본에 크리스챤 스쿨을 세우는데 펀드를 모와 달라는 연설을 하게 된다. 그렇게 세운 학교의 첫 건물이 이 채플이요, 일본의 중요 문화재인 그 건물을 보호하려 하루에 30분만 열린다.

 

채플 바로 앞에는 이 학교의 상징이요 니시마 조의 철학이기도 한 매화 4 그루가 서 있고 그 옆에는 그가 지은 매화 시,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단시短詩 한 수가 시비에 그의 친필로 새겨져 있다. 어렵기만 한 공부에 설립자의 신앙과 매화를 심은 의미를 새기며 그 한 줄의 시를 바라다 본다.

 

지식만 채우는 학교가 아니라 신앙이 있고 진실로 덕과 양심을 갖춘 학문을 세우자는 뜻으로 건물도 양심관良心館, 명덕관明德館, 홍풍관弘風館 등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 이름 중 하나인 찬 겨울의 매화라는 의미의 한매관寒梅館이 눈에 띈다.

 

니시마 조는 교육가로서 뿐만 아니라 일본 전국적으로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이다. 그의 생전의 자취를 찾는 순례객도 많이 있다. 그는 일본인으로 미국 대학의 학사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며 1889년에는 앰허스트 Amherst 대학의 첫 명예박사를 받고 1950년에는 일본 우표에 오르기도 한 일본의 인기높은 역사적 인물이다.

 

그의 부인 니시마 야에 (1845-1932)는 더 유명하고 독특하다.

일찌기 후쿠시마, 아이즈의 포병대원의 딸로 막부시대에 메이지에 항거하여 아이즈 성에서 라이플 총부리를 들고 싸워 '일본의 잔 다크'로 불리우게 된다.

 

야에의 오빠를 만나러 아이즈에 온 니시마와 만나 오래 사귀게 되고 1876년 그와 결혼하게 되는데 당시 에도시대의 부인은 남자 그늘아래 조용히 있어야 좋은 부인인 시대여서 안좋은 아내의 이미지를 한때 갖게 되나 미국에서 10년 너머 수학한 니시마와 함께 일찌기 앞서 남녀평등을 이루게 된다. 그가 미국 선교사에게 보낸 편지에는 'Yae has a handsome lifestyle'이라고 쓰여져 있다. 46세로 간 남편 니시마를 대신하여 87세까지 도시샤 대학에 헌신한 공이 크다.

 

얼마 전 니시마 조와 야에를 테마로 한 NHK 대하 드라마 "야에의 사쿠라"로 더 유명해졌고 그 분들의 위대함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이 4년 전 원전 사고가 난 후쿠시마 아이즈의 쯔루가 성城과 교토의 도시샤 대학을 방문하기도 한다.

 

인연엔 여러 타입이 있을 것이다.

19세기의 인물을 내가 친히 만날 수는 없었지만 한참 후 21세기에 그가 오래 전 세운 학교에 와서 그의 아름다운 스피릿을 만난 인연을 나는 진정 감사하고 감격해 한다. 지난 140년 간 어려운 고비고비를 넘기며 펼쳐져 왔을 그의 정신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지며 매서운 겨울을 인내하여 마침내 피워내고야마는 한매寒梅의 그 아름다운 향기가 오래도록 퍼져 나아가길 기원해 본다.

 

 

 

                찬 겨울 이겨낸 매화처럼 진리 또한 어려운 환경에도 그 꽃을 피워내리

 

                                                                                     니시마조 新島襄

                                              

 

 

 

야에와 니시마 조 新島襄

도시샤대학 채플 곁, 니시마조의 한매 시비 - 2015  8  6

 

                                              

 

 

 

 

            이승신 시인, 에세이스트, 손호연단가연구소이사장   저서 치유와 깨우침의 여정에서, 숨을 멈추고,

                         오키나와에 물들다,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그대의 마음 있어 꽃은 피고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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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강정훈님의 댓글

  • LV 1 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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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도에서 오는 에세이도 기다려지지만 뒤늦게 홈피에 오니 피아노 음악도 푸근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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