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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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유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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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29 22:43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유끼구니雪國'를 찾아     

 

                                                                  友情의 일본 스키

 

  최병효대사‘나에바’ 스키장  2015  2  27

 

2015년 2월 23일 밤, 니이가다 공항에 내려 그야말로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진' 눈길을

달렸다.  일본 북 알프스 자락 아래 끝이 없을 것 같은 길고 긴 눈길의 양쪽 가장자리는 몇 미터 높이의 설벽이었다

그 하얘진 밤의 밑바닥은 백색 터널을 지나 들어가는 동화 세계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이다

그렇게 새하얀 밤길을 뚫고 두 시간을 가니 ‘유자와’ 湯沢였다

다시 40분을 더 달려 ‘나에바’苗場 스키장의 프린스 호텔에 여장을 푸니 어느 새 자정.

 

이번 여행의 목적은 그 인근의 ‘나에바’와 ‘타시로’ 田代 스키장의 슬로프를 점검하는 것이었지만 어찌 한 나절 짬을 내어 '설국 雪國'의 주 무대인 ‘타카한’ 高半 여관에서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문학과 그 정신 세계를 가늠해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키어들이 금쪽같은 한 나절 ‘유자와’를 방문할 또 다른 동기는 ‘예술공간 The SOHO’ 의 이승신 시인이 제공했다

지난 12. 15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세종 솔로이스츠’ 공연에서 이 시인과 환담 중

작년부터 시작된 ‘한국외교협회 스키동호회’ 의 일본 스키 여행과 금년의 ‘나에바’ 스키 계획을 언급했더니 ‘나에바’ 인근의 신칸센, 에치코 越後 - 유자와湯沢 역 앞 바로 길 건너의 우동집이 맛있으니 들려보라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인 일본 단가의 명인 '손호연 시인'의 최근 시집을 그 우동집 주인에게 전해주면 더욱 의미 있는 한.일 외교 스키여행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연은 이랬다

이승신 시인이 10년 전 ‘유자와’ 방문길에 우연히 역 앞의 우동집에 들렸는데

높은 설벽 사이로 걸어가는 아름다운 여인의 유화가 걸려 있기에 주인에게 그 화가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다음 해 어머니 기일 행사에 그 시를 테마로 그릴 세계의 좋은 화가들을 찾고 있다고 하면서

손에 있던 이 시인이 만든 어머니 손호연 시인의 단가집을 건네 주었다

 

 

                                                                                    

                                                                                                     이승신 시인

 

 

역전 앞 그 우동 맛을 못 잊어 다음 날 다시 찾아 간 시인에게

주인은 밤새 손호연 시인의 시를 읽고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 진심으로 감격해 했다

 

그런 스토리가 있으니 ‘유자와’에 가게 되면 맛있는 우동도 먹을 겸 그 집에 들러

그 후 새로 나온 시집을 전해주면 아주 좋은 문화 외교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도착 다음 날 오전 ‘나에바’ 에서 스키를 마치고

일행 열 한명 중 다섯 명이 2시에 ‘유자와’로 향했다

올해 팔순이 되는 두 분과 칠십대 두 분의 대선배들이 동행이었는데

일본에서 오래 근무한 분들의 일어 덕분에 이 시인이 언급한 우동집을 마침내 찾아낼 수 있었다

 

역에서 나오니 길 건너 ‘食事處’ 라는 큰 간판과

수제 우동이라고 쓰인 작은 간판이 붙은 목조 건물이 보였다. 조그맣고 오래된 전통 우동집이었는데 들어가니 이 시인이 언급한 높은 설벽 사이, 여인이 걸어가는 유화가 눈에 들어와 

'바로 여기로구나'  안도하며 자리를 잡았다

 

 

주인을 찾으니 마른 체구에 순박해 보이는 전형적인 일본인이 주방에서 나온다

 

 

                                        

                                                                                          우동집 벽의 설국 油畵


그에게 손호연 시인의 새 시집을 주며 10년 전 이 곳에 다녀 간 이승신 시인의 부탁으로

가져왔다고 하니 그는 거의 기절할 듯 기뻐하였다

 

우리 일행도 흥분하여 버섯 우동과 함께 사케와 비루를 마셔댔다

잠시 후 주인 타마다 玉田 상이 10년 전에 받은 손호연 단가집과 이승신 시인의 명함과

귀국 후 이 시인이 보내 온 편지 등을 들고 나와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10년 전의 시집과 명함, 서한을 순식간에 찾아 가지고 나오다니 ~ 

평소 그가 얼마나 이를 소중히 여기어 옆에 두고 살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하겠는가 라며  우리 모두는 그만 감동해 버렸다

 

    


 손호연시인의 새시집을 보는 타마다상과 최병효대사 

 

 

단가를 읽고 쓰는 일이 일본인 일상의 일이라고 하나  이 시골에서 30년째 우동을 만들고 있는 우동인이 단가시를 그토록 사랑하고 그 시집을 옆에 끼고 사는 것을 보니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기록과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고운 마음씨가 느껴졌다. 그도 10년 전을 회상하며 감격해 하고 우리 외교관 일행 하나하나와 이승신 시인에게 전해 달라고 그가 직접 만든 유리병 속의 ‘쯔께모노’ 를 선물하였다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 앞에서 배웅하는 유자와 우동집 셰프 오너 ‘타마다’상  

                                

 

식사 후 그에게 ‘타카한’ 여관까지 걸어가는 길을 묻고 나오는데

그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작별을 무척 아쉬워하는 모습이어 다시 한번

우리를 감동시켰다

 

20여분 ‘유자와’ 시내 길을 걸어 올라가니 소설 '유끼구니雪國'에 나오는대로

비탈진 언덕 위에 ‘타카한’ 온천 여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 ‘설국’을 집필한 방을 구경하고 온천을 하겠다고 하니 여관 주인인 듯한 여성이 매우 친절하게 그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원래의 여관 자리에 다시 건물을 지으며 ‘가와바다’가 묵었던 방은 보존하여 2층에 옮겨 놓았고 그가 앉았던 ‘자브동’과 글을 쓰는데 사용한 옻칠한 상도 그 방에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각자 그 ‘자브동’에 앉아 보았다. 자그마한 온천탕도 우리 뿐이었는데 유리창 너머로 내려다 보이는 설경이 일품이었다

유황 온천수도 매우 깔끔하고 상쾌한 느낌이었다

목욕 후 역 광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하니 여관 주인이 고맙게도 미니 버스를 내주었다

 

 

 

           
             온천여관 ‘타카한’의 ‘가와바다’가 머물었던 방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 

 

 

그날 저녁, ‘나에바’ 프린스 호텔에서 일행 열한 명 모두가 모여 식사하며

그 날의 게렌데 상황을 복기하는 중에 주 의제는 단연 우동집 그 남자였다

‘타마다’ 상의 친절, 그의 시 사랑과 시인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성품 등 일본인의 장점에 관한 분석이 이어졌다

 

이 날의 스토리에 감명 받은 나머지, 일행 중 세 명과 이미 갔었던 일본통 두 분 등 다섯 명이

다음날 ‘타카한’을 방문하고 다시 그 우동집에 들렀다. 그 저녁 다시 가진 스키 모임에서도 우동집 얘기가 주였다

우동집 주인 ‘타마다’ 상에게 ‘타카한’ 여관 방문 시 그 주인이 친절하게도 ‘가와바다’가 사용하던 방까지 안내해 주고 다시 버스로 태워줬다고 말하자 ‘타마다’ 상이 이실직고를 한다

 

그 여관 주인과 자기가 고교 동기라 어제 오늘 우리 일행의 여관 방문 사실을 알리고

친절한 안내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가와바다’ 가 쓰던 방은 일반인은 들여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타마다’ 상 덕분에 우리가 특별 대우를 받은 것이다 

아니, 그의 혼을 깊이 감동시킨 우리나라 시인 손호연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일 것이다

 

이번 여행은 골수 스키파 두명을 제외한 아홉명 중 둘째 날까지 여덟 명이 우동집과 ‘타카한’을 방문하였고 셋째 날에는 일행 중 나머지 한명이 신칸센으로 혼슈 북쪽의 ‘아키타’로 가는 길에 그 우동집에 들렸으니 연 3일 우리나라 전직 공관장 아홉 명이 ‘타마다’ 상과 의미 있는 한일 문화교류를 한 셈이다

일행 중 팔순의 불문학도는 일어에도 능통하여 서점에서 ‘설국’을 사는 등

설국 분위기 탓에  모두가 문학도가 되어버렸다

 

이번 스키 여행은 정신과 육체를 수련한다는 평소의 목적 외에 한일 우호 증진에 기여한 셈이니 ‘한국외교협회’ 의 활동 목표에 십분 부합된 셈이다. 이런 감동적인 교류를 가능하게 한 바탕을 제공한 손호연 시인과 지난 20여 년 그의 시 정신을 알리는 외교 활동을 전 세계로 활발하게 전개해 온 이승신 시인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게 되어 기쁘다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교토의 동지사 대학에 그의 시비가 세워지고 일본에서 존경받는 것처럼 최소한 한일 국민 간에는 서로 미움이 없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양국 정치인들도 올바른 역사 인식과 대의에 따라 한일 관계를 '가깝고도 가까운 사이'로 발전시켜 나아가기 기대해 본다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어라”

 

손호연 시인이 일찍이 노래하고 고이즈미 총리가 2005년 방한 정상회담 외신 기자회견에서

이 시를 읊었다지 않는가. 유감스럽게도 우리 측의 화답은 없었다

일본 총리가 손 시인의 단가를 언급할 것임이 이승신 시인에 의해 사전에 우리 측에 알려졌으니 우리 대통령이 거기에 합당한 단가시로 대응하였다면 서로 간에 격조있는 회담이 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타시로’ 스키장의 상고대 (soft rime) - 2015  2  25

      

 

 

 

* 설국 雪國의 그 유명한 첫 부분을 다시 읽어 본다

 

경의 긴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진 듯 했다

신호소 앞에서 기차가 멎었다  

(군바현/群馬縣과 니이가다현/新瀉縣의 접경지역인 기요미즈/淸水 터널을 가리키는데

이 작품은 니이가다현의 온천 여관이 주 무대다)

 

맞은 편 좌석에서 아가씨가 다가와서 시마무라島村 앞에 있는 유리창을 열어 젖혔다

눈의 찬 기운이 흘러 들어왔다

아가씨는 차창 밖으로 몸을 쑥 내밀더니 먼 곳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역장님! 역장님!"

 

등불을 켜고 천천히 눈을 밟고 온 사나이는 목도리로 콧등까지 싸매고

귀는 모자에 달린 털가죽으로 덮어씌우고 있었다. 벌써 그처럼 지독한 추위인가 하고 시마무라가 바깥을 내다보니

철도 관사처럼 보이는 바라크들이 산기슭에 으스스 추워 보이는 모습으로 흩어져 있을 뿐

눈빛은 거기까지 이르기도 전에 어둠 속에 묻혀 버린다

 

"역장님 저예요. 안녕하셨어요?"

"야아, 요오꼬 葉子양 아냐? 이제 내려가는 길이구먼. 또 추워졌지 뭐야"

"동생이 이번이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죠? 폐가 많겠어."

"이런 곳에선 금방 쓸쓸해져서 견디기 어려울 거야. 젊은이가 안됐어"

 

"아직 어린앤걸요 뭐. 역장님께서 잘 좀 지도해 주세요. 부탁이에요"

"걱정 마, 일은 잘하고 있으니까. 이제부턴 바빠질 거야. 작년엔 큰 눈이 내렸었지.

눈사태가 자꾸 나는 바람에 기차가 오도 가도 못 해 마을 사람들도 밥을 해 날라 주느라고 혼들이 났었지"

 

"역장님은 옷을 두둑이 껴입으셨군요.  동생 편지엔 아직 조끼도 입고 있지 않은 것처럼 씌어 있던데"

 "난 옷을 네 겹이나 껴입었어. 젊은이들은 추우면 술만 퍼마시고 있지

그러곤 저기서 아무렇게나 나자빠져 자는 거야. 게다가 감기까지 걸리고 말이야"

 

역장은 관사 쪽을 향해서 들고 있던 등불을 비춰 보았다

"제 동생도 술을 해요?"

"아아니-"

"역장님, 지금 돌아가시는 길이세요?"

"난 몸을 다쳐서 병원에 다니고 있는 중이야"

"어머  안됬네요"

 

일본 옷 위에 외투를 걸쳐 입은 역장은 추운 곳에서 서서 하는 얘기를 얼른 끝내고 싶다는 듯이 이젠 뒷모습을 보이면서 말했다.

 

"그럼  잘 가"

"역장님 제 동생은 지금 나와 있지 않나요?" 하고 요오꼬는 눈 위를 두리번거리고 나서

"역장님 제 동생을 잘 돌봐 주세요, 부탁이예요"

 

애련할만큼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높은 울림 소리가 밤눈에서 그대로 메아리쳐 올 것만 같았다

 

                   

 

 駐 노르웨이 대사  LA총영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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