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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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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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25 21:03

 

   영화 건축학개론의 첫사랑 한옥                                                                          2014  11  12 

 

 

                               서촌 이야기 

 

서촌은 내 고향이다

나의 원적 본적 현주소가 '종로구 필운동 90'으로 되어 있

미국에 유학을 가 머문지 20여 년, 그리워 한 곳도 이 마을이다

 

경복궁 서쪽이어 서촌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인왕산의 옛 이름이 서산西山이어서 그 산 아래 있는 이 동네를 서촌이라 부르게 되었고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이어 세종 마을로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경복궁 곁에 있는 마을로 양반과 학자들, 문인, 예술가들이 많았고 우리가 60여 년 전 이 곳에 왔을 때에도 여유롭고 참 살기 좋은 주택가였다

옛 골목들이 미로처럼 있어 어디든 통하고 통인 시장과 금천교 시장의 두 전통 시장이 있으며 사직공원과 활터, 어린이 도서관, 종로도서관, 유서 깊은 경복고 경기상고 배화여고 배화여대가 있고 무엇보다 서편에 길다랗게 인왕산이 버티고 있다

시내 한복판이면서 살짝 들어와 있어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그러다 미국의 삶 후에 귀국해 보니 학교를 따라서든 올라가는 부동산 값을 따라서든 많은 이들이 그 사이 강남으로 가버렸다. 그들이 간 후 이 곳은 시내 한복판임에도 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서민 동네가 되어 버렸다.  3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커다란 한옥에 혼자 남아 대책 없이 추위에 떨고 있는 어머니가 답답하기만 했었다

 

또 다시 수 많은 세월이 흘렀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누상동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수성동 계곡이 여러 해 공사 끝에 겸재 정선이 그린 본래의 수성 계곡으로 복원되어 물이 내려오고 강남 아파트가 좋다고 가버린 사람들이 수 십년이 지나 이제 오래된 이 마을이 좋다고 찾아들고 있다

 

문학, 예술, 건축 외 다양한 문화와 골목들, 다채로운 음식이 살아나고 서촌에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떠났던 사람도 돌아오지만 출판사 영화사 갤러리 패션 레스토랑이 들어오고 통인시장이 사람들로 붐빈다

 

의 대가로 일찌기 이웃나라의 인정을 받은 어머니가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맞았다. 적어도 이조 시대와 함께 했을 이 마을과 사랑과 영혼이 깃든 집을 차마 버리고 떠날 수 없어 추워도 외로워도 홀로 참고 견디었던 어머니가 맞았다는 걸 깨달은 건 가시고도 한참 후의 일이다

 

손호연 시인 말고도 이 곳엔 이상, 윤동주, 어려서 본 노천명 같은 위대한 시인과 춘원 이광수의 흔적이 살아 있고, 조선시대 이름난 겸재 정선뿐 아니라 이상범 화백과 박노수 화백, 어머니가 그 집에서 금계라는 그림을 직접 사신 천경자 화백이 있고 평양에서 바이올린을 같이 한 이윤모 아버지를 보러 필운동 집에 오셨던 김동진 가고파 작곡가도 2009년 97세에 가시기까지 누상동에 계시어 매일 아침 우리 집 앞을 잰 걸음으로 산책하시는 걸 보았다

 

서울에 꼭꼭 숨어있던 보석 '서촌' 탐방이 시작되어 손호연 이승신 모녀시인의 집은 물론, 이상 시인의 집,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 박노수 미술관, 건축학개론 영화 속 서연과 승민의 아련한 첫 사랑 씬을 찍었던 누상동 한옥과 63년 역사로 중고 서적이 전혀 팔리지 않아도 버티어온 할머니의 대오서점, 대만 사람이 대를 이어 50여 년 짜장면을 만들어 온 영화루, 대기업이 판치는 세상에 줄을 서는 동네 빵집 효자베이커리, 대통령이 임기 중 서민의 동정을 살피러 명절에 예고 없이 들리는 통인시장 그리고 수성동 계곡의 푸르른 자연과 역사를 돌아본다

 

고층 건물과 규격 아파트에 이제쯤 싫증이 났을 이들이 여기 와 남의 나라 관광하듯 겉으로만 훑는 것이 안타까워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그 감동의 역사와 휴먼 스토리를 알려주어 어떠한 기운이라도 좀 얻어 갔으면 하고, 여기에 오래 살고 있는 유일한 시인詩人인 나는 생각해 본다

 

덜 세련되고 시골스럽고 어리숙해 보이나 아직까진 정겨운 마을이다 

와싱톤, 뉴욕의 삶에서 조국을 그리는 말과 글을 많이 써왔으나 돌아와보니 정작 그리워 했던 건 어려서 자라난 이 마을이었다

 

이 곳이 북촌처럼 상업화만 될 것이 아니라 오밀조밀 골목길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인왕산 정기에 옛 조상들의 혼과 문향, 예술향이 살아 넘치는 서울의 대표적 품격 있는 마을로 오래오래 보존되길 나는 소망한다. 세상이 여러번 바뀐다해도 그런 마을 하나쯤 나라의 자존심으로 있어야 한다

 

다 떠났어도, 수 백년 유서 깊은 자신의 고택이 도시개발 포크레인에 길로 뭉턱 잘려 나갔어도, 일찍이 바꿔타지 않아 큰 손해를 보았어도, 그 역사의 가치와 사랑의 혼을 묵묵히 지키며 한 집에서 한 줄의 시로 그것을 일생 표현해 온 어머니가, 함께 걸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몹시도 그립고 감사하다

 

 

 

                          젊을 때부터 정들여온 집 떠나기 망설여져 구석구석 그대 모습 생생해

 

                                                                                                    손 호 연

           

           

 

 

 

시인 이상의 집  -  2014  10  28

 

   

63년 역사의 대오 서점  -  2014  10  28


늘 길게 줄을 서는 동네 빵집  -  2014 10 31

 
옛 게임방이 서촌소개소로 된 옥인상점


통인 시장과 기름 떢볶이  -  2014  11  9


 '손호연 이승신 모녀시인의 집'  종로구 필운동 90  -  201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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