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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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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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4 15:46
쳐 에세이

Marc Chagall Flute Player Lithograph
 
 
상 처
 

지난 5월 어머니 날 북악산이 커다랗게 보이는 경복고 운동장에서 교회 운동회의 릴레이 달리기에서 뛰다가 넘어져 오른쪽 팔꿈치와 왼손바닥을 다쳤다   미리 나가 바톤을 받아 뛰고 바톤을 다음 타자에게 주기까지 몸보다 마음이 앞서가고 코너를 도는데 전속력을 내어 뛴 것도 문제였지만 바닥이 왕모래가 좍 깔려있어 보통 운동화로는 미끄러지게 되어 있었다

그 순간 넘어져 다친 것 보다는 모든 사람이 쳐다보는데서 미끄러진 것도 부끄럽고 우리 팀이 나 때문에 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앞서 피가 나고 쓰라려도 대강대강하고 왔는데 이 주가 넘어도 오른팔이 욱신거리고 흉터가 남을 것 같아 그날 용감히 자원해 나간 게 후회가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려서도 걸핏하면 넘어졌었다  무릎에 자주 딱지가 내렸고 다리뼈를 계단에 부딪치던 그 아픔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다리 한 부분은 피가 나서 어린 마음에 겁이나 옆에 있던 신문지를 북 찢어붙인 게 흐릿한 문신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나 나의 감정이 상했거나 마음이 상했던 것에 비하면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아픈 파편들을 떠올리면 다 잊었는줄 알았는데도 어딘가 먼 과거에서 보이지도 않는 감정과 느낌이 올라와 뜨겁고 뭉클한 것이 가슴을 스친다
 
눈에 보이는 그 옛 상처나 문신은 이제 하나도 아프지 않고 느낌조차 없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들은 지금도 가끔 아파온다. 가족이나 인간관계에서 받은 오해나 핀잔, 상처는 어째서 아직도 가슴 속에 살아남아 꿈틀거리는 것일까

나는 그날도 바로 얼마 전 끝없이 춥던 날 기나긴 이 겨울만 끝나도 날씨만 따뜻해져도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버거운 세상살이와 아직도 마음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조국의 삶 그리고 반복되는 마음의 상처로 계절의 여왕 5월인데 나는 가슴을 앓고 있었다

미국서 낳은 아들 아이도 개구쟁이일 때는 무릎이며 다리 발 손가락까지 걸핏하면 다치고 피가 나고 딱지가 앉았다. 아이의 보드라운 살에 상처가 나는 걸 보는 것은 엄마로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엄마가 된 순간부터 아이에 대한 걱정은 이것저것 따라 다니지만 그 중에서도 몸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으뜸일 테니까
그러나 아이의 마음이 상하는 것을 보아내는 것은 더 가슴 아픈 일이었다

한창 말 배우는 나이 세살에 서울서 몇 달 우리 말을 배워 왔는데 미국에 다시 와서 유아원에서 교실 안 토끼장 속의 토끼를 보고 토끼, 토끼 부르다가 다른 미국 아이들에게 자기의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걸 깨닫게 된 아이는 딴 나라 말을 쓰는 학교는 안가겠다고 아침마다 악을 쓰고 울었고 그런 아이를 종일 벌세우 듯 일하는 이 엄마는 매일 학교로 데려다 주었다

다시 일하는 엄마를 따라 5학년에 서울에 와서 학교를 가게 됬을 때 텃세 부리는 아이들을 피해 며칠을 하루 종일 사직공원에서 놀다 온 것을 나중에 알게 됐을 때, 그리고 서울에서 가족을 기대한 것처럼  잘 못보고 참으로 외로왔을 때, 한국에 데려온 걸 늘 죄스러워 하다 다시 고등학교를 미국 기숙사 Prep School로 보내게 되었는데 미국에서 와 한국에 내린 뿌리를 다시 옮기는 그 외롭고 힘겨운 과정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런 자잘한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울컥해 진다. 몸을 다치는 것만이 상처가 아니기 때문에. 그때 사직공원에서 해질 무렵 돌아온 아이는 “그 애들은 나와 놀기 싫은 거야” 했었지.  그땐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들었을테고 그래서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

그날 운동회가 끝나고 나오는데 탄자니아에서 킬리만자로 산을 안내하는 마라톤 선수 알프레드가 내 팔꿈치와 손바닥의 피를 보더니

“Sunshine,  아프리카에서는 몸이 다치면 몸이 더 강해진다고 하고 스포츠 선수는 넘어지고 다칠수록 더 스타가 된다”고 위로해 준다

그렇구나
내 영혼의 상처와 마음의 넘어짐도 내 마음과 영혼을 더 단단히 더 강하게 만들어 주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네


깨우침이 더딘 나는 팔꿈치를 다치고서야 또 하나의 소중한 깨우침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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