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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가신 이의 발자취 2017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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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25 22:44

 

 

한겨레 신문                                         2017  9  18       

 

[가신이의 발자취]                                 

 

 

   ‘친한파 언론인’ 하시모토 아키라 선생 영전에

 


지난 8월24일 도쿄 오츠야에서 하시모토 아키라 선생의 추도식이 열렸다.
2017년 8월 24일 도쿄에서 열린 하시모토 아키라 선생의 추도식

 

 

"누구나 한 번은 가지만 우리는 그 날이 오는 줄을 모르며 산다."

 

갑자기 가신 하시모토 아키라 橋本明·1933~2017 선생의 도쿄 추도식에서 사회자가 한 말이다. 한 날 한 시각에 천여 명이 모였다는 것은 그가 존경받을 삶을 살았다는 뜻일 게다.  생전의 교류와 넓은 인맥을 보여주듯 일본의 각계 각층이 모였다.

 

 

처음 그를 만난 것은 2013년 3월, 후쿠시마 대지진으로 고통받은 일본인들을 생각하며 펴낸 시집 <그대의 마음 있어 꽃은 피고> 등 2권의 나의 책 출판기념회에서다. 도쿄 외신기자클럽에서 행사 후 긴 줄에 서서 그의 차례가 오자 감격했다는 말과 함께 악수를 했으나 나는 그가 누구인지를 몰랐다.

 

 

 

일본의 왕족·귀족학교인 학습원 고등시절인 1950년무렵 소풍 때 황태자 아키히토(맨왼쪽)와 함께 찍은 같은 반 동기들(고가쿠유) 사진. 오른쪽 둘째가 하시모토 아키라선생이다.

일본 왕족 학교 학습원 고등시절 1950년 경 소풍 때 황태자 아키히토

(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 오른쪽 둘째가 하시모토 아키라

 

 

그는 <교도통신>의 저명한 저널리스트로 많은 책을 저술했으나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장래에 일본 천황이 될 아키히토明人 황태자와 학습원學習院 동기로 더 유명하다. 그도 선친은 검찰총장이요 사촌형이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였으며 동생 하시모토 다이지로가 시코쿠의 도지사인 정치명문이나, 왕족과 귀족가를 받는 학습원이라 해도 나라의 천황이 될 황태자를 맞는 것은 아주 드문 일로 그와 같은 반 30명에 하시모토가 들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천황의 동기를 그냥 동기라 하지 않고 ‘고가쿠유’御學友 라는 특별 존칭으로 부르며 존경한다. 학습원 고등 시절 그는 황태자와 긴자 거리를 다닐 만큼 '절친'이었다. 장례식에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 등 유럽 국가 원수들과 함께 한 사진들 액자 앞에 그의 저서를 늘어 놓았는데

<미치코 황후의 연문> <알려지지 않은 천황 아키히토> 등 일본 천황에 대한 책만도 4권이 보인다.

 

 

 

2016년 9월 아키타현 아키타시에서 열린 음악회의 무대에서 나란히 인사를 하고 있는 이승신(왼쪽) 단가시인과 하시모토 아키라 선생(오른쪽).
2016 9월아키타시의 음악회 무대에서 연설하는 이승신 시인과 하시모토 아키라

 

 

그를 서울에서 세번, 도쿄에서 네번, 교토에서 내가 공부할 때에도 찾아왔고 아키타에서도 보았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여 매해 바티칸에서 합창을 해온 그가 일본 작곡가에게 나의 시를 주며 작곡을 의뢰했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함께 한 음악회가 동경과 아키타에서 4번 열렸었는데 2016년 9월 아키타시 음악회 무대에서는 나와 함께 스피치를 하기도 했다.

 

 

그가 대표로 있는, 한국을 공부하는 모임인 도쿄의 일한담화실日韓談話室에 서울에서 강연하러 매달 오는 91세 최서면 선생이 갑자기 가시게 되면 자신에게 먼저 알려달라며 깊은 걱정을 했는데 그가 먼저 간 것이다.  최근 그를 본 것은 지난 5월 27일, 그가 한일관계의 권위자인 최서면 선생을 인터뷰해 쓴

<한국 연구의 귀재 최서면>의 도쿄 출판기념회에서다.

 

 

 

지난  5월27일 도쿄에서 열린 <한국연구의 귀재 최서면>  출간기념회 때 초청강연하는 최서면(왼쪽) 선생을 바라보고 있는 저자 하시모토 아키라(오른쪽).

5월27일 '한국연구의 귀재 최서면'도쿄 출간회에 강연하는 최서면 선생과 하시모토

 

 

 

 

 

그는 1974년 ‘8·15 광복절 육영수 피살 사건' 취재차 서울에 온 이후 ‘한국'을 마음에 품어 왔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일왕의 한국 방문을 실현하고자 힘써 온 인물이다. 그것이 ‘한일 관계의 과거를 뒤로 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가장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환히 웃고 있는 영정 사진과 관에 누운 모습을 보며 한반도와 동북아에 위기가 몰려 온 지금, 양국의 돈독한 관계를 이루고자 애썼던 ‘큰 별’ 하나 잃음이 애석하다.

 

 

죽음이 슬픈 것은 이 지상에서 다시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눈으로 보면서도 우리는 그 날이 실제 오는 걸 모르며 살아가지만 모쪼록 그가 품어 온 43년의 한국 사랑과 더 나은 한일관계를 위해 헌신해 온 그의 열정이 부디 식지 않고 한일 양국에 잘 이어져 가기를 소망해 본다.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아무도 모르면서 장례 줄에 서 있네'

 

                                                                                                                    손 호 연 

 


 

글 · 사진   이승신 단가시인 · 에세이스트 ·  TV 방송인  손호연단가연구소 이사장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811371.html#csidxa043817a7586a85bef277f0dbb88a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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