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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일본의 저력과 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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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4 18:27

중앙일보   2011  3  11 

 

‘일본의 저력과 안목’

 


 

 

얼마 전 삼성고위직 임원과 대화를 하는 중에 일본 소니의 임원들과 만나게 되면 삼성전자의 최근 성과에 풀이 죽어있는 듯 하다고 약간은 으시대듯 말하는 걸 보았다. 나도 삼성에 있은 적이 있고 국민의 한사람으로 그 눈부신 성과를 참으로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마치 한일의 차가 많이 좁혀지고 줄어든 듯이 아니 우리나라가 마침내 그들을 이기기라도 한 듯한 사회 일각의 분위기엔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나는 미국에서 오래 일해 온 오히려 미국통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문화의 깊이를 알거나 일본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국어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 줄의 시인 단가短歌를 배워 그것을 써온 시인 어머니의 책들을 번역 출간하고 영상 제작 등을 통해 그 정신과 가치를 세계에 알려오면서 일본과 그 문화 그리고 일본 사람들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교양이 있고 공부하는 민족으로 독서율은 세계 1위요 그들의 섬세함과 꼼꼼함은 뛰어나며 일본을 여행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 듯 예의바르고 친절하며 범죄율은 세계 최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놀라워 하는 것은 그들은 거의 전 국민이 시인이라는 것이다.  시의 두 장르인 단가와 하이쿠를 그들은 읽고 짓는다. 조간 석간으로 나오는 수준 높은 신문들은 매일 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TV를 켜면 시청자들의 투고에 전문가가 일일이 평을 하며 유명 인사들이 둘러앉아 제목 하나를 놓고 시를 짓는다   

 

오래 전 오슬로에 있는 일본 문화원에서 그들의 문화로 단가를 전파하는 것도 보았다  일본 황궁의 신년 첫 행사로 ‘가회시 歌會始의 의儀’라고, 단가의 대가를 궁으로 초청하여 그 앞에서 천왕과 황후와 황태자가 자신들이 지은 단가를 직접 낭송한다. 영국 여왕을 비롯한 세계 어느 나라 왕족이나 지도자가 시를 짓고 낭송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 동경 방문에도 ‘백인일수 百人一首’ 라고 고대 만엽집 시대의 단가 시인 100인의 시 한 수를 책과 트럼프 같은 게임으로 만들어 초등 중등학교에서 그 백개의 시를 외워 서로 짝을 맞추고 정월에는 가족이 모여 그 놀이를 하며 경기 대회를 열어 시가 그들 생활 깊숙이에 자리잡아 가는 걸 보았다 

 

더구나 그 만엽집과 단가는 일본이 자랑하는 정신적 보물로 온 세계가 일본의 고급 문화로 알고 있으나 실은 1400여 년 전 많은 백제인들이 일본에 건너갔을 때 전해 준 우리의 시다. 그것이 원래 우리의 보물인지도 우리는 모르는 새, 일본은 세계로 그것을 전파하여 미국 대학과 유럽에서는 영어와 유럽의 언어로 그 절제된 한 줄의 시를 배우고 짓고 있다. 일본에 고급 이미지가 더해짐은 물론이다  

 

가실 무렵까지 조국에서 아무도 몰라주던 한국 시인 손호연을 천왕이‘가회시의 의’에 대가로 초청하고 그 독자들은 일본 아오모리에 그의 시비를 세우며 일본 수상이 한일 정상회담 연설에 그 시인의 시 한 줄을 읊고 그 평화 정신을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나는 그들의 저력을 생각했다  

 

그런 기본의 힘과 실력과 안목이 있는 일본을 지금 우리는 반도체 등 몇 상품들이 그것도 우리의 독창적인 건 단 한 개의 제품도 없이 전부 그들에게 배우고 벤치마킹하고 발전시킨 걸로 우쭐해 한다는 것은 분명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일본 국민의 5분의 3 이상이 백제인의 후예, 우리의 핏줄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경제적인 이유나 계산보다 같은 피가 섞여 있는 민족이 많이 있는 이웃 나라에 진실된 마음과 애정으로 대하며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늘 이겨 오던 축구에서 반전을 보았듯, 우리가 일본을 마치 거의 따라마신 듯 생각하거나 그들의 저력과 힘을 행여나 얕잡아 볼 일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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