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 뉴스 마이다스 2009 1 1
<His & Her Story>
'침묵과 응축으로 삶의 근원을 노래하다'
시인 이승신
바이칼 호수가 보여주는 풍경은 돈 욕망 명예와 권력과 관계가 없다
맑고 투명한 태곳적 물빛과 하늘, 바람 소리 뿐. 나아가 마음 속의 빈 방, 그리움, 자신만의 빛깔과 조우하는 곳이다
속절없이 저무는 기축년己丑年이 아쉽기라도 하듯 문화계 팔방 미인 이승신 시인이 시집을 냈다. 지난 여름 사흘동안 방문했던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앞에서 짧은 즉흥시 126편을 쏟아낸 것
“다 쳐내어 침묵하는 것만이 제대로 된 시일 지 모른다”는 그녀는 이 시를 통해 더욱 짧고 간결해졌다. 그러나 더없이 깊고 다부지다
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파도가 들려주고 우주가 연주하는 소리일까. 시인은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조용히 귀기울이며 자기 몫의 여정을 깨닫는다. 광대한 자연 앞에서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가 시를 따로 공부한 적은 없다. 초등학교 시절 동시로 상들을 탄 적은 있지만. 그러나 수필가로 칼럼과 단편으로 호흡이 긴 산문은 45년간 써 왔다
이번 시집은 2008년에 이어 두 번째 내는 시집이다.‘숨을 멈추고 Breathtaking'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해의 첫 시집 '치유와 깨우침의 여정에서'를 연이은 기운이다
70여 명의 문화계 인사들과 떠난 3일 간의 여행에서 쏟아낸 것들이다. 반응이 참 좋다
“내가 서있던 곳이 꼭 바이칼 호수여서 나오게 된 건 아니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언제 어디에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 속 한가득 차있던 생각이 무르익어 자연스레 흘러 넘치는 것이다
그는“누구나 시를 지을 수 있고 시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직접 노래를 부르고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삶의 근원에 대한 진지한 사색,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물과 일상을 보는 안목, 맑고 깊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관찰력과 영감을 키워 나가면 된다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때로는 노래로 그림으로 그리고 시가 되어지는 것이다
다 같은 근원이다. 여기에 기교는 필요하지 않다
진리와 삶의 근원이 단순해서일까. 이 시인에게 많은 설명은 필요 없다
그래서 시가 자꾸 짧아진다. 침묵에 가깝게 최소한으로 응축시킨 결과다
세 줄짜리 시도 있다
'억년의 시공간 호수와 내가 그 무대에 서다’
‘무대’라는 제목의 시 전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읽는 이에게 긴 여운을 만들어 준다. 억년의 시공간이 육중한 무게로 마음 밑바닥까지 내려앉는다. 인간의 눈으로 헤아릴 길 없는 호수의 깊이에 한없이 진지해지고 겸손해진다. 시간과 공간과 호수 그리고 내가 만드는 무대 위 풍경이 읽는 이의 눈 앞에 펼쳐진다. 드넓은 우주의 한 장면이
본인이 의식하든 못하든 이 시인에겐 어머니의 피가 흐를 것이다
국내 유일의 단가 시인이었던 손호연 여사의 딸. 이 시인의 시집에는 이제는 계시지 않는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곳곳에 담겨져 있다. 절절한 사부곡과 사모곡이 읽는 이마저 그리움에 사무치게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예술 공간 The SOHO 한 쪽에 세워둔 오래 된 상에 자꾸 눈길이 간다. 낡고 바랜 낮은 나무 상. 어머니는 그 상 앞에서 어린 딸과 시를 얘기하기도 했다. 오래 전이어 그 내용이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그의 시는 짧지만 여운과 울림이 길고 크다
TV 방송인으로 시인으로 에세이스트로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틈틈이 아니 실은 아주 부지런히 미술 전시회를 열고 수준급 연주회를 벌이고 '이승신 로맨틱 독창회'를 가진다
피카소와 샤갈을 비롯해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수집하는 콜렉터로서도 명성을 날린다. 오래 살아오던 집이 길로 많이 잘려 나가면서 미술관과 레스토랑, 서비스 레지던스로 기획해 바꾸기도 했다.
그러니 그녀의 다음 행보가 무엇일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숨을 멈추고
저것은
누구의 손으로 쓰는 시인가
이 편 하늘의 웅장한 노을을 바라보다
잠시 숨을 멈추고
이기다
사랑하면 이긴다
내가 이길 수 있는 길을
다시 깨우치는
이 너른 호수 앞
하늘에
하늘이 내려 와
호수와 꼭 붙었다
아 내가 하늘에 있구나
물에 발을 담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