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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센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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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0 12:32

 

 

    우먼센스                                 2018  6월호

 

                              시인 이승신

 

                   마음을 움직이는 것

 

 

 

 시인 이승신은 문학을 매개로 한 건설적 한일관계를 꿈꾸고 있다

 

 

이승신의 '왜 교토인가?' 출간

'문학'으로 건설적 한일관계 복원 앞장

 


 
일본 '단가短歌'의 대가인 시인 손호연 선생을 어머니로 둔 시인 이승신은 문학을 매개로 한 건설적 긍정적인 한일관계 복원을 꿈꾸고 있다. 

 

이승신 시인을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듯 햇볕이 따사로웠다.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달아났고 이따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최근 출간된 '이승신의 왜 교토인가? ' (2018·시가詩歌 410 쪽) 를 들고 온 시인과 함께 '모녀시인의 집'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는다. 푸른 하늘을 잠시 감상하는데 그가 한 줄의 시, 단가를 읊는다.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어라”  시인 어머니 손호연이 지은 단가 ‘평화의 시’다. 손호연은 일제강점기 1923년에 태어나 17세에 동경제국여자대학을 유학하며 '시성詩聖' 사사키 노부츠나에게 단가를 배워 귀국 후 63년간 단가 2000 수 이상을 남겼고 일생 한국에서 시를 지었으나 일본에 더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단가를 아세요? 일본의 시로 알려진 단가는 1400년 전 우리가 일본에 전해준 31음절 한 줄의 시입니다. 어머니는 단가를 통해 한일 간 평화와 인류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는데 일 관계가 좋지않게 된지 꽤 되어 안타깝습니다”

 

절실한 소원이 있다 는 그 ‘평화의 시’는 지난 2005년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한일 우호를 소망하며 읊은 단가이기도 하다.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노무현 대통령께 어머니의 평화 정신이 깃든 시를 보여주며 그 평화의 정신을 제의할 것을 권유했지요. 당시 외교부 반기문 장관에게도 두어 번 말했고요. 그런데 권유하지 않은 고이즈미 총리가 어머니의 ‘평화의 시’를 읊은 겁니다.”

이승신은 당시의 한일 정상회담을 떠올리며 아쉬워 했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에 앞서 우리 대통령이 평화의 한 줄 시를 읊으며 회담을 시작했다면 국격이 올라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총리가 시인 어머니의 ‘평화의 시’ 를 읊고 그 정신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한 그 날의 정상회담과 외신 기자 인터뷰 내내 대통령 곁에서 지켜 본 반기문 장관이 인터뷰를 다 하자마자  ‘이 시인이 말했던 걸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고 했고요.

 

지금은 서로가 얻을 득과 실을 따지는 걸 외교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외교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중요하지요. 결국 외교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문학이 중요한 거지요.”

 

 


 

 

◆ ‘윤동주 시인의 모교’  일본 도시샤 대학서 유학

 

한일 정상회담에 얽힌 비화를 비롯해 이승신에게는 각양각색의 여러 스토리가 있다. 스피치와 낭송회, 강연 등으로 일본을 자주 방문하다가 어느 날 일본 사회를 깊숙이 들여다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까운 나라인 한국과 일본은 왜 이리도 삐걱대는 것일까 란 생각을 하게 됬어요. 예술의 핵심인 문학으로 한일 관계를 승화시켜 보려 일생 노력한 어머니를 생각하면 날이 갈수록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일본에서 공부하고 실제로 몸으로 부딪치다 보면 무슨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토에 있는 도시샤 대학은 시인 윤동주가 일본에서 한학기 유학했던 학교로 학교 안에는 그의 대표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승신은 도시샤 대학에서 일어와 고전문학을 공부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캠퍼스에 있는 윤동주의 시비를 바라보게 된다.

 

“사계절 중 윤동주의 시비는 6월에 가장 시인의 시비다워요. 그 앞에 보랏빛 꽃이 필 때인데 시인에게 잘 어울리지요. 그의 시비는 비록 한인교우회가 세운 거지만 그윽한 영혼과 기를 품고 있어요. 깊은 골짜기일수록 곁에 높은 산이 우뚝 서 있지요. 윤동주는 산 같은 존재입니다. 갈등이 깊은 두 나라여서 그 영혼과 기운의 절개가 높아 보이지요.”

 

이승신은 도시샤 대학에서 윤동주의 기를 느끼며 그 시비 앞을 쓸고 닦았다. 일어로 공부하는 것은 늦으막이 어려웠고 힘겨웠지만 마침내 이겨내고 졸업을 했다.

 

 


 

 

그는 이화여대와 조지타운대학 대학원, 시라큐스대학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그 어디보다 도시샤에서 늦게 한 만학이 자랑스럽다.

 

“도시샤 대학 총장이 졸업 축사를 통해 인품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관용을 지키기 위해 불관용을 불관용해야 하는가?’ 란 질문을 던지며 지식과 인품을 겸비한 세계의 양심을 육성하는 것이 도시샤 대학의 지향점이라고 했지요. 스물 두 살의 대학생이 졸업 축사의 의미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 역시 그 나이 때에, 축사의 의미를 다 못알아 들었겠지요 .(웃음) 하지만 이제 축사를 들으니 의미가 남달랐어요. 관용과 양심을 지닌 창립자 150년 전 '니이지마 조' 라는 인물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보게 됩니다.”

 

◆ 교토의 4월 초 벚꽃 · 11월 말 단풍은 예술


한 줄의 시 '단가'의 대가인 시인 손호연 선생의 딸인 이승신은 문학을 매개로 한 건설적긍적적인 한일관계 복원을 꿈꾼다. 

 

794년부터 1869년까지 일본의 수도이자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교토에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인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 간 사람을 뜻하는 ‘도래인’이 상당수였다.그들이 교토 라는 도시 자체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제 사람들이 교토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고 재정의 출납·징세 사무·외교 문서를 관장하는 업무를 보았다. 당시 한문을 해독하고 문장을 작성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백제인이었다.

 

“교토를 걷는 외국인들은 교토의 역사가 느껴지는 건축을 보며 감탄을 하지요. 그러면 그것은 우리 조상이 지은 것이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전쟁으로 660년 멸한 백제에서 살아남은 민족이 아스카 나라 교토로 건너와 도시와 문화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래서일까, 교토를 걷다 보면 우리의 역사 속을 걷는 기분이 들어요. 백제인의 혼령이 느껴집니다.”

 

교토를 세세히 들여다 본 이승신은 '자신만 몰래 알고 싶은 명소들' 을 살며시 소개한다. 교토는 3월 말에서 4월 초 그리고 11월 말에 방문해야 더욱 아름답다고 덧붙이면서.

 

“4월 초 교토에 가면 벚꽃이 예술이지요. 1000년이 넘는 세월, 도읍지 역할을 한 교토엔 3000개의 궁과 절이 있는데 유서 깊은 도시의 건축물과 멋진 벚꽃의 조화를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많은 곳 중 하나를 고르라면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인 네네가 죽은 남편을 위해 기도하려고 지은 집 '고다이지’를 저는 꼽아 봅니다. 가레산수이 정원에 벚나무 딱 한 그루가 서 있는데 피어있는 그 고요의 모습이 일품이지요.”

 

그는 이어 단풍철에 갈 만한 명소도 꼽는다. 단풍이 보기 아름다운 곳으로 ‘호공잉’을 추천한다. 교토 중심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아라시야마에 있는 곳이다. 아라시야마 산이 있고 가츠라강이 흐르는 곳의 유명한 사찰 텐류지 바로 곁에 있는 정원이다.

“호공잉은 일 년 중 단풍철에만 공개되요. 수많은 단풍나무가 냇물을 따라 늘어져 있는데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나 황홀한 풍경입니다.”

 

명소를 알았으니 이제 맛집을 찾을 차례다. 군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시인 이승신에게 그녀만이 알고 있는 맛집을 물었다.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이 찾는 맛집이야말로 진정한 맛집이기에 다음에 교토를 찾을 일이 생기면 꼭 방문해 볼 참이다. 이승신은 ‘야마모토멘조’란 우동집을 추천한다. 허름하고 어둑한 분위기에 20석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집으로 머리를 질끈 묶은 젊은이들이 손 빠르게 우동을 만들어 삶는데 키츠네 우동과 야채 덴푸라의 맛이 기가 막히다고 한다.

 

“4시간이나 줄을 서 기다리다 먹은 우동이 일품이었어요. 후에 야마모토멘조가 무엇 때문에 그리 인기인지 들으니 ‘고급 말고 2류 식당 - 교토’라는 주제의 조사에서 2위 맛집으로 뽑혔다고 해요. 2류 식당의 점수를 따로 매기다니, 재미있는 발상이죠? 만약 일본에서 어느 식당을 갈지 고민한다면 줄을 서 기다리는 곳을 찾으세요. 일본에서 줄이 길게 서있다면 그건 믿을 만한 곳입니다.”

 

비밀스런 맛집을 소개하던 이승신은 어머니 손호연 시인이 좋아한 식당도 공개했다. 그의 어머니가 방문해 맛있다고 한 곳은 ‘한베이후’로 15대째 운영하는 식당인데 밀가루에서 빼낸 글루텐으로 만든 독특한 요리를 판매한다.

 

“어머니의 책을 보고 알게 되어 찾아갔다가 그 맛에 반한 한베이후는 1689년 문을 열어 328년의 역사를 지닌 곳으로 현재 15대째 운영 중이지요. 내어오는 음식의 모양과 색이 사랑스러우며 맛이 부드럽고 담백해요. 오랜 세월 대를 이어오며 지극 정성으로 연구·개발한 맛과 그 정성에 감탄한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는 곳입니다.”

 

◆ 나의 어머니

 

15대를 이어 운영 중인 한베이후처럼 손호연-이승신 모녀 시인 역시 2대째 문학가로 활동하고 있다. TV 방송인 수필가 번역가로 활동한 이승신은 지난 2008년 '치유와 깨우침의 여정에서' (2008 중앙북스) 를 내놓으며 시인으로 데뷔했다. 일각에서는 이승신을 두고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문학적 재능이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어머니는 모국어를 빼앗긴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단가를 배워 그것을 일본어로 써왔어요. 저는 당시 일본어를 모르니 읽을 수가 없었지요. 어머니 가시기 전 어머니 시집을 어머니와 함께 우리 말로 번역하면서 단가의 의미와 어머니의 가치를 마침내 알게 됐어요. 어머니는 평시 이 딸이 시에 흥미가 있어 보이지 않으셨는지 저에게 단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으셨어요.”

 

그랬던 그가 어머니 가신 후 성지순례를 가서 누군가 계시를 준 것처럼 가슴 속에 수많은 싯구가 내려앉았다. 그 느낌을 즉시 짧은 '한 줄의 시'로 썼다. 운명처럼 단가를 짓게 된 것이다. 그 반응이 좋았고 그래서 시집이 나왔다.

 

그 후 매해 시집을 내다가 2011년 동일본에 대재난 쓰나미가 왔을 때에는 양국에서 두 언어로 두 권의 시집을 내며 큰 화제가 된다.

 

“짧은 시에 응축된 생각과 영감이 담긴 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아요. 어머니의 단가 중 ‘이웃해 있어 가슴에도 가까운 나라되라고  무궁화를 보다듬고 벚꽃을 보다듬네’ 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 말로 할 때에 ‘메데떼’라는 표현을 ‘보다듬고’ 라고 했어요. ‘인내하다’ ‘포용하다’ ‘용서하다’ ‘사랑하다’ '싫어도 봐주다' 등 여러 의미가 포함된 깊이 있는 말이지요. 어머니가 왜 그 단어를 쓰셨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요.

 

무엇이든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먼저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만 있다면 쓰라린 역사를 품고 있는 한일 관계도 새로이 쌓을 수 있지 않을까요 ?”

 

 


 

 

 

◆ 결국은 다시 문학

 

3시간에 걸친 인터뷰 내내 이승신은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치, 예술, 신앙 등 어느 분야에서나 깊은 지식을 쌓으려면 '문학 지식'이 기본이라는 것. 그러면서 일본의 교육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깊이 아는 건 아니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많은 일본 사람이 단가 몇 수를 기본으로 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시와 문학을 정말 사랑해요.”

 

일본인들은 일본 시의 두 장르인 단가와 하이쿠를 읽고 짓는다. 단가와 하이쿠는 정형적인 운율을 가진 전통적인 시가다. 단가는 개인적인 사유의 철학과 감정을 표현하는 시가인 반면, 하이쿠는 계절을 나타내는 ‘봄내음’ 혹은 ‘겨울바람’ 등의 계절어가 반드시 포함되는 단시다. 쉽게 말해 단가가 클래식이라면 하이쿠는 대중가요다. 일본인들은 그런 고전 시가를 외우는 것이다.

 

“일본의 신문은 매일 ‘단가’를 싣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해요. TV를 켜면 시청자들이 투고한 단가에 전문가가 일일이 평을 하고, 유명 인사들이 둘러앉아 하나의 제목을 놓고 단가를 짓기도 하죠. 일본 황궁은 신년이 되면 단가의 대가를 궁으로 초청해 천황과 황후, 황태자가 지은 단가를 직접 낭송하는 행사를 가져요. 그것을 대가의 자격으로 들어주는 이를 '배청인' 이라고 하는데 어머니가 1998년 그 배청인을 한 것입니다.

 

천 년 전 단가 시인 100인의 시를 반으로 나누어 트럼프 같은 게임을 만들어 어린 아이도 명절에는 가족과 그 놀이를 하기도 하지요. 아이들이 시를 외우며 단가의 반쪽을 맞추는 겁니다. 단가가 그들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그는 일찍이 유럽 문화를 접하며 우리 조상은 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수많은 유럽인이 교토의 고대 건축과 예술에 감동하며 우리 조상이 일본에 전한 짧은 시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선조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교토의 긴 역사를 바라보면 우리 선조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본래 가지고 있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교토를 통해 우리의 전통을 보존하고 그를 기반으로 더 나은 것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도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어요.”

 

그는 많은 한국인이 교토를 가 보길 바란다. 우리에게서 사라진 옛 고향이 느껴질 것이며 한일관계를 깊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승신이 바라는 그날을 기다리며 작은 홀씨가 민들레 꽃이 되듯 그의 노력이 결실 맺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지은 우먼센스 기자  a051903@naver.com

 

 

 

 

 

 

 

 

 

                  

 

 

 



[이 게시물은 이승신님에 의해 2018-06-22 13:22:15 컬쳐에세이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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