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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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소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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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09 08:46
여전히 연일 여러 겹 줄을 서는 살던 동네 후타바 떡집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교토 소식 2

동경에 이어 교토에서도 마음이 내려간 순간은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 데마치出町' 는 '왜 교토인가 2' 책의 부제이기도 한데 그 제목 한 편의 에세이에는 인연 있는 많은 상점과 집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나오는 시장의 과일집 미장원 우동집 사바스시 집 떡집 찻집 꽃집들이 등장한다. 

교토에 갈 때만 서울서 들고 가는 공부할 때 책가방인 푸른 백팩에 책을 가득 넣어 도시샤대 근처인 데마치出町 동네로 가 몇 해 만에 보는 그들에게 인사도 하고 일일이 사인해 책을 건네주었다. 자신의 가게 이름이 나오고 사진도 나오고 글이 나오니 놀라고 무척 기뻐하며 반겼는데 그 중엔 상점이 코로나로 폐쇄되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도 있어 여간 슬픈 일이 아니었다. 다음에 오면 또 보겠지 하며 연락처도 받아 놓지 않은 것이다. 
백 년 이 백 년 거기에 있었으니까.

실제로 이번에 동지사대 들어가기 직전 그 대문 밖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집밥 같이 해주어 자주 가던 정든 그 노부부에게 먼저 달려 갔었다.
아도리브 다. 
남자는 아무 것도 안하고 서 있기만 하고 부인이 요리하고 세 테이블에 부지런히 나르는 메뉴도 없이 알아서 주던 수 십 년 된 그 집. 한국에서 김을 가져가 주면 한국 음식은 어떻게 다른가요, 한국에 가보고 싶어요 하던 정겨운 그였다. 굳게 닫쳐 있어 유리창으로 들여다 보니 모든 집기가 상위에 올려져 있었다.  안타까웠다.

아도리브 부부


그 잉어들을 보면 내가 기를 받는다고 책에 썼던 라쿠쇼 찻집.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집인 고다이지 바로 옆집으로, 널찍한 정원의 연못 속 수많은 코이 잉어는 너무나 잘 생기고 선명하고 활기차 보기만 해도 힘이 번쩍 나서 시무룩해지려 하면 그리로 갔고 여주인은 한국서 작가가 왔다며 줄이 길어도 그 집만의 떡과 차를 내주었다. 나는 그 특별한 와라비 떡보다 유리 문 열고 나가 연못 앞에서 귀족 같은 잉어들을 보는 게 좋았다. 실제로 많은 지인에게 보여주었고 놀라워 했었다. 네네노미치 그 길에 수십 그루 벚나무를 심어준, 대를 이어 백 년 해온 유명 찻집이 팔린 것이다.

라쿠쇼의 연못


교토에 한참을 있어도 온천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었다. 여러 달 지나서야 마침내 찾아낸 구라마 온천. 거기서 가끔 한국말이 들려서 늦게서야 내가 찾은 여기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면 오사카에 머무는데 거기서 알려줘서 왔다고 했다. 거기서는 먼 거리다. 

살던 데서 주말에 전차를 20분 타고 종점에 내리면 첩첩 산 중, 공기부터 다른 뜨건 노천에 몸을 담근 후 내려와 그 온천 집에서 어려운 숙제를 해가며 먹은 두부는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가. 집에 있는 수건을 늘 안 가져가 200엔 추가를 내어 이번 만은 정신 차리고 수건을 들고 가 어둠에 전차를 내렸는데, 매번 역전서 맞아주던 승합차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산과 울창한 수림은 그대로인데 온천은 닫은 것이다. 언제든 가면 한적하고 고요해 딴 세상 만 같던 그 곳이 오랜만에 가도 고대로 맞아줄 줄 알았다. 대를 이어 내려온 집이다. 마음이 내려갔다.

구라마 온셍

일본인들은 대대로 지켜오는 가업을 여간해선 옮기지도 그만두지도 않는다. 
동경대 박사 아들이 후에 부모 하시던 우동 가게를 이어 한다는 뉴스를 종종 보지 않는가.

그러함에도 이런 천재지변이 닥쳐올지 어느 누가 알았겠나.  이젠 외국서 온 사람들로 넘친다지만 그걸 몇 해 어찌 버틸 수 있었겠는가. 
설마 했는데 한국서 보던 것처럼 안타까운 일이다. 허전하지만 그러나 어찌 보면 천 일의 재앙에 닫은 숫자가 적은 편이라고, 긴 날들을 더 많은 이가 버텨온 게 오히려 대단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저자가 보통 감동 감탄하지 않았다면 그런 곳이 어찌 책에 올랐겠는가. 그렇게 책에 나온 곳들 중 세 개가 사라졌음을 현장 확인하고는 쓸쓸했다. 남은 이들도 하나같이 그간 거리에 아무도 없었다고 얼마나 울적했는지 아침에 가게 나오고 싶질 않았다고 텅 빈 길 사진을 보이며 누누히 말한다. 하긴 나도 4년 만에 갔으니까.

여러 색의 붓을 사곤 하던 두 평 상점의 그가 안되 보여 상점 나와 바로 인 사람으로 넘치는 관광 1순위 길 네네노미치를 힘내라고 보여주었다. 갑갑한 기간이 얼마나 길었으면 빽빽한 사람들 행렬에도 바로 감격해 하지를 않았다. 

이건 우리 생에 겪는 상황이지만 수 천 년 역사에 이보다 더한 것은 오죽이나 많았을까. 어느 세대 어느 인생에나 그런 체험이라도 있어야 비로소 앞서 간 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게 아닐까. 

우리를 큰 마음으로 키우려는 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미국에 살 때
               철 없이 힘들다고 투정을 써 보내면
               인생은 고해다 
               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단정한 편지가 왔다
 
               기억은 다 안 나지만
               끝에는 그렇게 큰 사람이 되어간다
               고 하신 듯 하다

               살아볼수록 고해인데
               천상에서도 
               철 덜든 게 안타까워 
               더한 깨우침을 주시려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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