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교토 단풍 이야기
어느 새 2월이 되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12월 말이 되어가도록 아름답던 교토 단풍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잊지 못해 사진 몇 장을 보이려 합니다. 서울 오기 전날 교토서 잃은 폰이 아직도 한국 세관에 있어 그 사진들을 기다리고 있긴 합니다.
동경 교토에 팬데믹으로 정든 곳이 사라져 섭섭했습니다. 그러나 자연 만은 그대로여 안심입니다.
가을 풍경이 좋은 많은 곳 중에 가이드 북과 인터넷 서치 없이 순전히 발품으로 내가 꼽은 곳은 한 30여 군데가 됩니다. 그 중 쇼렝잉 키타노덴망구 난젠지 루리코잉 아라시야마의 수이란, 이번에는 이렇게 만 봅니다.
쇼렝잉몬제키青蓮院門跡.
몬제키 란 말이 붙은 곳은 천왕이 한때 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천 살 가까운 다섯 그루 거목이 쇼렝잉 안팎에 천연기념물로 우뚝 서있습니다. 그걸 올려다보며 안으로 들어서면, 천왕과 이름 높은 작가의 단가시 한 수와 초상이 36점 액자로 천정 가까이 보이는 방이 나옵니다.
조금 더 들어가 밖으로 탁 트인 너른 방은 천왕이 시를 짓던 곳인데, 그 끄트머리 마루에 앉으면 눈앞에 정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내 책 표지에도 나오고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찍었지만 실제로 보는 색과 형태 그 분위기의 고급 진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키타노덴망구北野天滿宮는 학습과 공부의 신으로 알려진 분을 모시는 곳이어 부모가 1살 3살 5살이 된 자녀를 전통 일본 의상을 입히고 그 곳으로 데려갑니다.
입장료를 내고 좌측으로 들어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더 예쁜 새빨간 단풍을 보며 걷다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게 되는데 거기엔 시냇물이 흐르고 교토의 범위를 구획지으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400여 년 전 돌담을 촘촘히 쌓은 게 보입니다. 물 따라 양 켠으로 이어지는 단풍이 그런 것과 어우러져 장관입니다.
교토의 명소는 가을이면 서로 자기네가 최고라고 하는데 그 중 하나로 에이칸도 사원을 가곤 했습니다. 그리 발을 옮기니 입구에 줄을 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을 앞에 놓고 그런 걸 한다는 건 슬픈 일이어 발길을 돌립니다.
잠시 생각하다 바로 옆의 난젠지南禅寺를 향합니다. 난젠지는 거대한 초입 대문과 기둥이 대단하고 단풍 길 입구에는 옛 단가가 새겨진 이끼 낀 시비가 눈길을 끕니다.
그 안에 볼 곳이 많지만 무엇보다 로마식 수도교로 지은 수로각이 붉은 벽돌로 높이 서 있습니다. 경건한 경내에 스케일 웅장한 서양 구조물이 특이해 그걸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일본 최대 호수 비와코에서 끌어오는 물이 수로로 줄기차게 흐릅니다. 옛부터 교토 시민에게 공급되는 물입니다.
그 외에도 미술 전시관과 여러 정원이 각각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데 보호차 열지 않기도 합니다. 이번은 천수암天授庵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가을 연못이 환상입니다. 한때 화가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가 좋아서 파리에서 꽤 떨어졌어도 몇 번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특징이 달라 비교하기는 그러하나 영적인 아름다운 흐름이 있어 천수암 연못이 더 상급으로 느껴집니다.
루리코잉瑠璃光院 은 살던 데서 전차로 20분 가까이 가야 해 시내를 기준으로 하면 약간은 먼 곳인데 겨우 몇 군데 뽑은 거에 넣은 것은 볼 때마다 그 풍광에 감탄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친구 둘이 내가 있을 때 온다고 먼 길을 서둘러 며칠을 와서 보인 곳이기도 합니다.
북부 히에이 산 쪽이어 다른 데보다는 잎이 좀 졌지만 여전히 감동입니다. 몇 해 전에는 중국 사람들이 몰려와 아담한 아래 위층이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고즈넉한 이층 다다미에 앉아 내다보는 풍경과 옛 일본 건축의 부드러운 조화가 우아하고 아름다워 자연에도 격이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왜 교토?' 4권을 쓰고 만드느라 힘겨워 다시는 그걸 안 쓴다는 마음이지만, 만에 하나 다시 쓰게 된다면 그건 '루리코잉의 가을' 을 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고생한 친구들이 '아 여한이 없다~ '고 합니다.
교토를 가면 한 30분 걸리는 아라시야마嵐山를 가게 됩니다. 허나 이번은 신간을 나누는 일정으로 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동지사 동기로 일본 교회 목사가 된 이진철 목사님이 갑자기 나타나 그리로 데려다 줍니다. 지름길로 달리니 가는 물길도 근사하고 시간이 짧게 걸렸습니다.
오래 전 귀족들 별장이 있던 마을로 가츠라 강과 그걸 건너는 도케츠교渡月橋와 산이 어우러진 풍광이 빼어나 어느 계절이나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지요.
'왜 교토' 에 등장하는 산이 바로 앞에 보이는 가츠라 강가의 수이란 호텔. 예약 없인 입구 문도 못 들어갔었는데 책을 보여서인가 반기며 들게 합니다. 입구에 'A Luxury Collection Hotel' 이라 쓰여 있고 세계적 호텔 잡지에 '가장 전망 좋은 Top View'로 꼽히는 곳입니다. 대단한 View입니다.
서울은 영하라는데 12월 말이 되어도 지지 않는 애기 손만 같은 잎이 이게 진짠가 싶게 눈이 부시어 2월이 되었어도 글을 쓰기로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교토는 어디가 제일로 좋은가? 그걸 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를 보면 이게 일등 같고 저기를 가면 거기가 최고만 같아 한참을 생각하게 됩니다.
롯데관광에서 '이승신과 함께 하는 교토 여정'을 기획해 간 적이 있습니다. 12 곳을 골라 보인 후 물었습니다,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드냐고. 다 넘 좋다며 망서리다가 각기 다른 곳을 꼽았습니다.
세계적 Top 기업인 Apple 창립자 Steve Jobs는 부를 과시하는 덴 마음이 없고 오로지 장인의 세련된 제품을 경험하여 아름다운 제품을 세상에 내놓은 데만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기업가와의 차별은 그의 탁월한 안목 심미안인데 그런 궁극의 경험이 결국 그가 방문한 교토의 정원 등 일본 문화에 있었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다음 계절 보시기를 바래어 돌고돌아 온 폰 속의 사진 몇 컷을 이렇게 보입니다.
인간이 지은 건 사라졌어도
신의 손길 닿은 건 여전해
보이지 못한 3년이 애처러워
살랑이는 그 손짓에 마음마저 물이 드는
천 년 고도古都의 늦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