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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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어도 꺼질 줄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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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18 17:28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비에 젖어도 꺼질 줄을 모르고

                                                                                          

찌는 더위는 꿈속이었나.
이렇게 하루 사이 서늘해지니 미리 알았더라면 그 짜증도 잘 참을 수 있었을 건데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매 해 경험하며 곧 지나간다는 걸 알 만도 한데 매 번 참지를 못 했습니다

아는 이들이 서촌에 사는 게 부럽다는 말을 최근 해오고 있습니다.
듣기 좋으라고 그러기도 하겠으나 신문과 매스콤에도 서촌이 국내 MZ들에게 가장 힙한 곳이라고 자주 나고 있기는 합니다.

시내 한복판이면서도 살짝 들어와 있어 긴 세월 시골같이 고즈넉하고 조용했는데 아파트에 고층 건물이 싫증났는지 이주 해오기도 하고 걷는 이들이 늘기도 합니다.

청와대에 궁궐에 다 자기 마당 같이 쓰니 얼마나 좋은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얼듯 보기 그렇지 일상을 보면 그렇지 만도 않다고 대응하기도 합니다.

좀 불편했으나 겉으론 참 아름답던 300년 넘는 고택의 마당과 동산이 길로 잘려나가고 당장 양옆의 땅을 살 순 없으니 청와대 앞으로 경복궁 덕수궁으로 작은 공원으로 뒷산으로 가기는 합니다.
그러면서 강 건너 사람들이 말하듯 부러운 것보다는 이 구석 저 구석 부족한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워싱톤의 400년 된 올드 타운 Georgetown 안의 대학을 다녔고, 교토의 동지사대同志社大學 주위 더 오래 된 마을을 매일 걸었고 런던의 올드 타운과 프로방스의 마을을 접한 사람의 눈에, 우리 타운에 남들이 부러워 할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며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원적 본적에 같은 현주소이지만 이게 이랬으면 저게 저랬으면 하는 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모습도 가끔 있습니다.
청와대로 가는 효자로 대로에 너덧 카페가 나란히 있고 현재는 갤러리가 된 작은 2층 건물엔 보안 여관이라는 간판이 여직 붙어있는데 한때는 서정주 김동리 등 작가들과 화가 이중섭이 머물며 집필을 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 곁의 33 Market 이라는 카페는 차분하고 자연스런 분위기로 차 한 잔이 만원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그 왼켠으론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이름도 예쁜 역사 깊은 메밀국수 집도 사람이 넘치는데 바로 그 33 카페와 메밀꽃 필 무렵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이 내게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곳 중 하나입니다.

그 골목을 들어서면 왼쪽에 유럽에서나 있을 것 같은 중고 예술 책들 Shop 이 있고 그 우편 붉은 벽돌 한옥과의 조화가 아름다운데 왼쪽 건물 위에서 흘러내리는 능소화 한 무더기가 미소를 짓게 합니다. 여름내 동네 여기저기 나무를 타고 오르는 그 꽃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 선명한 빛은 특히 눈을 끕니다.

옛 양반 집 정원에 심는다 하여 양반꽃 어사화로도 불리는 능소화가 여름 꽃이긴 한데 찌는 더위와 폭우 태풍을 거치고도 흩으러지지 않고 그 주홍 물감이 손에 묻을 듯 영롱합니다.

나보다 더 오래 이 곳 서촌에 사신 어머니 생각이 자연스레 납니다.

살아온 고택이 잘리고 나머지에 새로 지으며 어머니가 묵은 짐은 많고 당장 갈 곳이 없었는데 어머니를 존경하는 분이 북한산이 코앞에 우람하게 보이는 구기동 빈 집을 빌려주었습니다.

그즈음 온 몸의 피를 가는 투석을 시작하게 된 어머니가 세브란스에서 여러 시간 그것을 하고 지쳐 집으로 오면 거기 정원 나무에 감기며 오르는 능소화가 자신을 맞이한다는 시를 후에 보며 그 정경을 상상하게 됩니다.

생각하면 일상의 엄청난 그 하루하루를 힘들다 아프다 소리 한 번 하지 않으시고 너른 정원에서 맞아주는 것은 능소화 뿐이었으나, 야윈 몸 지친 와중에도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과 감성과 적적함, 세찬 비가 와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그 붉은 영혼에 힘을 얻는 모습이 가신 후 보게 된 능소화 연시에 나옵니다.

사랑스런 이 샛길을 걷고 바라보며 어머니의 마음도 떠오르고 이 마을에 남겨진 이들의 삶도 느껴보는 여전히 비가 오는 계절과 계절 사이의 순간입니다.


누구를 사모하며 능소화 붉게 타오르나 비에 젖어도 꺼질 줄을 모르고


                                                               손 호 연

 

 

 


 

 


 

 


경복궁 영추문, 맞은편이 메밀꽃 필 무렵 - 청와대 가는 길 효자로

 


작가들이 머문 90년 역사의 보안 여관, 지금은 실험적 갤러리

 


33 Market Cafe 통의동

 


33 Market 의 뜰

 


능소화 늘어진 IRASUN 예술책방과 한옥 사이 샛길

 


IRASUN 책방, I like Sunday를 줄인 말이라고

 


샛길 붉은 벽돌의 한옥

 


메밀꽃 필 무렵 곁 '통의동 마당공원'은 고건 총리가 만들었다고 했다 

 


서촌 집근처 여기저기 피어난 능소화 -  2022 여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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