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5 영웅 백선엽 장군님이 백세 되도록 살아계시어 기쁘다. 언제라도 와도 좋다 하신 장군님을 이리저리 빼다 가끔이나 뵙는데 6 25가 다가오면 절로 발길과 마음이 용산 전쟁기념관의 그 분 사무실을 향한다. 그 해 6월 25일, 북이 갑자기 남침하자 대한민국 최초의 장군이 되어 낙동강 다부동 전투 선봉에 서서 평양까지 밤낮을 걸어 용감하게 진격해 간 그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기 때문이다. 겨우 20대였다. 속으로 아버지의 DNA를 조금 느끼는 나는 여러 해 못 뵌 아버지가 몹시 그리운데, 지인과 동기가 더 남아 있지 않은 듯 해 아쉬웠다. 그러다 어느 날 전쟁기념관에 사무실을 둔 정일화 박사가 백선엽 장군이 아버지 나온 평양사범 출신이라며 나를 데리고 갔다. 동기가 아니어 내 아버지를 모른다 한다면 전쟁 경험이 없으니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아버지가 2년 선배라며 장군님은 나를 편하게 해주셨고 자상히도 아버지를 속속들이 이야기해 주어 그리움에 벅찼다. 그 분의 기억력은 대단해 이루 말로 다 옮길 수도 없다. 평양사범 때 이야기, 그 후 각기 다른 길을 갔는데도 아버지 일생의 역사를 일일이 다 기억하고 계셨다. 그 후 방문에도 묻지도 않는데 이 선생 아버지는 평양서부터 여러 방면의 탁월한 수재로, 만주에서의 교육과 교직, 서울에서의 관직, 사업 등 두루 두각을 나타내시고~ 내가 듣기 좋으라고 만 그러시는 것 같진 않았다. 90년 전 이야길 살아 계신 분에게 들으니 애잔하면서도 사모하는 아버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번 만남에는 생의 많은 아쉬움을 표하신다. 말로 표현한 건 아니나 당시의 김원봉 사건, 걸핏하면 일부에서 장군을 폄훼해서인가 소침해 보이신다. 그저 마음으로 그렇게 느꼈다. 태어나니 일제 강점기, 거기서 태어나 공부하고 일한 것을 트집 잡는 것에 대응할 가치도 없지만, 자신이 지나 온 지고지난의 삶과 동족의 전투를 돌아보니, 그래서 소침해졌을 것이다. '나는 일생 사람들을 구제하고 나라를 구하는데 정말 전력을 다 했어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맥아더 장군 워커 장군과 함께 한 사진은 물론, 해군 출신 새 미국 대사 해리스가 장군님 생신에 무릎 꿇어 존경을 표하는 사진들이 있는 사무실을 나와, 용산 내 드래곤 힐 랏지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야기 중에 다시 또 '이윤모 선생은 수재 중의 수재로, 수재 부인을 만났고 그 사랑의 열매가 이 선생이다. 여러 좋은 일도 있겠으나 어려움도 있었겠지.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니 보상이 될 것이다.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것이 인생이지. 그게 인생이야' 자신의 백 년 인생을 돌아보며 하는 말일 지도 모르나, 다독여 주는 아버지 같은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뜨금했다. 한미동맹이 단단해야겠지요? ㅡ 70년 내 경험에 의하면 그 길 밖에는 없어. 안보 뿐 아니라 미국이 버텨주어 세계를 상대로 한 우리의 무역 투자 경제가 이만큼 이루어진 것이지. 일본과도 가까워야겠고요? ㅡ 일본과는 너무 가까워도 안되고 멀어서는 더욱 안된다, 하시며 지나간 일본역사를 길게길게 이야기했다. 일본은 한때 육군은 독일처럼 강했고 해군은 영국보다 강했다. 그때 미국에 공격만 안 했다면 지금 더 대단할 건데~ 그런데 이제는 미국과 단단히 한 팀이 되어 앞으로 아시아와 태평양을 다스릴 것이다. 중국은 요 ? ㅡ 중국은 워낙 커서 영원히 그를 따라갈 수는 없다고 본다. 장군은 이 순간에도 전쟁의 모든 체험, 작전, 군사 전략 모든 걸 알고 있는데 그것이 나라의 안보와 국방에 유용되지 못하는 것이 마냥 유감이라고 거듭거듭 말한다. 그 분을 뵐 때마다 브레인 기억력 마음 정신력 애국심은 나이와는 전혀 무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존경하는 선배님의 영애에게 이리 조촐히 대접하여 죄송하다' 한 때는 용산 속 거기서 스테이크 드는 걸 부러워들 했는데, 늘 겸양하시며 내가 지난 세월 행여나 험란하게 살지는 않았을까 살피는 따스한 인간적 면모를 늘 보인다. 그리운 아버지를 어려서부터 가시기까지 그리도 세세히 알고 계신 분이며,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되지도 못 했을 영웅의 손을 잡고 그의 육성을 바로 앞에서 듣는다는 것에 그 따뜻한 마음에 나는 늘 감격을 한다. '또 와요~' 그를 뵈면 겸허해지고 자세가 바로 서게 되고 언제나 더 애국적이 되었다. 방공호 속 앉은 채로 간 시체를 넘고 넘어 밖으로 나는 나아가네 손호연의 6 25 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