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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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첩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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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04 12:00

 

 

 교토 육첩방                                                                             2019  1  22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육 첩 방

 

 

윤동주 시인이 1940년 대 일본 유학에 있던 방이 육첩방이었다고 하는데, 70 몇 년 후 같은 학교로 유학가서 내가 쓰던 방도 그런 크기였다.

 

동지사同志社 대학의 기숙사 정보를 보니, 학생들과 키친을 함께 쓰는 것이어 독립 방을 찾으러 미리 가 보기로 했다. 예산을 기숙사의 몇 배로 했지만 아주 높진 않아서인가 하루 6개를 보아도 다 엇비슷하여 돕는 분에게 미안해, 마지막 것으로 하겠다고 하고는 후회를 했다. 좁아서다. 작은 욕실과 키친, 화장실 그리고 이층 다락이 있었지만 방은 서너평 되어 보이니 윤동주 시에 보던 바로 그 육첩방이다.

 

바꾸고 싶었으나 다음 달 다시 교토에 도착하여 공부는 시작되었고 그럴 시간도 마음 여유도 없었다.

 

서울 집에 흔한 숟가락 그릇 칼 가위 수건 연필 자 스카치 테잎 등을 다 놔두고, 책과 노트북, 옷 몇 점, 두툼한 요만 맞춰가지고 오니, 당장 하나같이 다 필요한 것들이어 그 생각 못한 것을 후회했다. 말은 장기로 공부간다고 해놓고선 며칠 여행할 때처럼 갔으니.

 

며칠이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웬 걸, 사면 뭐가 필요하고 사면 필요하고 족히 두어 달이 걸렸다. 주위 유학생에게 그 말을 하니 자기는 여섯 달너머 걸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 첨부터 눈에 띄어 산 건 화초였다. 갑갑했기 때문이다. 방 한 면인 큰 창으로 조망이 트였으면 괜챦았을 텐데 2 미터 앞에 낮은 건물이 가로 막고 있었다. 숨을 쉬려니 화분부터 사고 또 사고 열 몇개를 사들여 창 밖 땅바닥에 색 맞추어 죽 늘어 놓았다. 미국에 살던 것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돕는 학생이, 아니 밥솟부터 사셔야지, 아깝게 꽃은 왜 자꾸 사시느냐 고 보챘다.

 

밤에 집에 오면 창부터 열고 화초에 물을 주었다. 꽃잎과 가냘픈 입파리가 한들한들 반겨 주었다. 졸업 후 귀국할 때 살림 거의를 후배에게 주고 왔는데, 내게 미소를 주고 위안을 준, 예쁜 그 꽃 화분들을 가져오지 못하는게 제일 아까웠다.

 

아 이 만년의 공부가 간단한게 아니로구나를 깨우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본서 공부를 하려면 기본이 일어인데, 깊지 않은 일어로 20 과목을 따라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2011년 일본에 큰 쓰나미가 나고 한일 양국에서 나온 나의 두 시집이 화제가 되고는, 일본에서 일어로 스피치할 기회가 꽤 있었다. 돌아보니 일본을 공부한 적이 없었다. 양심에 걸려 미국서 대학원 나온 지 40년이 되어가지만 이 기회에 일본을 공부하면?  생각을 했다. 이것저것 신청하는데 1년이 걸렸다. 요즈음 선거에만 열중하지 국가 경영에는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다 라는 말이 돌 듯, 서울에서 일상의 일을 하면서 신청을 하는데 집중했지, 합격 후 공부에 대한 준비는 제대로 없었다.

 

되돌릴 수 없는 나의 무모한 결심을, 그래서 학업을 빨리 마쳐 보려니 종일 학교 종일 공부였다. 도서관 문을 닫아 주섬주섬 백팩을 챙기어 메고 나오면 밤 10시가 넘었다.

 

일본에서 스피치와 강의와 교류도 잘 할 수 있고, 학과 과목도 따라가 이수도 할 수 있길 바랬었다. 실전에 들어가니 졸업을 하려면 둘 중 하나만 택하여 성공한다 해도, 그것도 기적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한국에서 고별 인사까지 하고 왔는데, 중도포기 안하려면 할 수 없이 전자의 대망은 포기하고, 20 과목 집중하여 모든 시험과 과제를 패스하는 후자의 길을 택해야 했다.

 

공부는 스트레스였으나 학생들은 친절했고 교수들은 권위적인게 없이 지나치게 친절하고 지나치게 겸손했다. 한국 미국 학교 때와 비교가 되었다. 학교 식당과 매점에서 마주하는 직원들은 학생들에게 수시로 고개를 숙이며 놀라울 정도로 겸허하게 대해 준다. 그들에겐 일상적인 흐름이겠으나 나는 매번 놀라 그들을 가만히 바라다 보았다.

 

도서관 앞에 창립자 니이지마 조新島 襄가 세운 벽돌 채플이 있고, 바로 그 우편에 윤동주 정지용 시비가 있다. 수 많은 나라에서 150년 간 유학 온 중 한국인 시비만, 그것도 두 개나 서 있는 것이 신기하다. 최근 윤동주 영화가 나오고 TV 등으로 그가 많이 들어났지만, 27년 짧은 생애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마한 고통을 받았다. 한글 시를 써 독립운동을 선동한다고 대학 근처 경찰에 붙들려 갔고, 멀리 후쿠오카 감옥으로 옮겨져 해방을 눈앞에 두고 숨졌다. 티끌 하나 없이 아름다운 캠퍼스에 두 시비 앞만 치지도 건드리지도 않아 나는 매일 시비 앞을 닦고 소주병을 버렸다. 

 

그가 육첩방에서 고뇌하며 쓴 시도 들여다 보았다. 그 심정을 알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일제 시대도 아닌데 무슨 영광을 받으려 이 좁은 방에 노트와 자료를 펼쳐놓고 밤을 새어야 하나, 매밤 나는 그 생각을 했다. 오래 전 일본 정부 차원의 어머니 행사차 교토로 갔을 때에 전생의 고향 같이만 느껴졌었다, 며칠 있을 때는 그랬다. 장기간으로, 그것도 어마한 과제와 양국 삶을 동시에 해내려니 그들이 나에게 지극히 친절했지만 몸 담은 그 곳은 남의 나라, 이국異國이었다. 고국에 두고 온 일은 얽혀져 갔다. 멀어지는 인간관계, 향수가 밀려 왔다.

 

샤워를 하고는 바로 옆 가모가와鴨川로 가서 캄캄한 밤 그 강을 길게 걸었다.

윤동주가 스승으로 우러르던 정지용 시비에 새겨져 있는 시가 바로 그 '가모가와'다.

이국異國에서의 애닯음 애절함 설움이다.

 

윤동주 시비가 있다고 알려진 후, 한국에서 관광객이 오면 입장권이 없는 그 대학으로 들어 가 시비를 보고는, 바로 옆 정지용 시비의 '가모가와鴨川' 시詩도 본다. 어머니가 나오고 오랑쥬 (오렌지의 프랑스어 발음) 껍질을 씹는게 나오고 수박 냄새 물바람과 사랑하는 이가 나오고 아 가모가와 십리ㅅ벌이 나온다. 몇 일의 교토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한국시인의 마음이다. 

 

지금도 교토에 가면 데마치 동네, 3층 건물의 아래 층 103호, 드나들던 문을 바라다 본다. 책상과 바닥에서 늦도록 공부하고 글을 쓰고, 꽃 위치를 바꾸고, 현미밥을 누르고, 방 바닥에 깔아 놓은 식사를 대접하던 순간들, 서럽고 외로워 기도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몸은 빠져 나왔으나 지금도 살아 거기에 머물고 있을 기억과 그 아우라를 마주하며 가만히 바라다 본다.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엔 밤비 속살거리는데

                 등불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도서관 닫은 밤 10시후 펼치는 6첩방의 노트와 메모
첩방 바닥의 공부 과제  - 2016

걸핏하면 사오던 근처 꽃집  - 교토 가모가와 강 곁  2018  3 

사람 머리만한 둥근 무  -  데마치 시장

데마치 시장 속 유명 사바스시 (고등어 초밥)

 프렌치 토스트 들며 공부하던 가모가와 강이 보이는 Bon Bon

공부 책상 아래 마루바닥에 찬을 늘어놓고 대접하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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