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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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동네, 데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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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21 16:30

 

 

 


   긴 줄을 선 후타바出町ふたば                                                            2020  1  3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내가 살던 동네

 

서울서 태어나 살았으니 정이 들었고 워싱톤 유학가서 살았던 것도 20년 가까이여 정이 많이 들었지만, 최근 교토에서 공부하며 학교 근처에 살게 된 동네도 꽤 정이 들었다. 졸업 후 교토에 가게 되면 아무리 좋은 명소를 돌아보고 짧은 시간임에도, 살던 동네에 가보고 싶어지는 걸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그렇게 버릇이 되었다.

 

첨에는 낯설었다.

동지사同志社 대학에서 걸어 10 분 거리여서 잡았으나 좁았다. 한국보다 몇 배 넓은 땅의 나라에, 대신(장관)이 18평에 산다는 이야기 등 일본사람이 작은 공간에 산다는 건 익히 들었었다. 그들의 겸허요 삶의 우선순위가 우리와 다른 면이겠다.

 

공부하러 왔다는 걸 늘 상기하며, 대학 도서관이 한 밤에 닫으면 집으로 돌아와, 벽 하나가 창인 걸 와락 열고 땅바닥에 늘어 놓은 열 두어 개 화분의 꽃색을 조화롭게 바꾸어 주는 것이 기쁨이었다. 사진을 찍어놓지 않아 아쉬우나 내 머리 속엔 지금도 그 사랑스러움이 있다.

 

그런데 그 위치에 살아서 좋은 것이 꽤 있었다.

우선 나오자마자 데마치出町商店街 전통시장이다. 신선하고 값이 싸 먼 곳에서도 찾아오는 곳이다. 시장 안에 큼직한 수퍼가 두 곳 있어, 이 곳은 이게 유리하고 저 곳은 저게 좋고 싸고를 알게 된다.

 

과제가 많아 귀한 시간, 몇 군데 학교 식당에서 주로 드나 어쩌다 저녁을 집에서 하게 되면 현미에 두어 종류 콩을 섞어 누르고, 없는 게 없는 수퍼에서 유바 두부 스시 사시미(회) 치즈 신선한 야채 과일들을 산다. 한국 나물도 만들어 판다.

 

그 중 내가 제일 누린 것은 일본 사람들이 고급 생선으로 여기는 도미를 회뜨고 남은 머리와 살을 붙쳐 꽤 되는 양이 450엔 정도, 일본 기준으론 거의 거저인데, 무를 썰어넣고 연한 일본 된장을 조금 풀면 싱싱하고 정말 맛있는 도미국이 된다. 그걸 끓여 친구나 학생들에게 대접하면 최고급 요리로 감격해 했다. 추억이 아까워 그 수퍼 멤버십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

 

그 안에는 한방이 있어 기력을 더해 준다고 콘설팅을 하고 있고 서점도 있다. 우동집이 있고 고등어로 만든 사바 스시(초밥) 로 이름나 줄 서는 식당도 있다. 나는 일반 스시와 사시미를 좋아하나 시큼한 사바 스시만은 안들게 되는데, 그걸 유난히 좋아하는 서울의 한 지인은 내가 알려 준 그 집을 가기위해 교토로 가기도 한다.

 

시장길 끝을 나오면 길가로 다시 상점이 이어지는데 그 중 하나가 그 유명한 후타바ふたば 다. 교토 뿐아니라 전국에서 와 매일매일 줄을 서는 집으로, 내가 살던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다.

1899년 창업하여 교토를 대표하는 모치(떡) 점 데마치 후타바出町ふたば 는 창립자가 고향인 이시카와 괌츠의 마메모치豆餅 (콩떡)가, 수도인 교토에 정착되길 바라며 시작한 게 '명물 모치名代 豆餅'로 명성을 떨치며 백년 넘어 사랑을 받고 있다.

 

꺼먼 콩이 툭툭 박힌게, 만드는 걸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엄청나게 긴 줄을 보는 것이 맛을 더해 주는데, 집에서 겨우 몇 걸음 걷는 그 집에 나는 겨우 세 번 줄을 섰었다. 그것도 폭우가 몰아쳐 줄이 적을 때였거나 귀한 선물을 하고 싶은 때였다. 일년 내 여러 겹 둘러 선 걸 새치기 할 수도 없고 공부로 시간이 되질 않은 때였다. 그걸 보면 2호 점 세울 만도 한데, 그토록 역사 깊은 집에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후타바ふたば  행길 건너에 있는 찻집도 줄을 선다. 단팥죽과 떡 등 몇 가지를 콘에 고물고물 담아 주는데 색과 모양도 좋지만 속의 소프트 아이스 크림 맛이 기막히어 마음에 달콤함이 필요할 때면 받아든다.

 

그 집을 지나면 외부 땅바닥에 화분이 죽 놓여져 있어 내려다 보며 자꾸 사고만 싶어지는 꽃집이 나오고, 거기서 눈을 들면 앞에 가모가와鴨川 강이 보인다. 데마치出町에 살면서 마음으로 가장 의지한 곳이다.

향수에 외로움 원통함 공부의 벅참이 몰려 올 때 나는 그리로 뛰어갔었다.

 

수십 키로로 이어지는 그 강은 폭은 좁지만 자연 자체로 푸근한 마음을 준다.

교토에서 '가장 데이트 하고 싶은 곳'으로 꼽히는 곳으로 연인이나 아가와 함께 하는 젊은 가족이 보이고 노년이 보인다. 봄이면 양 켠에 오래 묵은 벚나무에 꽃이 길게 연이어 구름처럼 피어나며 사이사이 버들 잎이 늘어지고, 철따라 꽃과 풍광이 변하는 그 강을 따라 걸으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볼 곳이 많아서인가 가모가와 강가에 관광객은 보이지 않는다.

 

도시 속 강은 좋은 것이다. 집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강이어서도 좋았다.

저 편으로 동양화처럼 여러 산이 겹쳐 보이는 평화로움을 보며 걸으면, 다음 날 서울의 소송 건으로 하루 가야 하는데 가고 싶지 않던 날도 있었다. 오리강鴨川 이름답게 예쁜 오리들이 노닐고, 하늘에선 반지르르 윤기나는 까마귀와 솔개가 유유히 날고 있었다.

 

강가에는 Bon Bon 이라고, 스프, 프렌치 토스트 등 간단한 음식과 차가 있어, 학교가 시작되던 초기엔 방과 후 프렌치 토스트를 들며 거기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영화 로케로 명성이 있다는데 커다란 창으론 하늘과 강, 그 넘어론 8월 15일 일본판 추석인 오봉날 한 밤에 불을 붙치는 큰 대大자가 새겨진 산이 보인다.

 

아침을 급히 들고 백팩을 메고 8시 반 등교 하는 길 10여 분, 집에서 골목을 나오면 왼편으론 가끔 가는 카레라이스 집이 있고, 우편으로 돌면 길 건너 오랜 세월 천왕이 살던 고쇼御所의 긴 담 위로 키큰 나무들이 보이고, 내가 걷는 우편으로는 전구 등 자잘한 걸 살 때면 사춘기 딸 이야기를 하며 정겹게 대해주던 아줌마 철물점과, 하교 길에 맛난 앙빵(단팥빵)을 사들던 우아한 베이커리가 나온다.

조금 더 가면 머리를 잘라주던 명랑한 청년의 미용실이다. 서울에선 한 달에 한 번이, 그 곳에선 두 달에 한 번을 들리던 곳이다.


그리곤 동지사 여자대학 붉은 벽돌 건물이 연이어 나오고 그리로 들어가 곧장 좀더 걸으면 동지사 대학의 유서 깊은 정문이 나온다. 150여 년 전 일본이 존경하는 니이지마 조新島襄가 세웠고 흠모하는 윤동주 정지용 두 시인이 1940년 대 드나들던 그 대문을 들어서면 정신이 버쩍나며 자세가 곧추 세워진다. 나의 첫 수업이 있는 교실의 건물로 달려가면 거목이 많은 아름다운 그 캠퍼스엔 유난히도 밝은 햇살이 쏟아졌었다.

그렇게 매일이 시작되었었다.

 

지금도 교토에 가게 되면 대학은 물론, 살던 그 옆, 데마치出로 가서, 아오모리 사과 를 자주 사던 과일집 여주인과, 직접 만든 디저트가 사랑스럽고 맛나던 찻집 주인, 키츠네(유부) 우동을 만들던 우동집 부자父子, 선 글래스 가게 주인 등 동네 사람들과 반가이 인사를 나눈다.

인생이 여정이라면 그 여정 한 부분에 만났던 정겨운 사람들로 따스한 마음도 받았지만, 한국을 가본 적 없고 강코쿠韓國라면 김정은을 떠올리는 이들로, 그들에겐 내가 한국이기에 크게 생각하면 한일교류가 되는 셈이다.

 

그들의 마음씀 하나하나가 나에게 일본의 인상으로 새겨졌다면, 나는 그들에게 한국의 인상이요 거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검은콩 박은 후타바 명물 마메모치


머리만한 둥근 무  -데마치 시장 


아모모리 사과


 


 


 


 


가모가와押川 - 교토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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