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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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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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13 22:54

 

                                                                                                                          2019  4 16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민예'

 

  

동경엘 가면 꼭 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일본 민예관'이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를 내가 본격적으로 접하고 알게된 건 2013년, 기대없이 들어간 덕수궁 현대 미술관에서의 야나기 수집 전시에서였다. 그의 이야긴 더러 들었으나 수집을 통해 그 미美의 향취를 맡은 건 처음이다.

 

신선한 놀라움이었다. 모은 수집품이 백자 청자같은 값비싼 도기류가 아닌, 당시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서민 일상의 도기, 그릇, 빗, 실패같은 용품이었다. 느슨하고, 완벽하지 않은데 사랑스러웠고 미소짓게 했다. 앞서 간 그의 높은 안목을 느낄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것의 예술성을 보면서, 그걸 만들어 낸 나라와 민족에게 한없는 경애의 마음을 그가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민예民藝' 라는 이름도 개념도 없던 때, 그 이론을 세우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일상적인 것의 가치를 통해 내일의 창조를 이끌어가는 시도를 했다. 도기는 물론 갓, 신, 치마저고리, 산 능선까지 '조선의 선'에 감탄한 그는 '조선의 아름다움에 스며있는 슬픔'을 스스로 느끼며 그것을' 비애미'悲哀美'라 명하여 세계에 알렸다.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화가 사라져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리를 대신하여 미술관 건립을 결심하기도 한다.

 

미술관을 지으려는 목적은 그저 공예품을 전시하려는게 아니라 그의 글에 썼듯 조선민족 미술관이, 사라져가려고 하는 민족 예술의 사라지지 않는 지속과 새로운 부활로의 원동력이 될 것을 바랬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이 내 어딘가에 남아 있었고, 그 후 NHK TV에서 그의 스토리를 흥미롭게 보기도 했는데 마침내 동경대학 근처에 있는 그의 '일본 민예관'을 보게 된 것이다.

 

이름없는 장인들이 만든 일용품을 통해 만난 새로운 미美의 개념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그는 '민예'라는 이름을 지었고 1936년 동경에 '일본 민예관'을 세워, '미의 생활화'를 지향하는 민예 운동 본거지로 삼아 전람회와 수집 연구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일본 민예관'은 예사롭지 않은 이층 저택이었다. 그의 안목으로 고른 일상의 여러 물건이 아래 위에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 물품 속에 조선의 것들이 눈에 띈다. 우리 삶에 너무 흔해서, 버려 버린 것들이 그 눈에는 아름답게 보여 수집이 되었고, 객관적 안목으로도 탁월한 일관된 선택이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린 버렸는데 세계인은 그가 모은 것을 보러들 동경에 오고 감동을 하는 것이다.

 

귀국 후 서울 경복궁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왕족과 일상의 가구와 도기를 들여다 보면서, 야나기 무네요시가 뽑은 일상의 것이 얼마나 흐믓하고 인간적이며 마음 따뜻하게 하는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세심한 눈과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그들을 보고 붙잡을 수 있었겠는데 그렇다면 그런 심미안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대학원에서 '문화 예술 인문학'을 가르치며 문화와 예술, 더더구나 문학은 그 세세한 안목을 끊임없이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누차 강조하던 나로선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민예관 작품에 설명을 줄인 것도 마음에 든다. 작품 감상은 지식이 아닌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눈과 마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다. 

 

같은 한 삶을 살아도 야나기 무네요시 같이 따뜻한 안목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더구나 그 눈에 보이는 물건을 만들어 낸 장인정신과 그 민족, 나라까지 사랑하게 되며 연구 저술 이론전개와 알림 등의 창조적 발상의 삶을 산다면, 흔히 바라는 장수를 넘어 그것이야말로 생生을 길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흔히 수집하는 사람이 큰 사업가인 걸 보며, 서울서 그의 첫 전시를 봤을 때, 수집 외에 그는 무슨 일을 했을까 궁금했었다. '동경 민예관'에서 수 많은 책에 쌓여 연구삼매에 파묻힌 그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게 얼마나 무지한 생각이었나를 다시 깨닫는다.

 

민예관 맞은 편엔 그가 직접 설계했고 숨 다하기까지 생활하여 유형문화재가 된 야나기 무네요시의 사택, 서관이 있는데 한달에 4번만 오픈하여 다음으로 미루었다.

 

동경이라는 큰 도시에 가면 볼 것이 이것저것 많아서 웬만큼 몇 번 가서야 '야나기 민예관'까지 가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민예를 일찍이 알아 본 그 선각자의 뮤지엄에 가보기를 권한다. 마음이 따뜻해져서다.  

 

 

 

 

 


야나기 무네요시 '일본 민예관' 아래 위층  - 도쿄 2019  4  2

  

  


  

  

  

  

  

  

이리 심층 연구했는데 나는 그의 수집 이외 하는 일이 궁금했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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