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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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장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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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2 14:29

 

      6 25 영웅  백선엽 장군                                    2019  6  23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6 25 영웅, 백선엽 장군 

 

 

6 25 영웅 백선엽 장군님이 백세되도록 살아계시어 참 기쁘다.

 

매일 와도 좋다고 하신 장군님을 이리저리 빼다 가끔이나 뵙는데 6 25가 다가오면 절로 발길과 마음이 용산 전쟁기념관의 그 분 사무실을 향한다.

 

그 해 6월 25일, 북이 갑자기 남침하자 겨우 이십대에 장군이 되어 낙동강 다부동 전투 선봉에 서서 평양까지 밤낮을 걸어 용감하게 진격해 간 그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기 때문이다.

 

속으로 아버지의 DNA를 느끼는 나는 여러 해 못 뵌 아버지가 그리운데 지인과 동기가 최규하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계시지 않은 듯 해 아쉬웠다. 그러다 어느 날 전쟁기념관에 사무실을 둔 정일화 박사가 백선엽 장군이 아버지 나온 평양사범 출신이라며 나를 데리고 갔다.

 

전쟁 경험이 없으니, 동기가 아니어 내 아버지를 모르신다면 난 무슨 말을 해야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아버지의 2년 후배인 장군은 나를 편하게 해주셨고 자상히도 아버지를 속속들이 이야기해 주어 그리움에 벅찼다. 그 분의 기억력은 대단해 이루 말로 옮길 수도 없다.

평양사범 이야기, 그 후 각기 다른 길을 갔는데도 아버지의 역사를 다 알고 계셨다.

 

그 후도 묻지도 않는데 이선생 아버지는 평양서부터 여러방면의 수재로, 만주에서의 교육과 교직, 서울에서의 관직, 사업 등 두루 거치며 두각을 나타내시고~ 내가 듣기 좋으라고만 그러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90여 년 전 이야길 살아계신 분에게 들으면 애잔하면서도 사모하는 아버지 추억에 잠기게 된다.

 

이번 만남에는 많은 아쉬움을 표하신다. 말로 표현한 건 아니나 최근의 김원봉 사건, 일부에서 걸핏하면 폄훼해서인가 소침해 보인다. 그저 마음으로 그렇게 느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공부하고 일한 것을 트집잡는 것에 대응할 가치도 없겠지만, 자신이 지나 온 삶과 전투를 돌아보면 그래서 소침해 질 것이다.

'나는 일생 사람들을 구제하고 나라를 구하는데 전력을 다 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맥아더 장군과 함께 한 사진은 물론, 군 출신 새 미국대사 해리스가 장군님 생신에 무릎꿇어 존경을 표하는 사진이 있는 사무실을 나와, 용산내 드래곤 힐 랏지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야기 중에 다시 또 '이윤모 선생은 수재 중의 수재로, 수재 부인을 만났는데 그 사랑의 열매가 이선생이다. 여러 좋은 일도 있겠으나 어려움도 있었겠지.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니 보상이 될 것이다.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인생이야 '  자신의 백년인생을 돌아보며 하는 말일 것이나, 다독여 주는 아버지 같은 마음이 고마우면서 뜨금했다.

 

한미동맹이 단단해야겠지요?

ㅡ 70년 내 경험에 의하면 그 길 밖에는 없다.

안보 뿐이 아니라 미국이 버티어주어 세계를 상대로 한 무역 투자 경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과도 가까워야겠고요?

ㅡ 일본과는 너무 가까워도 안되고 멀어서는 더욱 안된다, 하시며 지나간 일본역사를 길게 이야기했다. 일본은 한때 육군은 독일처럼 강했고 해군은 영국보다 강했다. 그때 미국에 공격만 안했다면 지금 더 대단할 텐데~ 그런데 이제는 미국과 단단히 한 팀이 되어 앞으로 아시아와 태평양을 다스릴 것이다.

 

중국은 요 ?

ㅡ 중국은 워낙 커서 영원히 그를 따라갈 수는 없다고 본다.

 

장군은 전쟁의 모든 체험, 작전, 군사 전략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그것이 나라의 안보와 국방에 유용되지 못하는 것이 마냥 유감이라고 거듭거듭 말한다. 그 분을 뵐 때마다 브레인 기억력 마음 정신력 애국심은 백살 나이와는 무관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존경하는 선배님의 영애에게 이리 조촐한 대접을 하여 죄송하다'  한 때는 용산 속 거기서 스테이크하는 것을 부러워들 하기도 했는데 그는 늘 겸양하며 내가 지난 세월 행여나 험란한 삶을 살지는 않았을까 살피는 따스한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리운 아버지를 그리도 잘 알고 있는 분이며,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라로 되지도 못 했을 영웅의 손을 잡고 그의 육성을 바로 앞에서 듣는다는 것에 나는 늘 감격한다.

 

'또 와요~'

 

그를 만나면 겸허해지고 언제나 더 애국적이 된다.

 

 

 

  방공호 속 앉은 채로 간 시체를 넘고넘어 밖으로 나아가네

 

                                                   손호연 6 25 단가

 


  

 

 

 




 백세 6 25 전쟁 영웅  -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201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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