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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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를 마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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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01 17:52


 



 

 

                                                                                                            2019  4  30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헤에세이平成를 마감하며 

  

오늘로 일본은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마감된다.

 

국내 보도만 주로 보다 간, 최근의 일본은 새 왕. 새 시대의 맞이로 엄청 들떠 있었다. 그간의 큰 뉴스였던 얼마 남지않은 동경 올림픽은 저리로 갔다.

 

은퇴하기 직전 헤이세이 시대의 아키히토明仁 천왕은 검소한 잠바를 걸치고 황후와 팔을 끼고는 잘 걸어나오지 않던 황궁 밖으로 걸어나와 200 미터를 걷곤 했다. 지나던 사람들이 환호를 했다. 국민이 최고로 지지하고 우러르는 걸 느낄 수 있다. 

 

1933년 생이니 12살에 종전 (우리에게는 해방)을 맞은 그는 그때의 기억이 강하게 입력된 듯 기회있을 때마다 그런 비참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하며 평화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누누히 했다.

 

68세 생일 인터뷰에서 '간무 천왕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쓰여 있는 데대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 것은 한국에 가기를 원하는 마음이라고들 해석했다. 실제1998년 한국에 올 것을 기획했으나 사정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1992년 일본 천왕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에 갔다. 난경 학살사건 등이 있었음에도 중국 국민들이 열렬히 환영해 주었고 정상과의 만찬에서는 '나는 어려서 중국의 문학을 읽었다. 지나간 날에 처참한 전쟁이 있었던 것에 슬픈 마음을 가지며 깊이 반성하고 앞으로는 평화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우리와의 인연을 깊이 느끼는 그가 한국엘 왔다면 할 말이었다.

 

종전 60년 후인 2005년에는 사이판에서 위령비와 바다를 향하여 전사한 이들을 위해 묵념한 그는 예정에 없던 한국인 위령비 앞으로 다가가 헌화하고 고개숙여 한참 참배하여 보좌관들을 놀라게 했다.

 

1995년 엄청난 고베 한신 대지진과 2011년 3월의 동일본 대재난에, 지난 해 서일본 수해에도 천왕으로는 처음 무릎꿇고 위로하는 겸허한 자세로, 여전히 그를 신神으로 생각하는 국민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다.

 

천왕은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이나 일본에서 늘 느끼는 것은 국민 가슴 깊숙이에 그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안좋아진 한일관계를 걱정하고 있다.

생각하면 2012년 MB가 독도에서 일왕이 사죄해야 한다는 언급에서부터 한일관계가 내리막이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말한다. '나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아버지를 왈가왈부하는 건 용서하기 어렵다'라고. 약자에게 진실된 마음을 주고 일관된 평화의 메세지를 줄곧 주어 그는 국민의 깊은 존경을 받고 있다.

 

최근에도 우리 국회의장이 같은 말을 했다. 그럴 제마다 그들이 마음의 문을 닫는데 지리적으로 영원한 이웃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가 그렇게 나가는 건 지혜로움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천왕이어 존경받는 것도 있겠지만 31년 간 그의 행동을 지켜본 국민이 친부모 이상으로 가슴에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동경에서 TV를 보고 놀란 것이 있다.

천왕은 정치에 관여 안하기 위해 정치와 무관한 것을 공부하는데 그가 작은 어류에 대해 연구한 것을 국제회의 무대에서 영어로 발표하고 그리고는 서양학자들이 그것에 대해 질문하자 전문가로서 또박또박 영어로 답하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전해준 단가短歌를 짓는 가인歌人이기도 하다.

몇 해 전 국제 PEN클럽 회장인 존 사울을 경복궁 청계천 등 하루 안내한 적이 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세계에서 시를 짓고 독서를 하는 왕은 일본 천왕 뿐이라고 했다. 아니 영국 여왕이 스피치를 늘 할 텐데 책을 안보다니 요? 하니 자신이 영국 여왕을 수십 번 만나 잘 알고 있다, 그 가족은 전혀 책을 읽지 않는다 고 했다.

 

'레이와' 라는 새 연호를 지은 나카니시 스스무 선생과 함께 몇 해 전 서울에서 기자 인터뷰를 받은 적이 있다. 첫 질문이 천왕이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였다. 그가 주저없이 즉각 답했다. 일본의 천왕은 '한마디로 단가를 짓는 사람'이라고.

그 순간 1300년 전 백제가 전쟁에 져서 일본으로들 옮겨가 한반도에서 짓던 시를 거기서 지었고 그렇게 천왕 대대로 지어 온 것이니 그 스스로 말하듯 백제의 후손이 맞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시를 지은 내 어머니가 1998년 1월 천왕에게 초청받아 궁에 간 것도 천왕과 황후와 왕자가 그간 지은 단가를 자작 낭독할 때에 대가로 그걸 들어 주십시요 하는 배청인의 자격이었다. 그때 내가 함께 궁에 들어가 대기실에서 종일 기다렸던 때는 뭐가 뭔지를 도시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도 기다리는 작은 체험이라도 있었기에 한참 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걸 깨닫고는 일본서 만엽집万葉集을 공부한 계기가 되었다. 

 

지금 일본에는 하나의 큰 시대가 바뀌는 역사적 전환기로, 죽음을 맞으며 바뀌는게 아닌데다 경제도 외교도 잘 나가고 있어 전국이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한국을 늘 염두에 두고 나름 계속 공을 들여 온 아키히토明人 같은 천왕은 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만 같아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그러함에도 천년너머 깊은 인연의 이웃나라가 새 시대를 연다는데 축하해 주어야 마땅하고 그것이 우리와 좋은 관계가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가득하다.

  

 

 

 

가루이자와의 테니스 첫 데이트

 
신칸센을 타며





천왕의 일생 연구자로서의 자세

일본 전국에 이런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 교토  201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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