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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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 Survivor Tree로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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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8 11:19

 

 

 

                                                                                                                           2018  11  13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한 그루 Survivor Tree로 서서

 

 

악몽이었다.

2001년 9월 11일의 뉴욕.  그 어떤 폭력 영화가 그리 잔인할 수 있을까. 

 

보스턴에서 학부에 있던 아들이 그 즈음 뉴욕을 간다는 듯 얼핏 들은 것 같아, 그날 TV의 믿기지 않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내려 앉았었다. 육중한 쌍둥이 빌딩이 뭉턱 쪼개져 나가고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엄청난 재가 내려 앉고 있었다. 

아수라장이었다. 온 세계가 경악했다.

그 후, 아들 대학 졸업식의 인사말을 한 명사들은 온통 9·11 얘기 뿐이었다. 

 

뉴욕에 올 적마다 그 현장을 찾았다. 거대한 공터로 파였고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고 명했다. 

 

그 터에 마침내 지어진 Memorial기념 건축물과 그 곁의 Museum기념관을 보았다. 임시 거처가 뉴져지 Fort Lee여서 택시로 죠지 와싱톤 다리를 건너 기다란 맨하탄 섬의 남단까지 가는 데는 비싼 택시비였다. 미국 운전증 갱신을 안했으니 렌트카를 못하고 택시로 다녔다. 서울 택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이나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두 번을 그리로 내려갔다.

 

건축 디자인 공모에 63개국에서 5201개의 신청이 왔고 그 경쟁을 'Reflecting Absence'라는 타이틀과 콘셉으로 유태계 미국 청년 Michael Arad가 따냈다. 다가가니 듣던대로 훌륭한 작품이다. 8 에이커 만평 땅 쌍둥이 건물터만큼 하나씩 두개의 풀Pool로, 거대한 네모난 정사각형 틀 속으로 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각형 금속 틀 위로는 가신 넋을 기리는 2997 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반듯이 새겨져 있다. 숙연하면서 거룩한 분위기다.

 

글로벌 최고 인재들의 일터였다. 가면서 겪었을 저들의 고통과 슬픔. 남겨진 이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17년이 넘었으나 그것이 사라지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그만큼 거대한 충격이었다.

 

나와 연결된 이들은 아니지만 같은 인류로 눈물을 지으며 다가가 기도하게 된다.

어둠이 내리자 기온도 자꾸만 내려가는데 이름 새겨진 판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그 곁에 세워진 Museum기념관을 긴 줄에 돌아돌아 들어갔다. 지하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멋진 건축이다. 어두운 조명이었고 녹아든 철물 설치와 건물에서 건져낸 동상과 운동화, 농구볼, 아이스 스케이팅 신발 등의 유품이 보이고 2997 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진 영상이 벽에 비추이며 그를 사랑하는 남아있는 사람이, 간 그가 얼마나 사랑받을 사람이었는가를 말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대세로 갓 결혼한 사람도 있다. 가슴이 미어지는 장면을 한동안 앉아서 들었다. 

 

잊을 수 없어 다음 날 다시 또 섬 제일 남단 끝으로 택시를 불러 타고 갔다. 그 이름들 금속판 아래로 죽죽 물 흘러내려 가는 걸 한동안 내려다 보고 수많은 참나무Oak Tree 사이를 걷다가 저 만치 전혀 들어보지 못한 나무 한 그루를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Callery Pear Tree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참나무Oak Tree가 주위에 수 백그루나 심겨져 있었고 늦가을 누런 잎이 다 같아만 보여 얼른 눈에 띄지 않았는데 다가가니 "The Survivor Tree" 살아남은 나무라고 쓰여져 있다. 뉴욕에 흔한 나무라고 한다. 사연을 보니 재난 당시, 나무들도 쓰러지고 죽고 불탔는데 가지가 온통 다 잘라져 나가고 몸통 밑둥만 남은 이 나무를 캐서 가까운 Bronx 수림원으로 옮기어 수목 전문가들이 지극정성 살리고 몇 배로 키워 9년 후 2010년 12월, 원래의 자리로 옮겨다 심었다는 것이다.

 

건물지으려고 몇 백년 된 나무를 자르는 나라도 있는데 다 죽어간 나무를 기를 써서 살려내는 나라도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재난에 가보니 바닷가 해변에 7만그루 소나무가 쓰러져 갔는데 단 한 그루가 남아 그것마저 가려하니 온 국민이 나서 기를 쓰고 살리려 했던 생각이 났다.

 

Obama 대통령이 달려가 그 나무 앞에 화환 놓는 사진이 외신으로 나가, 세계정상이 뉴욕을 오면 화환을 들고 거기부터 찾는다고 한다. 

 

생각하면 죽어가는 걸 이렇게 크게 되도록 키운 정성도 대단하나, 그런다고 죽어가다 울창하게 자라나 준 나무도 대단하다. 삶에는 왜 이리도 슬픔이 있는 걸까 싶었는데 여기 어딘가에 이런 반전의 표징이 서있다니 감격스럽기만 하다. 두번 째 연거퍼 오길 정말 잘 했다.

 

배가 열리느냐고 주위에 물으니 아니 라고 했다.  몇 월 몇 일에 피어나느냐 하니 4월 말에서 5월 초, 하얗게 피어난다고 했다.

갑자기 속에서 힘이 솟았다. 그래~ 삶에는 이런 역전이 언제나 있어!!

 

나는 그 꽃이 보고 싶어졌다. 죽어가던 나무에서 다시 생명되어 배꽃으로 피워나다니, 혹 미리 간 저들이 새하얀 꽃되어 피어나는 건 아닐까.

 

나는 이제 그저 관광하러 놀러 쉬러 어디를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애처로운 저들의 넋 곁에 수백 만 송이로 피어난다는 이 꽃을 보러 오는 것만은 특별한 이유가 된다 

 

나는 어느 봄날, 102층 쌍둥이 빌딩 곁에 살아서 죽을 뻔하다 다시 힘있게 살아난 이 배나무 Callery Pear Tree가 배꽃으로 활짝 피어나는 걸 보러 오리라.  9.11 그 순간을 바라본 한 그루의 살아남은 나무로 서서 그 넋들을 낮밤 지키는 걸 바라보리라.

 

그래서 사람은 잠시 가도 생명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리라.

 

 

                                   삶은 어려움의 연속

                                   그리고 놀라움의 연속

                                 

                                   그러나 역전의 연속

 

 

  

 

  가장 높은 빌딩으로 서있던 New York Twin Tower 

하단에 흐르는 물이 9.11 Memorial 그 위로 9.11 Museum - 2018 10

  9.11 Memoral 앞의 고층 빌딩들 -  뉴욕  2018 10

  사라진 건물에서 녹여낸 철물 설치

 하늘로 간 2997명의 밝은 영혼  -  9.11 Memorial  2018 10

 남겨진 신발 스케이트보드  -  뉴욕 9.11 Museum  2018 10

 지하 깊이 파여진 9.11 Museum  -  뉴욕  2018  10

 9.11을 지켜 본 The Survivor Tree  -  뉴욕  2018 10

 9.11 Memorial 앞 수백그루의 Oak Tree참나무 -  뉴욕  2018 10

9.11 Memorial 금속판에 새겨진 이름들  -  뉴욕 201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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