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고쇼의 겨울 나무 2014 1 14
겨울 나무 교토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도시다 특히 서양인들은 서양에서 맛볼 수 없는 교토의 그 독특한 매력에 푹 빠진다 그러나 1400여 년 전 백제가 멸하고 모든 백제인이 일본의 교토 아스카 쪽으로 이주해 건축과 많은 유적들을 짓고 연연히 살아서인지 나에게 교토는 이국적인 매력이 아니라 우리의 오랜 역사와 영이 느껴져 갈 제마다 그 역사, 천년 속을 걷는 기분이 된다 그 중에 교토의 봄 벚꽃과 가을 단풍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예술이다 지극히 아름다운 조명의 예술까지 겹치면 야경은 더욱 더 특별하다 그러나 기간이 짧아 그 때를 맞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돌아오면 잊게 되지만 그것을 보는 순간엔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곳의 봄철 꽃과 별꽃같은 단풍을 보아주지 않는다면 열과 성을 다한 그 꽃도 잎도 가엾고 사람은 더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단풍이 우리보다 늦게까지 있어 12월 중순에도 있는데 이번엔 모임이 연말이어 기왕 가는데 그 아름다움을 못 보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주 작은 꿈 같은 빨간 단풍들이 졌으니 남은 시간 무엇을 보나 하다 지난 봄 땅까지 늘어져 억만송이로 내 앞에서 하늘하늘 춤추던 천왕의 성 고쇼의 벚나무 생각이 났다 그때도 때를 놓쳐 꽃이 다 졌었는데 내가 묵은 곳 바로 앞의 고쇼御所에 산책하러 들어갔다가 깊은 곳에 있는 어마어마한 꽃무리를 보고 쓴 나의 벚꽃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교토를 가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그 때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 꽃무리에 가려져 보이지 않다가 떠나며 아쉬워 다시 휙 돌아 본 그 꽃 저 만치 다 터져버린 나무 원통을 처음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포근한 13도여도 겨울의 시작이어 회색빛인 교토에서 그 나무를 찾아 나섰다 고쇼 御所는 동경으로 수도를 옮기기까지 천년을 수도였던 교토에서 천왕이 머물던 곳으로 서울서 내가 매일 지나는 집앞 경복궁보다 큰 것 같다 단풍의 야경도 끝이 나 사람이 없어진 고요한 큰 마당을 가로 질러 수 많은 소나무 큰 나무들을 지나 더 속으로 한참 들어가니 고만고만한 갈색 가지들 속에 빨간 단풍이 몇 그루 아름다운 선물처럼 숨어 있었다 여기 어딘데 하며 비슷비슷한 특징없는 벚나무 가지들을 두리번거리다 드디어 지난 봄 만났던 그 나무를 찾았다 꽃이 피지 않을 때 이 나무를 찾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화려한 핑크빛으로 가려지지 않은 헐벗은 그를 보고 싶었다 온 몸이 터지고 갈라지고 와아 세상에 이렇게 흉한 나무가 또 있을까 그러나 그 안에서 한시도 쉬지않고 물을 올리고 색감을 끌어 올리어 오는 봄 마침내 피우고 잉태해 내고야 말 그 아름다운 생명의 꽃잎을 상상하면 눈물이 난다 겉으로 보아서는, 거기에 귀를 대보아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인 겨울을 견디고 견디고 기다리고 기다리어 마침내 마주하게 될 우리의 빛나는 환희의 선물이 아니겠는가 희생하고 헌신하여 새 계절 새 작품으로 사람들 앞에 빛으로 설 그를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는 그를 다시 안아 주었다 상처 뿐인 허름한 색의 나무통이 내 눈엔 눈부시기만 하다 교토에 가게 되면 고쇼 깊은 마당에 있는 그에게 그대여 가보시라 어느 책자에도 없지만 일부러라도 가서 긴 걸음 걸음 내면의 성찰을 한 연후, 위대한 작품으로 그대 앞에 문득 기도처럼 나타날 그를 꼭 만나 볼 일이다 생명의 기와 1400여 년 전 보지 못한 선조의 기가 느껴질 것이다 꽃 지고 오색 단풍 소리 없이 져 보이지 않아 영험한 알몸되어 고요와 성찰의 영이 느껴지는 계절 저 깊은 마당에 두 발을 묻고 헐벗은 채 홀로 물을 끌어 올리고 생명 키워내는 소리 크니 범인의 눈에 흉한 몸체 하나이나 심안이 영안이 트이면 보이리 그 눈부신 환희와 절절한 기도 지난 봄 핑크빛 폭포로 내리 쏟아지던 고쇼의 벚나무 - 교토 2013 4 15
다 터져있으나 위대한 기도, 시인이 붙친 이름 '千年' - 2014 12 23 컬쳐 에세이의 '꽃구경' 에 그의 봄철 모습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