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西 進 나카니시 스스무 선생 강연 2013 3월 7일 ‘이승신의 한 줄 詩의 힘’ 도쿄
이승신 시인의 활약상을 잘 보았습니다. 국제적으로 훌륭한 활약을 하고 있군요 저는 이걸로 결정됐다, 라고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올 해 노벨평화상은 이승신으로 확정. 바로 이겁니다 외교관들이 여기 많이 계시니 노벨상 심사위원회에 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승신 시인의 이야기를 하려면, 어머님 손호연 시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래 전 제가 가르치던 대학에 한 여성이 소개장을 들고 찾아 왔습니다 그 분이 손호연입니다.
손시인의 그 때의 인상과 느껴지는 열의 그리고 한국에서 해방 후에도 내내 단가를 지어 왔다는 말에 저는 매우 놀랐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이승신 시인이 일본에서 단가집 출간회를 할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런 행사를 하고 있다는 말에 저는 감개무량할 뿐입니다. 그 때 손호연 시인은 한국에서 단가의 “ㄷ”자도 말할 수 없었고 뒤에서 손가락질과 비난받는 환경 속에서 시종 묵묵히 단가를 지어왔다고 이야기해 주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일본과 한국에서 그 외의 나라에서도 이렇게 이승신 시인의 활동이 공적으로 크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뭐니뭐니 해도 확실히 들려오는 평화를 향한 발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듣던 이야기는 이제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꿈을 실현해 준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것을 생각할 때 저는 손호연 시인의 힘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시련 속에서도 일생 묵묵히 단가를 지었습니다. 그 단가 중 한 수를 방한한 고이즈미 수상이 낭송했습니다. 이는 고이즈미 수상이 그 단가에 양국의 가교가 되어달라는 마음을 넣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때부터 손시인이 더 유명한 가인이 되었습니다. 유명한 가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 단가가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 단가가 바로 아까 영상에도 나온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어라” 입니다
그의 단가에 “여기는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 “이건 이 한자가 더 좋겠다” 며 어드바이스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제 말을 잘 들어주었기 때문에 머리로는 자식같이 생각하기도 했지만 저는 “어머니,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 때마다 그는 아주 불쾌한 표정을 지었는데 후에 보니 저와 나이차가 겨우 3살이었습니다.
그래도 저에겐 어머니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참으로 섬세한 배려심이 있고 애정이 아주 많은 분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애정은 굳센 정신이 뒷바침되어 있었습니다
손시인은 그의 아버님이 와세다 대학에 유학했을 때 동경 에도가와江戶川에서 태어났고 곧 귀국했지만 그의 이름 호연戶姸에는 에도가와江戶川의 “戶”자가 들어 있습니다. 호연戶姸의 “姸”자는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 그는 “에도강의 아름다운 여자”이며 그 따님이 이승신이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도 2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그 증인이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손시인의 따님들은 ‘李가네 미인 자매’로 유명합니다. 1남 4녀의 5남매인데 그 4 자매 중 막내는 만난 적이 없지만 3 따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잘 알고 있는 것은 3자매인데 제가 아는 “李가네 3자매”는 중국의 송애령宋靄齡 송경령宋慶齡, 송미령宋美齡이라는 “宋가네 3자매”, 그 한국판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애령이 좋다, 경령이 좋다고들 하지만 李가네 역시 장녀인 승신이 좋다, 아니 2째가 3째가 좋다라든가 인기 투표를 하면 좀 시끄러워집니다. 우리 집에서는 집사람도 저도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승신씨로 되어 있습니다
손시인의 굳센 정신이 뭐냐 하면 그가 동경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해방이 됐지만 그 후에도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일어로 표현했습니다. 거기에다 단가라는 시 형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면 표현 방식을 바꾸는 게 당연하다” 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육체에 배인 언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바탕은 더욱 더 변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스로 선택한 단가라는 표현 방식입니다. 그것은 일본에 의리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 형식을 “시대가 이렇게 변했으니” “국정이 지금은 이러하니”하며 바꾸는 것은 자신을 배신하는 일입니다. 자신을 속이는 거지요. 자신을 속이지 않은 것. 이것이야말로 손호연의 강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손호연 시인은 단가를 통해 일생 자신의 마음속 슬픔과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6권의 “무궁화”라는 가집 중의 4집과 5집에 제가 후기를 썼고 이승신 시집 1권에도 후기를 썼습니다만 그렇게 오래 손호연 시인과 그의 단가를 지켜본 것입니다. 정말로 훌륭한 단가입니다.
예를 들어 “눈”을 주제로 단가를 읊습니다. 눈이 무엇이 훌륭한가? 눈은 작은 단지 위에 내리고 김치를 담는 큰 항아리 위에도 내립니다. 게다가 다 같은 높이로 쌓인다고 했습니다. 눈이 가진 성질은 바로 ‘평등이라는 정신이다’라고 단가로 독자에게 말해줍니다.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다툼 없는” 이라는 단가가 명가 名歌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겨울에 눈을 볼 때마다 손호연 시인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눈은 같은 높이로 쌓이는 거로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한 어머니가 있기에 시인 이승신이 있음이 틀림없는 사실이고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본인이 아니라면 그 말이 맞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이제야 승신씨 이야기입니다. 승신씨의 훌륭함은 시종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승신씨는 당연히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단가가 아닌 것에 대한 리스크를 지게 됩니다. 그것을 등에 짊어지면서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는 와싱톤과 뉴욕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외국 생활이 길었다는 것은 어머님과 떨어져 있던 기간이 길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 재원인 자녀 중 승신씨가 전심전력을 다해 어머님의 사업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마음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그리고 어머님이 얼마나 간절히 평화를 염원했는지를 세계 어디서든 항상 말하고 있습니다 단가는 그러기 위한 하나의 그릇입니다
거기에 이번 재난을 계기로 해 승신씨의 인류애가 솟아 올랐습니다. 승신씨가 3.11에 영감을 받은 시들을 보았고 후기에도 썼지만 그 시를 보고 놀란 것이 있습니다. 일본인을 “君기미”라고 부르고 있는 점입니다
“君기미”라고 하는 것은 일본의 옛 표현으로는 “연인” 그것도 “조금 신분이 위인 연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만큼 애정과 존경심을 담아 “君기미”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君思う真情を込めし一行詩 慰めとなれ癒しとなれと 위로하고 싶은 진심이 이 시에 녹아있어 그대 마음 녹일 수가 있다면
“君”와 “君”를 생각하는 진실된 마음, 그 마음을 담은 한 줄의 시라는 것입니다 “君”란 여기에서 피해를 입은 일본인일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바치는 한 줄의 시, 그것이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넓게 생각하면 이 단가 안에는 어머님의 시 정신이 들어있고 그의 비원인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를 승신씨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한국어로 표현하고 일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승신씨에게 늘 부탁하는 말이 있습니다. 좀 더 분발해서 일본어로 단가를 지으라고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더욱 더 좋을 것입니다
한국어 시는 더 좋은 내용, 더 좋은 단가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실된 한국일 것입니다. 저는 번역본으로 내용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머님은 일본어 속에서 표현하는 마음을 길렀지만 승신씨의 경우는 한국어와 영어일지 모릅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영어로 이렇게 시를 쓴 뛰어난 하이쿠俳句 작가가 있습니다. Richard Nathaniel Wright 라는 훌륭한 미국 흑인 작가인데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단시라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공통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나라 국민의 베이식한 마음을 나타내려는 시 형식입니다. 아일랜드에는 리메릭이라는 국민시가 있고 대만에는 민가가 있습니다. 국민시가 없는 민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국도 시조라는 민족시가 있습니다. 몇 해 전 한국의 시조 대회에서 일어로 강연했는데 일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비극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역시 한국어로 해야 되겠더군요
리메릭, 민가, 시조, 그러한 것으로 표현할 때 비로서 진정한 민족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게 표현된 것이야말로 진정 소중한 것이지요
한장관과 신대사 말씀에도 있었지만 한국과 일본 양국간에 위화감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아시다시피 현재의 쟁점은 토지, 땅입니다. 땅은 바로 생산의 기초입니다. 땅에 생산력이 있으면 그만큼 국가의 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토에 대한 관심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만 그 국토라는 것은 어느 나라에 속한다고 생산량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나라의 땅이건 그 땅이 가지고 있는 생산량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면 땅이라는 게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하면 지금까지 말씀 드린 이 내용들입니다
마음으로 틀을 짜게 되면 온 세계에 자유로운 틀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땅이나 국경이라는 틀이 아닌 마음에 의한 틀이지요. 그런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옛날 일본 역사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일본이 한 때 임나 任那 라는 곳에 집착했습니다. 그래서 임나에 전쟁을 건 신라를 맞서기 위해 25.000명의 군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장군을 임명하면 싫다고 가버리는 그런 염세적인 분위기가 감돌게 되었습니다. 이래서는 전쟁을 더 해도 의미가 없다, 이제 전쟁은 그만 두자 라고 생각한 위대한 정치가가 6, 7세기 초에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그 시대의 섭정 攝政이었던 성덕태자 聖德太子 입니다. 신라와의 전쟁을 그만 두고 “和를 가장 귀한 것으로 한다”라는 유명한 헌법을 제정하고 눈을 수隋 나라로 돌립니다
당시 중국은 수 나라였습니다. 신라와의 관계 속에 국제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나라와 관계를 가지려 했습니다. 그래서 문화 교류를 했습니다. 여러 문화가 전해지고 聖德太子 스스로 그것을 확대시켰습니다 국토의 틀을 버리고 문화의 틀을 만드는 것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앞으로의 외교에서 가장 또는 유일한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즉 마음의 틀, 지知의 틀, 미래를 향하는 나라들은 서로의 양해 속에 그것을 진심으로 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일을 이 모녀가 2대에 걸쳐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승신 시인이라고 저는 생각해 왔습니다. 단가는 하나의 그릇에 불과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그릇에 담는 마음의 깊이입니다. 문화라는 높이입니다. 그 마음을 문화를 담는 것에 의해 아시아의 평화, 지구의 평화가 찾아 오는 것입니다
일본은 해양 국가입니다. 대륙 국가가 아닙니다. 그러니 대지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입니다. 임진왜란이 바로 그렇습니다. 대지에 집착했습니다 바다에 집착해야 합니다. 해양국인 영국이 그렇습니다. 대지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인들이 영국인들은 촌뜨기라고 하는데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 국가 경영을 왜 하지 못하는 겁니까? 저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知의 관계, 문화의 관계를 더 소중히 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그 어려운 가교 역할을 앞장서 하고 있는 이승신 시인이 받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노벨 평화상입니다
일본의 보물인 고대 만엽집의 뿌리는 우리나라 백제라고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이다. 150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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