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눈이 내려 창으로 보이는 인왕산과 세상 밖이 하얗다
서울은 내 어릴 적만큼 눈이 많이 오는 것 같지 않아 오랜만에 보는 새하얀 세상이 반갑기만 하다
오래 전 뉴욕주 시라큐스 대학원을 나오고 그 옆 오스위고에 산 적이 있다
그 곳 뉴욕 주립대학에서 아이 아빠가 경제학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록펠러가 세운 5개 뉴욕 대학 중 하나인 그 대학촌 바로 앞에는 거대한 5 대호 온타리오 레이크가 있었다
내 아들 앤드루는 그 바다 같은 호수 앞에서 태어났다
여름이면 그 호수 말고도 수없는 에메랄드 빛 호수와 폭포와 강이 아름다웠다
카나다 가까이에 있는 그 곳은 그러나 10월부터 눈이 오기 시작해 4월까지 내렸다
수많은 키큰 상수리 나무에 눈이 얹히면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가 어디 또 있을까 싶었다
허나 매일매일 산같이 쌓이는 눈을 삽으로 치워야 차고 긴 드라이브웨이를 빠져 나가고 집집마다 겨울에만 쓰는 차가 따로 있는데 금방 뿌려지는 제설제에 녹이 슬어버렸다
뺨이 몹시 시렸고 겨울은 길고도 길었다
와싱톤에 가면 2월에도 봄 기운이 도는데 집에 오면 5월도 추웠다
거기 살 때 본 밤의 유명한 Tonight Show에서 쟈니 카슨이 오프닝 멘트를 세계 뉴스로 코믹하게 하는데 ‘뉴욕의 오스위고는 오늘도 기록을 깨고 최고로 눈이 왔습니다
Oswego is the snow capital of the world’ 라고 했을 정도다
서울에서 오신 아버지는 전에 대학 다니던 만주 같다며 추억에 잠기셨고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자며 잠시 들리는 사람들은 신비로워 했지만 매일 사는 사람은 제발 이제는 눈발이 그쳤으면 하고 하늘을 바라보았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봄이 올 것 같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눈 내린 산을 바라보니 높은 나무 위 트리 하우스가 있는 뒷마당이 긴 숲과 연결이 되던 오스위고 집과 그 미네토 길 초입,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답던 성당이 꿈속이듯 떠오른다
서울의 추위도 영하 10도를 내리며 긴 편이어서 나같이 추위를 몹시 타는 사람은 그저 어디 따뜻한 데로 달아나고만 싶은데 이것저것 걸리어 달을 넘기다 보면 그렇게 봄을 맞게 된다
이렇게 가끔 오는 것이라면 그러나 눈은 참 좋은 것이다 겨울의 꽃이다
인간이 어지러 놓은 도시를 하얗게 덮어 버리고 집 뒤 인왕산 치마 바위와 청와대 뒤 삼각형 북악산이 눈을 이고 있는 모습, 좀 걸어 삼청 공원에 이르면 청청한 소나무와 하얀 눈이 새로운 듯 눈에 부시다
마음이 화안해지고 새 날의 희망이 솟아오르고 미소가 지어진다
삶도 그럴 것이다
매일이 매순간이 기쁘고 희희낙낙하고 풍요롭고 좋은 일만 있다면 무슨 기쁨과 감사가 느껴지겠는가
어쩌다 보는 무지개에 가슴이 설레이고 생에 처음 보는 개기월식이 경이롭기만 한 것처럼 기대하지 않은 때 불쑥 찾아오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 기대되고 소망을 품게 되는, 우리의 인생은 그런 것이다
눈이 오는 날엔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