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

군고구마는 구미에서는 보지 못하는 맛이다

고구마 굽는 그 할머니를 내가 알게 된 건 20년도 넘은 일이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어수선한 먹자 골목이 되어버렸으나 전에는 사랑스럽고 아담한 전통시장이던 집 근처 금천교 시장 끝, 경복궁역 2번 출구 나오자마자에 그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년 12달 좌판을 깔고 있다

시장 끝이니 봄 여름에는 채소 두부 곡물을 팔고 겨울엔 고구마도 곁들여 구워 파는 것이 이상할 건 없겠으나 엄밀히 말하면 시장 살짝 바깥이어 적법이 아니므로 할머니 부부가 엄청 꼬부라진 허리에 그 무건 짐과 리어카를 매일 끌고 나와 장사를 함에도 걸핏하면 경찰이 짐을 새벽에 끌어가 버리고 벌금을 물린다 그래도 다음 날엔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고구마를 구웠다

주름 속 이목구비가 예쁜 정읍이 고향이라는 그 할머니는 자기 몸 몇배가 되는 리어카를 끌고 많이 굽은 허리에 손이 잠시도 쉬지를 않고 고구마 줄기를 벗기고 감자를 벗기고 장사도 하는 거에 비하면 할아버지는 조용히 거드는 편이다

가끔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되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연속 며칠을 안보여 물으니 입원을 했다고 하고 그 후도 여러 날이 되었다.  종일 손을 움직이어 뭘 먹는 걸 본 적이 없어 가끔은 바로 옆 파리 바겟트에서 빵을 사 손에 쥐어 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도 건넨다. 노란 군고구마는 어려서 동생들과 함께 먹던 추억이 있고 냄새도 구수하게 퍼지어 겨울이면 기다려진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보름만에 퇴원을 했고 그 옆에 다시 조용히 앉아 있다.  옆에 존재해 주는 것만도 좋은 일이다.  '식구가 없으니 조금만 주세요'  3천원을 내면 작은 사이즈 세개를 신문지에 싸준다.  어느 날 한 청년에게 5천원 이하는 절대로 안된다고 큰 소리 내는 걸 보았다.  보니 나와 같은 갯수를 싸 주었다. 그도 한마디 한다. 아니 왜 이 아줌마는 3천원에 줘요 하니 그 아줌만 이쁘니까 그렇지 넌 어디 이뻐? 그는 암말 않고 받아 간다. 쬐끄만 할머니에게 꼼짝을 못한다

어제도 군고구마를 사러 갔다. 아니 따뜻함을 받으러 갔다는 게 맞는 말일 게다. 저녁 6시인데 할머니 부부가 안보이고 이제 막 나온 깨끗한 젊은이가 고구마 통속의 장작을 땐다.  리어카를 끄는 할머니의 어깨가 몹시 아파 못나와 자기가 굽기 시작을 한다고 했다. 자긴 6남매의 큰 사위로 다들 살만한데 일생 일을 해오신 습관이라고 했다. 4박스를 종일 장작 통에 구워 팔면 몇 만원이 남는다고 하고 가끔 25만원 벌금도 낸다고 한다

자식에 기대고 복지에 기대고들 한다는데 꿋꿋이 일년 12달을 정말 부지런히 일하는 그들을 본다. 통행하는 길을 약간 막는 듯도 하나 non verbal 무대처럼 오히려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어머니와 국수 빼는 집, 과일, 야채 가게를 들린 추억이 있는 오밀조밀 귀엽던 금천교 시장 골목이 왁자지껄 술판이 되어버려 그 추억이 지워지지 않게 이제 난 그 골목을 피해 걷는다. 한글을 창조한 세종대왕이 태어나시고 윤동주 이상 노천명 이광수 손호연 이상범 천경자 박노수의 높은 문화가 살아 있는 마을에 문화 없는 골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입구와 끝에는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라고 대왕님의 이름이 새겨진 네온싸인의 색이 빨파노보로 계속 변하고 있다

그 끝에 이제는 서울 거리에서 사라져버린 군고구마를 지금도 같은 옛맛으로 구워내는 할머니의 손길이 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문안과 어깨는 좀 나아졌는지, 묵직한 고민일 89세 할아버지의 폐수술은 회복되어 가는지를 묻고 둘둘 말아주는 신문지 속 따끈한 위안을 얻으려 나는 오늘도 그 곳을 간다

몸에 좋다고만 선풍적 인기가 된 그 고구마

                         모락모락 김오르는 신문지 속 고구마

                     속에는 따끈한 추억이 있다

                     같이 한 사랑이 있다

                     노오란

                     겨울만의 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