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기온祇園 마쯔리 2015 7 17 기온 마쯔리 祈園祭 일본은 마쯔리祭의 나라다 47개의 현縣과 부府와 도都에서 많은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그 많은 축제의 원조가 교토의 기온 마쯔리 祈園祭다 매일 아침 수업이 있는데 기온 마쯔리는 일년에 한번 뿐인 대축제이고 일본 전국 축제의 원조이니 꼭 가보라고 주위에서 권하여, 모범생인 나는 한참을 망서리다 토론 시간을 빼먹고는 동지사 대학과 연결된 지하철을 타고 교토 시내로 내려간다. 마침 이례적인 큰 태풍이 연일 오던 때였다. 태풍이 너무 심하면 취소될 수 있다고 당일 새벽 5시에 그 가부를 발표한다고 시시각각 알렸었다. 실제 기온 마쯔리가 취소되었다면 역사상 135년만의 일이었겠으나 다행히 축제는 열렸다. 엄청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자주 오는 교토이지만 그 아침 빗줄기는 유난히 세찼다. 기온 마쯔리는 교토의 3대 마쯔리 중 하나로 전국 각지에서 참여하러 오기도 하지만 세계 여러 곳에서도 몰려온다. 실제 수레 위에 올라타거나 아래에서 굵은 밧줄로 끄는 이들을 보니 서양 얼굴이 많았다. 커다란 육성으로 시작 발표와 음악 연주, 수레 끌기, 각도진 곳에서 그 높고 무거운 수레 몸통의 방향을 합심해 일순간 손으로 돌리기 등, 많은 연습을 한 것이 보여 태풍으로 취소가 되었더라면 그 헛수고에 저들이 얼마나 실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7월 내내가 마쯔리로 교토가 붐비고 전날밤 대단한 전야제도 기온에서 있었으나 매해 같은 날 7월 17일이 축제의 핵심이다. 기온에 위치한 짙은 주홍 빛깔의 야사카 진쟈八坂神社를 시작으로 시내 한복판을 23대의 화려하게 치장한 육중한 수레가 서서히 돈다. 연도에 늘어선 관람객의 숫자가 엄청났지만 비가 몹시 와 전년만큼의 숫자는 아니라고 했다. 869년의 교토는 대단한 해였다. 전염병이 퍼져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원한을 품고 간 원영怨靈이 다니며 많은 사람을 괴롭힌다고 생각했고 전염병도 그 원영의 복수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회적 불안을 잠재우려 신에게 기온 어영제를 드린 것이다. 그것이 기온마쯔리의 기원이다. 그 한 해만 드리다 970년부터 지금까지 매 여름 드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 축제는 농촌이나 어촌에서 봄 가을, 곡식이나 생선을 수확하며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온 축제는 교토라는 당시의 수도에서 시작된 독특한 여름 축제이다. 이 마쯔리는 형태에서도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다시 山車'라고 하는 커다란 수레를 만들어 그 높은 지붕 위로는 창 같은 무기를 싣고 사람들이 올라타 손으로 움직인다. 무거운 것은 12톤이나 된다. 올라탄 여러 사람이 특이한 음악을 연주하며 마을 전체를 돈다. 북과 피리, 대금 등의 흥을 돋우는 리듬과 멜로디로 원영을 쫓아낸다는 발상이다. 그래서 기온 마쯔리하면 사람들이 그 독특한 음악을 연상한다. 천년도 넘어 전, 교토의 사람들이 가족과 친족을 잃은 그 슬픈 심정을 아름다운 축제로 끌어올린 것이 기온 마쯔리다. 두려움에서 탄생한 이 여름 축제는 일본 각지의 수 많은 축제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견딜 수 없었던 그 불안과 두려움을 한탄에만 빠지지 않고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하여 세계적인 축제로 만든 것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힘과 감동을 받고 일어서 자신과 공동체를 끌어갔을 것이다 우리도 돌아보면 나라를 흔든 불안한 사건이 얼마나 많았던가. 멀리에 혹독한 일제강점기 시대가 있었고 6 25 동족상잔과 피란, 가까이는 세월호와 메르스사태가 있다. 나라와 온 민족의 삶을 뒤흔든 그런 쓰라림을 마음에만 담아두지 말고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하여 국경을 넘어 인류가 공감하고 나누고 치유되는 그런 축제로 만들어졌으면 하고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교토의 세계적 마쯔리祭를 바라보며 소망해 본다. 기온 마쯔리가 시작되는 기온의 야사카 진자 八坂神社 - 교토 2015 7 17 여러 사람이 손으로 끄는 20여 미터 높이의 '다시山車' 수레차 - 교토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일본 옷을 입고 수레를 끈다 - 교토 2015 7 17 비가 오는 기온 마쯔리 - 교토 시조 가라스마 2015 7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