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21
우동 한 그릇
네 시간이나 줄을 서 기다리다 먹은 우동은 일품이었다. 교토 헤이안 신궁 平安神宮의 기가막힌 벚꽃 무리를 보고 나오다 허름한 집앞에 긴 줄이 보여 나도 거기에 섰다. 어디나 그러하겠으나 일본에서 줄을 서면 대체로 믿을만한 곳이고 특히 일본사람들은 줄이 있으면 의례 생각없이 거기에 선다고 한다.
교토를 수도로 한 간무 천왕을 기리는 헤이안 신궁과 교토시립미술관이 있고 동물원이 있는 오래된 구역 길가에 있는 야마모토멘죠 山本麵裝 라는 이름의 우동집이다. 너무 오래 기다려 몸을 뒤틀며 들어가니 낡고 어둑한 분위기에 20석이 채 안되는 작은 곳이다. 나는 우연히 들어갔으나 이리 정보가 세계로 퍼졌다니 대단하다. 대부분이 관광객으로 중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카운터에 앉으니 머리를 질끈 맨 젊은이들이 손빠르게 우동을 만들고 삶는 모습이 보이고 튀김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시킨 키쯔네 우동과 야채 뎀푸라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2008년에 세웠다는 젊은 쉐프 오너 야마모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려서 중학교 때 학교를 파하고 광화문을 지나 관철동 쪽으로 걸어가면 미진 신진 등의 간판이 붙은 우동집들이 나란히 있었다. 친구와 손잡고 가다가 먹는 냄비 우동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어느 날 그 집들은 사라졌고 후에 새로 생긴 곳에 가보면 그 맛이 나지를 않았다. 기술보다는 커서 내 입맛이 달라진 것이겠지만 예전의 그 맛이 늘 그립다.
일본에서 잘 만든 우동을 먹고 서울에 가면 그 우동 맛도 가끔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내가 그 우동 생각이 난다고 하면 그 말을 들은 주위 사람이 나도 그게 생각난다고들 한다. 그 말을 한 사람을 생각하며 내가 대신 그 맛난 우동을 먹는 즐거움을 살풋 누린다.
가쯔오부시 마른 다랑어를 넣고 여러 재료를 넣었을 국물이 아주 좋고 그릇 가득 널찍히 펼쳐져 나오는 여우빛 유부 (그래서 일어로 여우인 키쯔네라고 불리우는가) 의 졸깃한 씹음이 좋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만들어낸 굵은 면발이 상질이다. 고구마와 양파, 버섯 뎀푸라도 아삭아삭 상큼하다. 천엔에 누리는 기쁨이다. 줄이 늘 길어 기다릴 엄두를 잘 못내나 기다릴 가치는 충분히 있다.
택시 기사에게 저 집은 왜 종일 줄이 저리 길고 다들 충성스럽게 줄을 서느냐고 물으니 고급말고 교토의 이류 식당 중에 만두집 다음으로 2위로 뽑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류 식당을 따로 점수매김 하는지도 처음 알았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 동네를 지나면 의례 그 앞으로 가보지만 줄에 서보다가는 포기하고 발길을 돌린다. 줄 선 한시간이 몹시 아까우나 공부할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바로 그 곁에 우동집이 또 생겼다. 줄이 길지 않은 장점에다 인테리어가 모던하고 어여쁜 정원에 맛도 모던하고 괜챦아 야마모토를 기다리다 지치면 그리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동 한 젓가락을 들어 올리면 오래 전 여동생이 다니던 쯔꾸바 대학 앞에서 아버지와 들던 맛난 우동 한 그릇과 소박한 일본의 문학작품 '우동 한 그릇'이 떠오른다.
서울 가면 다시 그리워 질 맛이다. 그 생각을 하며 줄에 3 번이나 네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렸었다.
우동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서울 가서 그리워할 그 맛을 생각하다
무덤에 누워서도 세상의 맛은 그리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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