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긴자 4정목 2016 4 19
동경 소식 . 오랜만의 동경東京이다. 일본에 유학을 하면 당연히 동경을 자주 갈 줄 알았는데 교토의 공부로 여의치가 않았다. 어머니 시를 황병기 선생이 작곡하신 음악발표가 있어 지난 봄 하루 오고는 처음이다.
동경은 실로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아버지 어머니와의 추억이 많지만 그 후의 추억들도 있다.
교토의 예술인 땅아래 늘어진 사쿠라가 채 피지를 않아 못보고는 신칸센으로 2시간 10분, 교토보다 동남쪽인 동경을 오니 막 피어난 어린 꽃이 하늘하늘 맞아준다.
청소년 국제회의로 동경을 처음 온 것이 대학교 때였던가. 지금도 대학생이라는 생각이 드나 그 사이의 세월은 긴 것이었다.
동경은 서울이나 다른 큰 국제도시에 비해 긴 세월 변화가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일본을 간다는 건 서울을 가듯 주로 동경이었는데 이러저러 아는 인연들이 있어 조용히 공부를 하기에는 교토가 낫지 않을까 하고 교토를 택했었다. 잘 된 선택이었지만 그래서 외롭고 힘에 겨웠다.
옛 시대에 사는 듯, 옛 풍광과 풍물을 고이 간직한 교토에 비해 동경은 역시 대단한 국제 도시이다. 동경시 안에만도 인구가 1400만이요 외곽까지 하면 2천만이 넘을 것이다.
교토에서 옮겨온 황궁이 있고 에도가와 같은 강이 있고 바다를 면하고 있다. 하마리큐나 리쿠기엔 같이 역사를 품은 아름다운 옛 정원들을 간직하고 있으나 교토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곳 정원들은 주위의 높은 현대식 고층 건물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동경의 도심 가로수들의 가지치기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아버지와 머물고 어머니의 출간기념회를 하던 추억의 데이코쿠帝國 호텔이 황궁 앞에 서 있고 그 천개의 방, 뒷문으로 나가면 맨하탄의 색스 피프스 애베뉴와 파리의 샹젤리제에 맛서는 긴자 銀座가 있다. 가장 번화한 긴자 4정목 네거리에는 와코와 미쯔코시 백화점이 그대로 있고 많은 상호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은 딸기 한개에 우리 돈 만원이 넘고 멜론 하나에 35만원짜리도 있다. 몇 십년 전에도 그랬었다. 미국에서 그리도 싼 망고 아보카도 사과가 무슨 스토리를 입었는지 그리 비싸도 없어서 못판다고 했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긴자에 발에 채이도록 많아진 사람 거개가 중국인이라는 것이다.
10년 전 15년 전에는 긴자에 사람이 별 없었다. 그렇게 번화하던 긴자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며 사람 구경을 잘 못할 정도였는데 한 5, 6년 전인가부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 신기하더니 이제는 일이년 전부터 중국말만 귀에 들려오는 것 같다.
우리가 메르스를 거치는동안 그들이 일본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교토가 중국인들로 붐비고 동경도 그러하다. 정부가 나서서 대대적인 관광책을 펼치고 있고 방문한 사람들이 일본인의 친절과 상냥함, 대접받는 듯한 기분에 반해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여러번 동경에 왔지만 며칠간의 짧은 것이었는데 어느 방학엔가는 두어달 머문 적이 있다. 기억력 좋은 그때 일어 공부를 했다면 이리 늦게 한 일본 유학이 조금은 덜 고생스러웠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뒤늦은 후회다.
1980년에는 고전 문학 연구로 어머니가 동경에 머무시어 미국에 살던 내가 방문한 적도 있다. 그 겨울 긴자 4정목 교차로를 건너며 어머니가 점심을 데려간 곳은 어디였을까 그 생각을 하며 걷는다. 언젠가 아버지가 여기가 샹송을 하는 유명한 곳이라고 소개한 그 집은 어디일까 이리저리 기웃거려 보게도 된다. 사람이 아주 떠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때여서 철없이 따라다니다 한참 후에야 사무친 그 기억을 더듬는 것이다.
어쩌다 3년 전엔 나의 출간기념회도 이 곳 일본외신기자클럽에서 가진 적이 있다. 황거의 너른 뜰과 그를 둘러 싼 연못이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상급 인물이 스피치와 인터뷰를 하는 유서 깊은 20층 바로 그 공간이다. 오래 전 미국 유학 시절 뉴욕에서 만난 일본 친구 마에다 슌이 늘 점심을 초대하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의 쓰나미 시절, 두 권에 실린 일본인을 향한 위로와 우정에 감격해 하던 그들이 떠오른다.
여러 사정도 있지만 일본과 우리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서로 이해하고 보듬으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나의 조국과 내 고향 서울을 생각하며 이 봄, 나는 동경을 걷는다.
부모님이 가셔야 철은 드는가 나보다 젊으셨던 아버지 어머니의 그 마음 헤아려 보는
긴자 4정목 텅-빈 네거리
메구로 강에 늘어진 사쿠라 - 2016 3 28 동경
일본 황태자 궁 앞의 가로수 전정 - 동경 2016 3 27
긴자 미쯔코시 백화점의 32,400엔 짜리 멜론 - 동경 2016 3
125년 역사의 데이코쿠帝國 호텔 로비 - 동경 2016 3 30 36년 전 어머니와 함께 했던 긴자 4정목 코너 2층의 찻집 그 자리 - 동경 2016 3 28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 2016 3 28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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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 시인, 에세이스트, 손호연단가연구소 이사장 이대영문과 와싱톤 죠지타운 뉴욕 시라큐스 대학원, 교토 동지사대 재학중 방송위원회 국제협력위원, 삼성영상사업단 & 제일기획 제작고문 역임
저서 -치유와 깨우침의 여정, 숨을 멈추고, 오키나와에 물들다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그대의 마음있어 꽃은 피고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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