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렝잉몬세키 靑蓮院問跡
교토에 발길 간 곳이 많아 웬만해선 감탄을 안하는데 이번에 처음 간 곳 중 앗- 하고 놀란 2 곳이 있다. 아라시야마嵐山의 호공잉寶嚴院과 시내 한복판의 쇼렝잉靑蓮院이다.
지하철 안의 작은 포스터에 쇼렝잉의 '큰 나무 아래 서서' 라는 글을 보았다. 어린 소녀 때에 놀라며 올려다 보았던 그 큰 나무, 어른 되어 찾아와 그 아래에 서도 그때의 작은 소녀되어 큰 힘을 다시 받는다는 인상적인 글이다. 그 나무가 보고 싶어졌다.
일본 사찰 중 대문이 제일 크다는 '지온잉' 바로 왼쪽에 있었다. 일본 자체가 그렇지만 교토만 해도 보아도 보아도 알아도 알아도 양파 한겹 벗겨내듯 끝도 없고 한도 없다.
엄청 큰 900살 나무가 우뚝 서있었다. 녹나무라고 했다. 그 우람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네 그루가 대문 앞에 서있고 정원 속 한 그루까지 다섯 그루가 천연기념물이다.
대문에는 쇼렝잉몬세키라고 쓰여져 있다. 몬세키問跡란 천황이 승계자를 세우면 나머지 공주나 왕자를 유명 사찰의 주지 스님으로 보내는 곳으로 그만큼 천황가와는 깊은 관계에 있는 특별한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이건 또 다른 우주이다. 다다미 방에 올라 왼편 앞모서리에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양면의 정경은 표현할 길이 없다. 아름다움이 지나치면 고요해지는가. 누구도 감탄함 없이 그 모미지 빛깔들을 바라보며 태고적 만추를 고대로 누리고 있다.
문 없는 툇마루로 나가 앞에 펼쳐지는 높고 낮은 언덕배기, 오색 모미지와 울창한 대나무 숲의 조화를 고요히 바라다 보는데 곁에 미국 남자가 영상을 찍고 있다. 그 조심스런 손길이 Beautiful, Incredible, 어떠한 표현보다 더 섬세한 표현으로 보인다. 외국인으로 이 문화에 우리는 말없는 공감을 한다.
1500년도 더 전 우리가 일본에 많은 문화를 처음 전했고, 한참 후 우리가 문 닫아 걸고 쇄국 정책을 할 적에 이들은 150년도 전에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으나 그것을 일본화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고 서양은 고도의 문명임에도 자기네에게 뭔가 부족한 것을 오히려 일본에서 찾았다. 우리가 전해주고 가르쳐 주었는데 서양인들에게 동양은 일본이었다.
마침 Light up 밤 조명이 끝나는 날이어서 밖으로 나와 길 건너 찻집에서 1시간 반을 기다렸다. 나만 몰랐지 줄이 몇 키로 서기 시작한다. 어두워져 다시 들어가니 안내인이 내가 낮에 평안히 앉았던 그 방이 천황이 와서 단가를 짓던 방이라고 했다. 단가를 번역도 해보고 짓는 시늉도 하는 이로서 아무 설명 없이도 거기에 들어서자마자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에, 단가를 일본에 전해준 우리 선조의 후예로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거기엔 단가 액자 36개가 걸려 있다. 한국 유일의 단가 시인으로 1998년, 천황이 지은 단가를 자작 낭송하는 걸 대가로 들어주는 초청을 받았던 어머니가 옛 천황이 지은 이 단가를 보신다면 무어라고 하실까. 생전의 어머니에게 그 교육을 받지 않은 것이 애석하기만 하다.
미국에 있을 적에 필운동 어머니 집에 돌아가면 소반에 앉으시어 당시에 지은 시, "보라빛 브라쟈를 가슴에 대보네, 팔십난 생일의 사치로 - " 스스로의 유머를 딸을 향해 수줍게 읊으시면 나는 팔뚝 시계를 들여다 보며, 나 약속있어 엄마, 나가요~ 두 번을 그랬다. 어머니는 매번 바쁘다는 딸아이가 엄마의 시는 물론, 문학이라곤 관심조차 없다는 생각에 다시는 시 이야기 따윈 꺼내지 않았다.
어머니 갑자기 가시고 그 마음을 들여다 본다는 게 '손호연 가집' 4권을 번역해서 냈고 나의 시집만도 다섯권이 나왔다. 어머니 살아 계시다면 상상 못할 일이다.
소우주인 아름다운 정원과 작가의 초상화를 곁들인 단가 액자를 바라보며 단가를 읊었다는 방에 앉아,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심詩心의 어머니 생각을 했다. 일본인들이 사랑한 것은 어머니의 시라기보다는 행간에 숨겨져 있던 그 시심을 알아본 것일 게다.
교토를 찾는 분에게 쇼렝잉몬세키靑蓮院問跡는 놀라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오솔길을 창너머 내다보니 액자속에 가을이 담겼네
손호연 단가
쇼렝잉 문밖 초입에 서 있는 900살 녹나무, 일본 천연기념물 - 京都 교토京都는 일본인은 물론 기모노를 입은 외국인이 많다 굵은 금잉어들이 노니는 푸른 연못과 오색 단풍
단가 짓던 방 벽에 걸린 단가 액자 36점 - 쇼렝잉 201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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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 시인, 에세이스트, 손호연단가연구소 이사장 이대영문과, 와싱톤 죠지타운, 뉴욕 시라큐스 대학원, 교토 동지사대 재학중 방송위원회 국제협력위원, 삼성영상사업단 & 제일기획 제작고문
저서 -치유와 깨우침의 여정, 숨을 멈추고, 오키나와에 물들다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그대의 마음있어 꽃은 피고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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