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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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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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03 12:13

      동경 야스코                                                                                              2016  5  22

 

    오뎅을 먹으며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갑자기 어머니가 서울에서 가시자 여러 추억이 몰려왔다. 그 중 하나가 1980년 워싱톤에 살 때인데 서울 집으로 가면서 당시 동경의 대학원에서 만엽집萬葉集 을 연구하시던 어머니를 만나러 동경에 내렸다. 그 때 어머니와 외식을 한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긴자 4정목 어딘가에서 오뎅을 저녁으로 들었던 오뎅집이다. 어머니가 언젠가 세상을 떠나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긴자銀座에서 가까운 쯔끼지 つきじ산시장에서 먹은 스시, 긴자에서 든 하이라이스 그리고 오뎅을 먹으면서도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 거기가 어디인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가시자 그제야 철이 좀 든 나는 일본에서 대가로 알아주는 어머니의 시심을 가시기까지 일생을 산 한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쉬워 여러 책을 기획하고 일생을 다룬 영상 작품을 기획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찍은 어머니의 다큐멘타리가 1년이 넘어서야 완성이 되고는 동경에서 다큐 시사회를 가지게 되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뒷문으로 나가면 긴자銀座였다. 긴자를 보니 그 오뎅 집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에 남는 건 맛도 고급스러웠지만 아담한 크기의 오뎅집에 밍크 코트 등 고급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보였고 어머니가 내는 돈이 생각보다 커서 놀랐던 생각이 난다. 서울에서 오뎅은 서민적이고 싼 음식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의 추억도 돌아보고 그걸 점심으로 먹고는 6시 시작하는 다큐 시사회에 가려고 했다.

긴자 4 정목에서 어느 방향이었는지 전혀 감이 안와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시간은 자꾸 가고 아래 위로 아무리 걸어도 긴자 비싼 땅덩어리에 오뎅집 해서 그 임대료 내고 할만한 데가 영 보이질 않았다. 화려한 긴자를 두세 시간 걸으며 마음이 급해 주위를 살피나 그 집 이름을 모르니 속수무책이었다. 이러다간 모처럼 온 동경이고 어머니를 아는 많은 분들이 참석하는 시사회에 인사도 하고 일어로 스피치도 해야 하는데 늦으면 안되겠다 싶어 아쉬우나 아무거나 빨리 들고 가야 해 스즈란  골목 깊이에서 그저 먹는데 같아 보이는 집 노렝 을 제치고 들어갔다.

어머니와 둘이 가진 추억찾기를 완전 포기하고 당시 위치나 상호를 보지 않은 걸 후회하며 미국의 좋은 이야기도 많은데 오랜만에 뵌 엄마에게 하필 고민거리나 얘기한 걸 더 깊이 후회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안으로 들어가 오뎅 끓이는 큰 통을 보니 그토록 내가 찾던 바로 그 집이 아닌가. 아 그렇다, 야스코 やす

엄마와 같이 앉았던 자리가 보이자 손을 놓쳐 엄마 잃은 고아처럼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의 손이 그 곳을 찾으려 애쓰는 이 딸을 그리로 인도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둘이 오뎅 끓이는 그 카운터 앞에 앉아 요거요 저거요 큰 통속의 오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동그란 접시에 먹음직하게 내주던 바로 그 자리다. 2005년에 다시 앉았으니 어머니와 들던 게 25년 전의 일이고 지금으로부터는 37년 전의 일이나 엊그제 같기만 하다.

살아계실 때 일본 천왕이 단가短歌의 대가로 궁에 초청하였고 내가 엄마 없이 오뎅집을 찾은 그 때는 서울의 한일정상 회담에서 양국정상이 어머니의 평화정신을 이야기한 직후였다. 그 일을 조금만 서둘렀다면 어머니가 그 광경을 보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그 생각을 하며 어머니의 시를 담은 액자 하나쯤 이 작은 벽에 붙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그 후 동경에 갈 일이 있으면 1980년 한 겨울 추억의 오뎅집 야스코부터 찾는다. 어머니의 모습이 또 보일까 싶어서다. 누가 식사약속을 하자고 하면 거기에서 만나기로 한다. 거기서 그 스토리를 들려주면 감동해들 하고 맛도 일품이라고 한다.

연로한 주인의 어머니가 세운 오뎅집이라니 역사도 길 것이다. 오픈된 작은 주방에 오뎅을 끓이는 사람이 십여명은 되고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얼굴들이 반긴다.

그 후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 오뎅집을 찾다찾다 낙담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 순간, 불현듯 해피엔딩이 되었던 그 생각을 떠올리며 나는 희망의 자세를 곧추 세운다.

 

 

                           삶의 고비 

                      헤메고 헤메여도 답이 안나올 제

                      나는 떠올리네

 

                      말없는 어머니의 그 메세지

 

 

 

 

     야스코 의 메뉴와 수저의 엠블럼 - 동경 긴자  2015  5  

   커다란 통안의 먹음직한 오뎅

  오픈된 작은 주방에서 십여명의 쉐프가 오뎅을 끓인다

  야스코 2대째 주인 이시하라 이사시 石原 壽


 

       야스코 - 동경의 긴자 4정목 스즈란도오리  201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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