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도시샤대학 2016 졸업식 2016 3 30
졸 업
언젠가 해외 뉴스에서 하버드 유명 교수가 학생들의 심리를 알아보기 위해 학생이 선택하는 코스를 한학기 직접 해보니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힘에 겨웠다고 했다. 일본에서 대학코스를 택하며 떠오른 생각이다.
지난 이력을 내며 적당히 객원교수 자리 하나 신청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학생이고 싶었다. 아 이 공부와 삶은 정말 어려운 것이로구나 라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중도 포기의 유혹이 몇 고비 있었으나 꾹 참고 20과목을 통과하여 마침내 졸업을 해냈다. 영어권이 아닌 일본에서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이 꿈인 듯 어떤 학위보다 자랑스럽다.
그 날 동생과 친구들이 서울에서 와, 이층 가족석에서 내려다 보는데 졸업식 앞자리에 가앉으면서도 이거 진짜 해낸 거 맞나, 멀리서 온 분들이 깜빡 속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 했으나 드디어 졸업장을 받고나니 그들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졸업은 역시 철이 한참 들어 해야 할 일이다. 멋쟁이 무라다村田 도시샤 대학총장의 졸업 축사가 귀에 쏙 들어온다.
"이제 도시샤는 여러분 인생의 소중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졸업하는 올 해는 브라질 올림픽이 있고 4년 후 2020년에는 동경에서 두번째 올림픽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5년 후에는 도시샤 대학이 15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 때에 여러분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하고 싶다는 이미지를 그려 보세요. 실현을 위한 첫 걸음입니다 "
'관용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불관용에 대해 불관용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했던 동경대 프랑스 문학교수인 와타나베 가즈오 渡邊一夫 의 '관용' 이야기와 인재가 아니라 인물, 더한 지식과 교육, 인품을 겸비한 나라와 세계의 양심을 육성하려 했던 도시샤대학 창업자인 니이지마 죠新島 讓의 '양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사회와 세상에 나가 그런 관용과 양심의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축사는 감명깊었다.
그런 훌륭한 말을 스물 두살 오늘의 대학 졸업생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래 전 서울의 국민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과 미국 유학의 대학원 졸업식에서도 스승들의 그런 훌륭한 축사를 나는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해 내려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무살 나의 도시샤 동기생들도 오로지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며 많은 체험과 깨달음 후에 그러한 말씀이 오늘의 나처럼 가슴에 와 닿을지 모른다.
늦은 나이 무모하게 용기를 내어 와 고생을 많이 했다. 그 생각을 하니 오늘이 있기까지의 교토의 삶과 도시샤 라이프가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난다. 수 많은 짧은 방문으로 일본을 좀 안다고 생각한 것은 맞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로 이웃인 일본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도 깨달았다.
하루에도 여러번 지나는 도시샤대의 대선배 정지용 윤동주의 두 시비는 고국을 사무치게 했고, 교정 한가운데 우뚝 서 넉넉히 품어주던 역사 깊은 거목들, 총장 공관 앞 다섯 그루의 내가 이름지은 '사랑 나무'는 새순으로 돋는 잎 하나하나가 사랑스런 하트 모양으로 살랑살랑 손짓해 주어 나를 미소짓게 했다.
기도한 채플과 내 발길이 닿은 건물 하나하나를 누렸고, 교내 식당과 베이커리, 카페에서 내 옆에 앉은 일본 학생은 나의 즉석 가정교사가 되어 주었다. 온화하고 헌신적인 나의 스무 분 스승들은 물론, 도움을 준 수 많은 일본 학생들의 친절한 가르침이 오늘의 나의 졸업을 있게 했다.
북 스토어와 편의점의 점원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몇 번이나 종일 고개 숙이는 것을 눈여겨 바라보았고, 늦은 밤 도서관을 나서 교문 쪽으로 가면 마주하는 수위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쯔까레사마데시다' 직역을 하자면 고단하셨습니다 인데, 그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내가 고단했는지를 알아주나 싶어 하루의 고단함이 즉석에서 풀리는 듯 했다. 입술을 통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 귀한 것이라는 걸 매번 느끼는 순간이다.
도서관을 닫는 한 밤, 교문을 나서면 우편에 커다란 고쇼御所, 1100년간의 천황궁이 아무나 들어가게 문도 없이 서있고, 왼편으로 대학 캠퍼스 담을 끼고 한 10여 분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면 왼편 골목에 전통 시장이 나오고 거기에 육첩방 내 거처가 있다. 좁은 문과 부엌 모서리에 부딪치지 않으려 조심스레 들어가 책가방을 풀고 뒷창을 열어 땅에 놓인 열 두어개 작은 화분의 꽃에 물을 준다.
씻고 밖으로 나오면 거기에 달빛에 반짝이는 가모가와, 수양버들과 벚나무가 죽 늘어선 강가를 걸으며 70년 전 같은 강가를 걸었던 시인 정지용의 애끓는서러움을 생각했다.
주말에는 과제물을 들고 전차로 가끔 구라마 온천을 찾았고 봄 가을, 교토 시내 유서 깊은 사찰의 세계 최고급 정원을 걸으면 내 나라에서는 사라진 내 나라 천년 전의 냄새가 났다. 반만년 역사에 유일하게 해외로 본격적으로 뻗쳐나간 우리의 문화다.
어디에서나처럼 하루는 길었으나 시간을 보내놓고 보면 후루루 지나간 세월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사계를 거치며 일본의 모습과 생각을 바라보았고 바다를 사이에 둔 나의 조국을 생각했다. 우리의 천년 전 역사가 깃든 고도古都 교토의 대학 도시샤同志社에서 언어의 습득과 위대한 가치의 유산인 문학을 접했고 한 줄의 고대시 만엽집의 단가와 그 마음을 우리 말로 번역도 좀 해보았다. 그 배움과 깨우침이 내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기를 바란다.
천년너머 좋은 사이이다가 근현대에 와서 35년 간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지배함과 해방이 있었고 그리고 최근 몇 년의 안개 속 두 나라의 관계가 있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하는 과제, 서로 달라진 문화, 사람, 생각과 발상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미래로 끌어 가기에, 이웃 공간에 몸 담았던 나의 체험이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빈다.
만학의 졸업을 하며 지나간 졸업들이 떠오른다
돌아가지 못하는 세월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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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 시인, 에세이스트, 손호연단가연구소 이사장 이대영문과 워싱톤 죠지타운 뉴욕 시라큐스 대학원, 교토 동지사대학 졸업 방송위원회 국제협력위원, 삼성영상사업단 & 제일기획 제작고문 역임
저서 -치유와 깨우침의 여정, 숨을 멈추고, 오키나와에 물들다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그대의 마음있어 꽃은 피고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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