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복판, 가끔 걷는 신문로 길을 산책하다 그 끝 멀리 서울역사박물관 앞 대형 현수막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 그렇구나. 내가 처음 보고 놀랐고 가끔 걸어가 보는 바로 그 집이네~ 가까이 다가갔다. 오래 산 집 동네야 늘 걷는 곳이고 모르는 곳이 거의 없는데 몇 해 전 잘 안가는 행촌동 쪽으로 걸어가니 조악한 집들이 나오고 시골처럼 텃밭에 배추 무우 가지 고추 등 심은 것을 신기하게 보며 그 뒤를 돌아나가다 아 나는 깜짝 놀랐다. 권률 장군이 심었다는 팻말이 보이는데 아마도 국내에서 내가 본 거로는 제일 품이 큰 은행나무가 갑자기 등장한 듯 우뚝 서 있었다. 넘 크고 오래 된 거여서인지 식물성 같질 않고 동물성 같아만 보였다. 눈을 돌리니 바로 앞에 잘 생겼으나 낡아버린 붉은 벽돌집이 서 있다. 한 눈에 보아도 범상치가 않았다. '여호와가 집을 세우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가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 시편 127장 1절' 성경 한 구절이 현수막으로 벽돌 앞에 붙어있다. 빈집이다. 후에 들으니 주인이 어디론가 간 후로는 많은 이가 그 집에 들어와 살며 방치되어 왔다고 한다. 6백년 수령의 큰 나무와 그 서양식 벽돌집이 생각나면 콜럼버스의 발견이라도 한 듯한 마음으로 그리 발길을 돌렸었다. 혼자서 친구와도. 끌고 가면누구나 놀라워 했다. 처음 봤을 땐 가까운 사람들에게 꼭 봐야 한다고 문자도 꽤 쳤었다. 수십 년 살아 온 집에서 불과 10여 분 걸어가면 있는 걸 그제야 안게 신기해서였다. 왠지 그 방향으로는 가게 되질 않았다. 어려서 세례받은 수도교회까지 걸어가고는 바로 그 뒤인데도 교회 안마당만 돌았었다. 나만 아는 듯 한 그 집이 박물관 앞면에 집채보다 큰 사진으로 저렇게 붙어 있다니. 나도 모르게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라는 타이틀로, 사진과 글, 영상과 그림과 수집품들로 그 집 스토리가 내 앞에 펼져진다.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그 주인을 여러 해 알 길이 없었는데 얼마 전 부르스 테일러라는 미국인이 66년 만에 미국에서 와 두달이나 그 집을 찾았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이고 그의 부모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가 그 집에서 1923부터 1942년까지 산 것이다. 백여 년 전 기록과 남긴 삶의 흔적들을 보니 가슴이 멍멍해진다. 앨버트는 금광 광산을 경영하고 서울 태평로에 자동차 축음기 등 제품을 파는 상회도 있었지만 AP와 UP통신원이기도 했다. 부르스의 어머니 메리도 눈에 띈다. 신혼때 받은 '호박 목걸이'를 제목으로 서울에서의 삶을 글로 적어, 간 후 아들 부르스가 정리해 책으로 냈고 금강산의 절경과 화진포 원산 해수욕장을 자세히 묘사한 그림을 그렸는데 금광이 있던 강원도의 음첨골 삽화들이 정겹다. 당시 서울에 산 6천 명의 서양인이 서울 Union Club에 모인 이야기와 그때 입은 현대식 한복도 있다. 딜쿠샤Dilkusha는 인도에 있던 그들이 좋아하던 성城 이름이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Palace of Heart's Delight '였는데 그걸 따서 지은 이름이다. 100년 전 그들 삶의 모습이 사진과 그림으로 되어있고 당시 쓰던 은그릇 장신구 수집품도 고급스럽다. 그것을 손녀가 지니고 있다가 이번에 서울 시에 1026점을 기증해 행촌골 벽돌집이 문화재로 지정되고 단장하여 기념관이 된다고 한다. 벽에 비치는 영상을 보니 80대 아들 부르스가 버스 차창으로 남대문이 보이자 남대몬 남대몬 ~ 하며 감격해 한다. 고향이 수수 십년 몹시도 그리웠던 모습이다. 그가 세브란스에서 1919년 2월 28일에 태어날 때 간호사들이 아가 요람 밑으로 인쇄된 문서를 숨긴게 다음 날 독립운동 하려던 독립선언문인 걸 아빠인 앨버트가 알게되어 해외언론에 고종 국장과 함께 적극적으로 송고하기도 했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추방되어 미국에 가서도 한국을 돌아오려 여러 시도를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갔다. 그가 간 후 메리는 앨버트의 유언대로 그를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었고 손녀는 그의 유골을 벽돌집 앞 은행나무 거목 밑둥에 뿌리며 눈물을 흘렸다. 참으로 한국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기록은 위대하다. 신기해 하며 뒤늦게 찾은 그 벽돌집으로 걸어가곤 했는데 거기에 살던 메리 테일러는 그 삶을 기록했고 호박목걸이와 반지를 간직하여 이렇게 나에게 백년 후 보여준다. 1980년부터 책을 내오고 '컬쳐에세이'로 기록하여 세계로 보내고 있는 것이 이제는 힘겨워 두 손을 들고만 싶은데, 백년 전 꼼곰히 한 기록이 이렇게 소리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걸 보니 그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것인가. 남는 건 과연 생각과 기록 뿐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