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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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꽃이 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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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0 08:02

 

 

 

        경복궁 경회루의 수양벚꽃

                                                                                                                  2018  4  15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서울에 피면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의 봄꽃이 만개한 것을 보는 것은 오래간만이다.

지난 20여 년 그 시기에 교토나 도쿄를 갔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그 곳의 봄꽃을 보고 돌아오면 우리의 봄꽃이 피어났기 때문에 양쪽의 꽃을 누리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거의 같은 때에 서울의 꽃이 피어났기 때문에 한쪽만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을 이번에 1월의 갑작스런 사고로 생고생을 하며 외국 일정을 취소하면서도, 느즈막이4월 초라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교토의 봄꽃, 그 중에도 늘어진 수양벚꽃 시다레자쿠라는 보게될 줄 알았는데 퇴원 후에도 회복중이어 한시간여의 비행을 하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교토 여러 군데의 기막힌 예술의 진분홍빛 시다레자쿠라가 눈앞에 하늘하늘 거리지만 내 고향 서울의 봄꽃을 느긋이 바라보는 기회로 삼게 된다.

 

우선 아침에 깨어나면 저편에 부엌 작은 창이 보이고 그 유리로 앞집의 붉은 벽돌 집이 보였지만 며칠 전부터 하얀빛 벚꽃이 가득 차 상쾌하게 나를 놀라게 한다.

아 잔인한 겨울이 지나갔구나. 새 계절 새 생명이 피어났구나.

방금 뭔가 꿈을 꾼 듯 한데 저 꽃도 꿈은 아니겠지. 

희망이겠지.

 

꽃 뒤로 보이는 그 집은 육영수 여사의 오빠인 육인수씨가 살았고 모시고 사는 어머니가 박정희 대통령의 장모여서 육여사 가신 후 대통령과 큰 딸 박근혜가 자주 왔고 앞뒤 긴 골목을 막았지만 나는 이층 내 방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 보곤 했었다.

 

언젠가는 당대 유명한 코미디언 다섯, 곽규석 뚱뚱이 홀쭉이 김희갑 구봉서가 거기서 '오부자五父子' 라는 영화를 찍은 생각이 나고, 미국에서 한참 후 오니 인도 대사관이 되어 있었다. 그 후엔 3층 빌라를 지었고. 빌라를 지으며 잘 안팔렸는지 바로 앞에 계신 어머니에게 하나 사라고 했는가 북악산이 부엌에서 다 보이는 제일 좋은 전망의 집하나를 잡았는데 그 후 은행빚을 갚으려 아무리 팔려고 해도 팔리지를 않자 나에게 이것을 너에게 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때는 일로, 비싼 아들 미국학비 내는 한창 바쁘던 때여서 관심이 없었고 들어가 보니 수리할 일이 막막해 안하겠다고 했다. 여러 번 조르시어 십대 저항하듯 '그거 수리할 시간도 돈도 안되니 안하겠다' 고 뻣대니 형제 몰래 주시려던 어머니는 긴 한숨을 지었다. 파는 거라도 본격 알아보다 가까운 새문안교회가 담임목사를 프랑스에서 초빙하여 산 값의 반으로 내려간 그 집을 중환자 실에서 함께 계약했고 어머니는 그것으로 은행빚을 갚고 가셨다.

 

지금 꼭 필요한데, 아침에 눈을 뜨면 그것부터 눈에 들어 와 순진하고도 어리석던 당시,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어머니의 말은 무어든 꼭 들었어야 했는데 를 볼 때마다 상기시키는데 거기에 새하얀 꽃이 어머니의 메세지처럼 불현듯 피어난 것이다.

 

방의 서향 창으로는 20년 전 정원의 많은 부분이 길로 잘려나가고 남은 뒷뜰이 좀 보이는데 거기에 오래전 내가 심었던 벚나무가 훌쩍 20여 미터 큰 키로 자라나 뭉게구름처럼 꽃무리로 피어난다. 1년 내내 잊고 있던 그 꽃이 봄에는 피어나 나를 매번 놀라게 한다.

 

오래 전 미국으로 공부가기 전 날, 카메라도 잘 없던 때, 나의 어린 시절부터 사진찍기가 큰 취미였던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경복궁에를 갔다. 경회루 앞 벚꽃 잎이 하늘하늘 휘날렸던 걸 보면 4월이었을 것이다.

 

그린빛 스웨터 재킷을 입고 앞으로 펼쳐질 날들을 전혀 모른채 밝은 눈임에도 돗수 없는 둥근태 안경을 끼고 있었고 그리고 그 뒤에 늘어진 수양 벚꽃이 피어 있었다.

사진이나 기록은 좋은 것이다.

지금은 어디있는지 모르겠으나 오래도록 본 그 사진으로 그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벚꽃을 배경으로 환히 웃는 나의 사진, 자신의 작품을 인화해 뒷면에 보석같은 첫 딸을 멀리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한 줄의 시로 써서 한일 지인들에게 보냈었다.

 

그 경복궁으로 천천히 걸어가 본다.

청와대 앞쪽 산책을 하다 경복궁 북문쪽으로 가끔 들어가지만 경회루 물앞에서 어머니가 사진찍어 주시던 그 꽃 배경 장면은 실로 40여 년 만이다. 찰라에 져버리기 때문이다.

 

그간 벚꽃길이 이 나라 곳곳에 많이 생겨났지만 늘어진 수양벚꽃은 잘 없다. 현충원에 몇 그루가 있고 요즘은 아주 드물게 조금 있지만 땅까지 내려올수록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걸 모르는지 늘어진 긴 가지 중간을 툭 잘라버리기 일쑤다. 

 

경회루 물앞, 삼각형의 사랑스런 북악산과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흔들거리는 수양벚꽃 시다레자쿠라가 내가 처음 본 시다레자쿠라 수양벚꽃이다.

 

이 땅에 남겨진 사람은 외롭다. 아버지 한참 먼저 가시고 남겨진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해마다 매듭짓는 꽃이라면 이봄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그대여

 

                                                                                            손호연

 

라고 안타깝게 읊었으니.

 

멀리는 못 가고 청와대에서 총리 공간 쪽으로 살살 가면 맞은편 삼청동 골목 깊이 새하얗게 늘어진 수양벚꽃 뭉치로 어두운 골목이 햇살이 비친 듯 화안하다. 

 

사람은 긴 겨울 봄꽃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잊지않고 피어난다.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되돌아 온 꽃을 보고 또 보다 봄날이 가고 한 생이 간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 그 순정의 사랑을 시로 20년 그리고그리다 같은 때 합장하신 어머니, 그리고 새삼 어려서 길러주신 할머니 생각이 부쩍 난다.

꽃과 화초를 유난히 좋아하시어 봄이면 아껴놓은 돈을 이조장 저 밑에서 꺼내어 자목련 목단 산단화를 들여놓으며 행복해 하시던 할머니. 리더십이 있는 대단한 미인이었는데 노년에 어쩌다 길에서 하얀 머리의 늙으신 할머니를 보면 피했었다. 

가시고 30년이 되어서야 그 마음이 이 가슴에 전해지는 그 꽃 피어나는 봄.

 

 

봄꽃은 어느 나라 어느 위치에서 보든 아름답고 애처롭고 옛 기억 옛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꽃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은 하나도 없네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다 연결이 되네 우리는, 피어난 봄꽃 하나로 

 

                                                                                  이승신

 

 

  

 


눈을 뜨면 부엌창으로 보이는 봄꽃과 앞집 

오래전 뒷정원에 심은 벚꽃, 뒤유리는 환경연합


                        밤 조명에 비친 집앞  필운대로 수양벚꽃 가로수                           



 40년 후 자라난 경회루 연못가의 수양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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