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내 어릴 적만큼 눈이 많이 오는 것 같지 않아 오랜만에 보는 새하얀 눈이 반갑기만 하다.
New York 주 Syracuse 대학원을 졸업하고 북쪽 50분 거리 오스위고 Oswego에 산 적이 있다. 함께 공부한 아들 아빠가 그 곳 뉴욕 주립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록펠러가 세운 5개 뉴욕 대학 중 하나인 그 대학 캠퍼스 바로 앞에는 거대한 5 대호 온타리오 레이크Ontario Lake가 있다. 아들 앤드루는 바다보다 더 큰 그 호수 앞에서 하늘이 새파랗고 단풍이 새빨간 날 태어났다.
여름이면 그 호수 말고도 지천에 수 없는 에메랄드 빛 호수와 폭포와 강이 있었다,
카나다 가까이 있는 그 곳은 그러나 10월부터 눈이 오기 시작해 5월 초에도 내렸다,
수많은 키큰 나무들 위에 눈이 얹히면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가 어디 또 있으랴 싶었다.
Oswego 집 마당에 서있던 눈을 인 나무들
허나 매일매일 산같이 쌓이는 눈을 삽으로 치워야 차고 긴 드라이브웨이를 빠져 나갈 수 있었고 집집마다 겨울에 쓰는 차가 따로 있는데, 금방 뿌려지는 제설제에 녹이 슬어버려 여름에 쓰는 차와 겨울에 쓰는 차가 따로 있었다. 뺨이 몹시몹시 시렸고 겨울은 길고도 길었다. 대학원 다니던 워싱톤에 가면 2월에도 봄 기운이 도는데 집에 오면 5 월도 추웠다.
한 밤의 유명한 Talk Show 'Tonight Show'에선 쟈니 카슨이 오프닝 멘트를 세계 뉴스로 코믹하게 하는데 ‘뉴욕 오스위고는 오늘도 기록을 또 깨고 최고로 많은 눈이 왔다고 합니다. Oswego is the snow capital of the world’ 라 했을 정도다. 거기에 살았다.
서울서 오신 아버지는 전에 대학 다니던 만주 같다며 추억에 잠기셨고, 나이아가라 폭포 가자며 잠시 들리는 이들은 와아 신비로워 했지만 매일 사는 사람은 제발 이제는 눈발이 그쳤으면 하며 하늘을 쳐다보았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봄이 올 것 같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눈 내린 산을 바라보니 높은 나무 위 'Tree House'가 있는 뒷마당이 깊숙한 숲과 연결되던 오스위고 집과 그 미네토Mineto Rd 초입에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답던 성당이 꿈속이듯 떠오르는 걸 보니 뇌리에 눈과 함께 연결되는 영상인가 보다.
뒷마당 키큰 나무에 세워진 Tree House, 그 뒤로 한없는 숲이 연결된다
서울서 오신 어머니는 이 광경을 시詩로 써 일본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다
손호연 사진
그에 비할 바는 아니나 서울의 겨울도 긴 편이어 나처럼 추위를 타는 사람은 그저 어디 따뜻한데로 달아나고만 싶은데 이것저것 걸리어 달을 넘기다 보면 그렇게 봄을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가끔 오는 것이라면 그러나 눈은 참 좋은 것이다. 겨울의 꽃이다.
인간이 어질러 놓은 도시를 하얗게 덮어 버리고, 집 뒤 인왕산 치마 바위와 청와대 뒤 삼각형 북악산이 눈을 이고 서있는 모습, 하얀 눈이 그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만드는게 눈에 부시다. 마음이 화안해지고 새 날의 희망이 솟아오른다.
삶도 그럴 것이다.
매일이 매순간이 기쁘고 희희낙낙하고 풍요롭고 좋은 일만 있다면 무슨 기쁨과 감사가 느껴지겠는가. 어쩌다 보는 무지개에 가슴이 설레이고 생에 처음 보는 개기월식이 경이롭기만 한 것처럼, 기대하지 않은 때 불쑥 찾아오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 기대되고 소망을 품게 되는, 우리의 인생은 그런 것이다.
청청한 소나무들이 서 있는 북한산 인왕산에 오르던 날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