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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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모리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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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27 16:13

 

 

 

   아오모리 산 홍옥 1개 120 엔                                                                                   2019  9  30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아오모리 사과

 

서울에서 사과를 먹으면 교토에서 사 먹던 아오모리靑森 산産 사과 생각이 난다.

 

2015년 큰 용기를 내어 교토의 공부를 시작하며 그 바로 직전 방을 구한다는 것이 시간은 촉박하고 보는 몇 개의 방이 다 고만고만해 못 정하겠는데, 같이 한 분이 대학 가깝고 재래시장이 옆인 여기가 좋겠다~ 하여 그 분 시간 뺏는게 미안해 하기로 수긍을 했다.

 

처음 생각한대로 좀 작았으나 '일본의 문화'라 생각하고 근처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와 가모가와鴨川 강가에서 종일 보내고는, 잠만 자면 되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안했었다. 그런데 정말 좋은 점은 세 걸음만 발을 옮기면 시장이어 서울서 가던 동네 통인시장이 생각나며 먹을 것과 필요한 것들이 거기에 있어 대만족이었다.

 

깨끗하고 좋은 수퍼가 그 안에 두개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과일 가게가 몇 개나 된다.

며칠 다니러 간 것이 아니어 생활하려면 세끼 먹을 것이 기본이다. 마침 학교에 몇 개 식당이 있어 다행이나 그래도 시장서도 신선한 사시미 연두부 유제품들이 싸고 좋았다. 흔히 일본에 물가가 비싸다고 생각하나 그 안에서 생활하게 되면 그렇지도 않다.

 

그렇게 싱싱한 과일들을 샀는데 어느 날 그 시장 끝의 길을 건너니 따로 과일 가게 하나가 보였다. 사과와 귤, 감 등 종류는 작은데, 앞에 아오모리 산靑森産 사과라는 팻말이 있어 반가워 건너갔다. 주인에게 아오모리 사과네요~ 하니 그렇다고 한다. 가게 저 끝트머리 살림집이 창으로 좀 보이는데 설겆이 하는 이가 98세 어머니라고 했다.

 

아오모리靑森는 일본 본토 제일 북쪽 끝 현, 보기드문 청정지역으로 자연과 공기가 지독히도 깨끗하고 사과가 유명하여, 전국 어디를 가도 아오모리 사과가 보인다. 

 

어머니는 열 일곱살부터 5 7 5 7 7 음절의 시를 썼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다가 말년에 일본 천왕이 대가로 친히 초청을 하고부터는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있었다. 그 중 하나의 원고 중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제 시비가 일본에 세워진 대단한 한일친선도 있으나, 지극히 사소한 것으로 양국의 친선이 되기도 합니다. 궁중신년가회御前歌會에 참석한 다음 날, 함께 간 딸의 어린 아들에게 물을 주려고 작은 가게에 들어가니 가게 부부가, 여행 중이십니까? 어느 호텔입니까? 어느 나라에서 오셨습니까? 묻기에 한국이라고 한 후 두 분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하니 아오모리라고 했습니다.

 

'저도 간 적이 있지요. 제 시비가 거기에 세워져 있어서' 하니 이해가 가지않는 표정이어 발음을 주의해 다시 말하니, 가게 주인은 갑자기 최경어로 '아주 훌륭한 분이시로군요' 하며 공손히 절을 했습니다. 나오려는데 포테이토 칩 봉지를 주며 '손주에게 주십시요'  돈을 받지않아 그냥 나오기가 뭐해 포장지를 받아 그 뒤에 시를 적어 주었습니다.

 

  고국을 멀리 나의 노래비가 서도다 이웃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정히 지내라고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어라

 

부인이 울먹이며 '이웃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요' 하며 오래도록 머리를 숙이더니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나와 버렸네요' 옆에 묵묵히 섰던 남자도 눈을 붉혔습니다. 나오며 한 장 밖에 없다는 더럽혀진 명함을 받아 왔습니다.

 

귀국 후 저는 그 감동이 식기 전 바로 편지를 썼습니다 '주신 포테이토 칩은 제 손에 건너온 순간부터 그것은 하나의 물체가 아니라 제 한 수의 시와 함께 한일친선의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이 미담은 제 가슴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요'

 

어머니 강연 중 그 일화가 떠올라, 살던 동네 사과 주인에게 말했다. '이 사과 몇 개 싸주세요. 제 어머니 시비가 아오모리에 서 있거든요'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이어 나도 어머니 시를 종이에 적어주었다.  감격해 했다.

 

           이국땅 흙에 어우러져 노래비야 서 있어라  두 나라 마음의 가교가 되어

 

감격해 했다.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80년이 되어가는 과거사로, 걸핏하면 갈등 모순 다툼 보복으로 피로를 주는 양국 정부다.

 

민간 레벨에선 한 알의 사과와 시 한 수로 따뜻한 마음이 이렇게 곧 열리는데.

 

나는 교토에 있었을 때도 시장 건너 그 사과가게를 갔지만, 도시샤 대학 졸업 후에도 교토를 가게 되면 그 곳을 찾아 키무라木村상과 반가이 인사하고 사과를 호텔로 가지고 온다. 한일우호를 위해 일생 헌신하신 아버지 어머니에게 배운 한 수다.

 

아모모리 사과 이야기 중 유명한 게 있다.

 

1991년 아오모리에 엄청난 태풍이 몰아쳐 농사한 사과의 90프로 이상이 못쓰게 된 적이 있다. 다들 절망했는데, 한 농부가 살아남은 귀한 사과에 '합격'이라는 이름으로 10배 이상의 값을 붙치자, 수험생 엄마들에게 순식간에 매진된 이야기이다.

 

흔히 사과는 비료를 뿌리지 않으면 농사가 되질 않는다고 하나, 또 다른 아오모리 농부는 여러 해 비료를 쓰지 않은 실험 끝에 마침내 성공하여,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 셀러가 된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이 그간 몇 번을 사과했다 해도, 현 총리 아베가 상처입은 우리 국민에게 사과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또한 작은 개개인도 사과하는게 선진국처럼 일상에 흔한 일이면 좋겠다.

 

사과할 때 나라가 나라답고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를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키무라木村 과일 가게  - 교토  2018 12  5

 이와테 현 홍옥사과와 감
그 옆시장의 쪼개 파는 채소들

 

시장 야채가게 얼굴만한 동그란 무우

 

키무라 과일가게 주인 키무라木村 상  -교토  2018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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