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월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 월도 좋지만, 6 월로 들어서면 그간 눈에 잘 안띄던 주위 나무들이 하나같이 신록으로 빛을 발하여 눈이 부시다.
집에서 나오면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든 인왕산에 가 닿는다. 이때 쯤에는 배화여고 앞으로 해서 황학정 활터 가는 길을 택하게 된다. '아카시아 길'이 있기 때문이다. 종로 도서관을 끼고 돌면 거기서부터 아카시아 나무가 활터 입구까지 한 30여 미터 늘어 서 있다. 꽃향기가 진동을 한다.
향기도 그 향수가 있다면 사고 싶을 만큼 감미롭지만, 오래 전 아버지와 산책을 한 길이어서다. 평양서 오시어 가시기까지 두고 온 부모님 한 번을 못 보셨는데도, 또한 파란만장한 세월을 온 몸으로 다 맞으시고도 마치 시름하나 없다는 듯, 어찌 그리 만사가 긍정이고 밝은 성품인지 이제야 그 향기를 아카시아 향기처럼 느껴본다.
일터에서 오시면 피아노로 가고파 등을 부르고 저녁을 들곤 동네 산책을 하셨는데, 나와는 그 아카시아 길을 걸었었다. 귀에 듣기 좋은 음성으로 말하시며 양 옆으로 늘어선 아카시아 녹빛 긴 잎을 따서는 가위 바위 보, 별 놀이도 없던 시절 그 순박한 게임을 했다. 길다란 줄기에 열 몇 개 잎이 달린 걸 하나씩 떼어내어 먼저 다 떼어낸 사람이 이기는 거다. 지금같이 서울 인구 많지 않던 시절인가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어린 딸에게 져주어 힘주고도 싶으셨겠으나 당시 내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꼭 이기려고 벼르듯 열심히 하시던 생각이 난다. 나도 이기려 기를 썼다.
그때 들려주신 말은 무엇이었을까 를 생각하며 5 월부터 6 월 초까지 아카시아 하얀 꽃이 주렁주렁 피어난 걸 보러, 아버지의 화안한 모습과 따뜻한 손길을 느끼려 그리로 간다.
그 길도 정비되고 변해서 이제는 마을 버스도 다닌다. 활터로 인왕산으로 오르는 길인데 그 많던 아카시아 나무들이 베어지고 우측으로만 주욱 피어 있다. 다 자란 내가 걷기엔 짧은 길이다. 그래도 그때의 아카시아 나무가 몇 그루 남아 그렇게 서서 날 맞아주니 감사하고, 수 십년 전 가위 바위 보~ 를 힘껏 외치며 같이 걷던 생각을 하면 꿈을 혹 꾸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 눈에 들어오는 건 계절이 바뀌어 죽었다 다시 살아난 아카시아 꽃과 잎 뿐이다.
이 시대 글로벌리 아주 중요해진 '특허, 지적 재산권'을 이 나라 황무지에서 일구어 낸 개척자로 그때 만드신 '대한민국 발명의 날'은 5 월 19 일 해마다 이어지는데 아버지만 가시어 안타깝다.
내 안에 아버지의 DNA를 느끼는 나는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있으면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께도 일르지만 이윤모李允模, 사랑주신 아버지에게도 말을 한다.
미국 살 때 그리워 하던, 6 월의 감미로운 아카시아 이 길을 오랜 만에 타박타박 걸으며 아버지~ 그 이름을 또 다시 불러 본다. 6 월 20일은 아버지의 생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