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이란翠嵐 아라시야마嵐山
3, 4 년 전까지가 좋았다.
교토에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이 적당히 섞여 있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너무 한산하면 적적할 테고 사람이 넘쳐도 그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일본에 중국인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교토, 도쿄야 이름난 도시이니 이해가 되나 어느 구석진 산간시골을 가도 중국인들이 보여 놀랍다. 한국사람도 오나 한국 여행사의 코스는 교토가 반나절이나 하루다. 교토는 교토만의 스케줄로 와야 한다. 그만큼 볼 것이 많고 생각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교토 시내는 서울 같은 대도시에 비해 아주 작아 시내 어디를 가도 금방인데 아라시야마嵐山는 시내 중심에서 버스로 25- 30분. 교토치곤 꽤 가는 거리다.
아라시야마 산 앞으로 가츠라桂 강이 흐르고 그것을 건너는 다리 이름은 '도게츠쿄渡月橋' '달이 건너가는 다리'라는 뜻이다. 실제 그 위로 달이 뜨면 마치 강을 가로질러 달이 그 다리를 살살살 건너는 듯 하니 잘 어울리는 시적詩的인 이름이다. 사람 이름도 그러하나 도시나 다리도 작명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그 다리를 건너면 든다.
풍광이 좋아 옛 귀족들 별장이 있던 마을인데 그 일대 길에 요즈음 사람이 엄청 밀린다. 인파에 휩쓸려 바로 앞의 물과 산을 제대로 볼 겨를도 없이 좌지우지 양켠을 둘러보다 4시면 어둑해지니 소위 가이드 북에 올라 있을 세계문화유산인 텐류지天龍寺와 대나무 숲인, 죽림竹林을 인파따라 걷고 그 곳의 명물, 두부 요리 좀 들면 하루가 다할 것이다.
텐류지天龍寺 큰 사찰은 4월 초, 늘어진 벚꽃과 매화가 일품이고 단풍철만 여는 바로 그 곁 의 보물같은 정원, 호공잉寶嚴院은 교토 단풍 중에도 최고봉으로 이미 글에 썼고 영상으로도 만들었고 올 해 나온 나의 '왜 교토인가' 책에도 자세히 들어 있다.
그런데 그 아라시야마를 나처럼 이미 여러 번 와본 사람은 해가 어스름해 가는 4시 쯤 와서 인적이 적어진 가츠라桂 강가를 걸으며 볼 곳 많은 중 두어군데를 들린다.
그 중 하나가 수이란翠嵐이다. 좌측에는 가츠라 강이요 우측으론 단아한 정원이 있는 고급식당 몇 개가 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길을 끝까지 강따라 죽 걸어가면 수이란Suiran Kyoto, 우아한 입구 간판이 나오고 'A Luxury Collection Hotel'이라고 쓰여져 있다. 세계적 호텔 잡지에 '가장 전망좋은 Top View'로 꼽히는 곳이다. 하루에 3천불. 지은지 얼마 안되는 웨스턴 스타일 호텔이다. 일본에서는 그러나 웨스턴이라도 일본의 독특함이 가미되기 마련이다.
처음 갔을 때, 입구의 제복입은 남자가 예약이 없다고 막기에 그러면 왼켠 강앞에 따로 떨어져 있는 그 안의 찻집에서 커피라도 하겠다 하니 그것도 예약 없이는 안된다하여 기가 차 발길을 돌렸다. 그 뒤켠을 돌아 살짝 오르막에 중국인들이 꼭 찾는 주은래 시비를 대신 보았었다.
두번 째부터는 얼굴을 사귀어 잘 설득해 찻집을 들어가니 아 과연 'Best View'의 의미를 알듯하다. 바로 코 앞에서 바라보는 4시 반의 야경 아라시야마 산 보랏빛 조명이 짜릿하고 그 앞 내 발아래 알맞은 폭의 강물은 보드랍게 흐르고 있다. 찻집과 물 사이, 우아한 굵은 소나무들이 삼면의 창으로 산과 함께 보이니 우측으로 정원을 끼고 들어가는 방의 최고의 전망이 바로 이것일 게다.
삼면의 유리로 보이는 것이나 물앞 외부 의자에서 보이는 View의 어느 면을 바라보아도 대낮이나 어둑해지는 저녁에나, 매번 감탄사가 나온다. 미국의 뉴욕, 매사추세츠, 워싱톤의 좋은 곳을 한달이나 본 직후다.
우아한 찻잔의 커피 값이 일반의 두배 반이나, 3천불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을 꼭 잡고 호텔 쪽으로 향하는 젊은 중국인 커플도 있으니 커피 값을 불평할 수는 없다. 더구나 예약으로만 받는 찻집에 예약도 없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세계엔 먹을 것이 물이 없어 아사지경인 인구도 있으나 돈이 넘치는 부류도 있어 그들을 위해 이 세상 상급 전망에 이런 것을 만들어 놓은 것은 감사한 일이고, 차 한잔에 그런 고급 분위기를 접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5시에 닫는 그 찻집을 나오며 입구 대문 좀 전의 이끼 잔디에 자칫하면 놓칠 뻔한, 가는 대나무로 된 가리개에 더 깊은 감동을 하게 된다. 있는 둥 마는 둥 둥글게 세워진 불과 몇 센티 키의 가리개로 누구나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운 것이다. 신비로운 단풍 조명이 눈을 끌어 들어올 제 발치 아래가 눈에 띄지도 않았었다.
서울에 태어나고 살아 구청 시청 직원을 좀 알고 있다. 서울을 걸으며 힐 뒤꿈치가 끼는 보도블럭에, 미美와 거리가 먼 굵은 스텐레스 스틸 손잡이, 투박한 시멘트 가리개 등 불만을 기회있을 때마다 말한다. '이리 튀게 하지 말고 보이는 둥 마는 둥 안꾸미는 듯 꾸미는 게 좋은 거다' 말하면 그건 돈이 많이 들지 않느냐고 한다. "그건 돈이 아니고 보는 눈이요 안목이다, 창조된 자연에 겸손히 인간의 손을 아주 조금 대는 것이다. 오히려 돈이 덜 든다" 수도 없이 말했다.
이 비싼 최고급 호텔에 어마어마한 돈만을 들여 만들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자그마한, 규격도 없이 살풋 꽂아놓은, 별 것도 아닌 대나무 가리개를 보며 다시 또 느껴보는 저들의 세밀한 디테일이다.
아라시야마에 북적북적 줄서 다리를 건너는 이들에게 해가 진 저녁 이 구석의 이런 자잘한 것이 보일 리 없다. 내가 아는 공무원이 아라시야마에 온들 이런 것이 보일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수 십년 말해 온 그런 미세한 것들을 작은 도시 교토의 구석구석에서 보며 후유~ 긴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 생각을 돌려 가라앉는 마음을 억지로 끌어올려도 본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하나, 한숨에 좌절에 절망보다는 이제라도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후대에라도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 아닌가. 세계 어디에서고 '하니 된다' 는 그런 자신감 자부심을 우리의 후대는 가지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이제라도 시작을 한다면 말이다.
수이란翠嵐의 신비로움을 캄캄해진 5시에 걸어나오며 해본 생각이다.
그 바로 곁에는 제법 큰 '단가短歌 문학관'이 다소곳이 서있다.
수이란翠嵐 입구 - 아라시야마 교토 2018 12 가츠라桂 강 뒤로 아라시야마 산
수이란을 들어서면 왼편 강이 흐르고 단풍나무 뒤로는 찻집이
수이란 호텔 입구 찻집서 보이는 강과 산
찻집에서 바라보이는 강과 아라시야마 산의 12월
야간 조명에 비추인 보랏빛 아라시야마 산
수이란 정원에서 보이는 나가는 길
가츠라桂 강과 산을 바라보는 수이란의 낮은 석등 하나
이끼 잔디를 살풋 가리는 대나무 가리개
밤 조명에 비추인 도게츠쿄 다리 - 아라시야마 201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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