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를 연구하는 사람이 세계에 많은 중, 그들이 교토의 여러 명소 중 첫째를 어디로 꼽느냐는 물음을 받으면, 한참을 고심하다 답하는 곳이 '료안지龍安寺'다.
그 명성은 특히 서양 선진국에서 대단하다. 극도로 발달된 그들의 정신 문명에 무언가 미진한 것을 일본 정신에서 마침내 찾아냈고, 그것이 눈에 보이는 조형으로 들어난 것이 료안지의 석정, 그 단순함 정갈함 지극한 영성의 아름다움이었다. 료안지 석정에 영감을 받은 서양의 사상가 문학가 예술가 건축가는 부지기수로 많다. 우리 대통령과 일본 노다 요시히코 野田佳彦 수상과의 어설픈 역사논쟁으로 끝난 정상회담도 2011년 거기에서 있었다.
경주 하면, 하도 들어 불국사는 그저 한 번 정도 돌고 다른 신기한 것을 찾게 되듯 나도 교토에 가면 다른 신비하고 독특한 것에 매료가 되었다. 료안지에는 사람도 많지만 봄에 한 번 석정원의 그 유명한 길다란 흙담 바로 뒤에서 피어나는 커다란 수양벚꽃枝睡れ櫻을 보러 가는 정도다. 여러 봄 발걸음을 했으나 늘 며칠 이르거나 늦어 그것이 활짝 만개한 건 여직 보질 못했다.
료안지의 위대함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나 들었어도 그 곳의 단풍이야기를 들은 적은 별로 없다. 경내가 크고 나무 종류가 많아서 단풍이 분명 들 것인데.
그러던 2015년 초겨울 어느 날, 도시샤 대학의 90분 간 학기말 시험을 치고는 띵한 머리로 료안지 행 버스를 집어 탔다. 학교 앞에 유명 사찰들 가는 직행버스가 많았으나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시간이 되질 않던 때였다.
수양벚꽃 터널에 복사꽃 버드나무 소나무 갈대 숲, 그리고 단풍나무도 푸르른 입사귈 보았으나 가을 단풍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좋아도 워낙 경내에 자랑거리가 많으니 거기에 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버스 안에서 어느 쪽일까 생각을 했다.
보니 두 번째 생각이 맞았다. 잎이 지고 있어도 아름다워 시험친 고생의 보상이 되었다.
지난 해 12월 그 생각이 나, 거기에 도착하니 닫기 15분 전. 교토의 사찰이나 정원은 5시에 닫는데 4시면 슬슬 닫을 채비를 한다. 입장권 파는 박스도 닫히고 료안지 대문도 닫히고 쪽문만이 열려 있어 그리 들어갔다.
그 경내를 한 바퀴 둥글게 걸어 나오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짧은 시간이어 좌측, 거꾸로 나오는 곳으로 계단을 급히 올라서니 경용지鏡容池 큰 연못을 끼고 그 물로 늘어지는 단풍나무가 길게길게 이어진다. 굵은 나무들이다. 평시 걷던 길을 반대로 걸으며 해질 무렵, 단풍잎을 붉은 꽃인양 선물로 바라보며 걸음걸음 폰에 담았다. 경내를 돌고 나오는 중동 커플이 마주 온다. 무슨 언어를 쓰는지 모르겠으나 입으로 눈짓으로, 우리는 그 감격의 순간에 일심이 되었다. 중동에 대한 편견이 행여 있었다면 다 사라진 순간이다.
졸업 후에도 이런저런 일로 타이밍을 맞추어 한 해 몇 번을 교토에 갔었다. 비행이 부산보다 가까운 느낌이다.
그러던 게 현재 허리 통증으로 나가질 못해 미국 행도 교토 행도 다 캔슬이 되었다.
지금 교토 단풍이 피크인데~ 11월 29일 동지사대를 창립한 '니이지마 조' 기일에 산중 산소를 동창들과 올라야 하는데~ 아쉬워하며 지난 해 찍은 에이칸도永観堂 사진과 글을 최근 3언어로 보내니, 이 어수선한 세상에 그걸 기뻐하는 분도 있어, 연못 물속 자신의 모습으로 자꾸만자꾸만 들어가던 료안지龍安寺의 불타는 단풍 생각이 났다.
료안지에 가을 물이 들니 고요함과 영성이 더해졌었다.
여러 달 전 그 사진이 아까워 '료안지 글'을 써놓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 글이 보이지 않는다. 사라졌다. 감격이 사라지기 전 쓴 건데 그때 받은 영감은 무엇이었을까, 허리를 낑낑하며 지난 해 이 무렵 료안지龍安寺가 물들어, 온 우주가 불타는 듯 했던 장면을 떠올려 본다.
아름다움의 깊이를 알아 본 중동 커플의 모습도 떠오른다.
꿈이었던가.
굵은 나무 속에서 꿈틀거렸다
굵은 생명이
그 깊은 靈이
료안지 가을에 물이 들면
료안지에 가을 물이 들면 - 교토 2018 12
뒤로는 산을 낀 120에이커의 너른 터 료안지 전경
나가는 퇴로 - 교토 료안지 2018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