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5
딴 세상
이건 딴 세상입니다.
서울엔 눈이 많이 왔다고 하는데 이 곳 교토는 18도 안팎입니다. 교토의 명물 단풍 모미지가 드디어 찾아왔습니다.
서울에선 시내로 단풍구경 간 생각은 나지 않고 멀리 설악산 내장산으로 갔습니다. 도시에선 나무를 다 베어야 집도 짓고 건물도 세웠겠지요
그러나 이 곳 교토는 시내 한복판에 오래 된 단풍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사찰이나 신사神社, 정원, 공원에나 가득 있습니다. 덥다가 갑자기 차가와져야 단풍 빛깔이 곱다고 하는데 지구 온난화로 이번에도 계속 따뜻하기만 해 지난 해만 못하다고 하는데도 그 신비로움이 딴 세상만 같습니다.
사계절이 있어 그 변화가 우리 삶에 새로움을 줍니다. 더움과 추움 사이 이런 가을이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은 긴 겨울을 넘기고 바라보는 희망이어 좋으나 단풍은 한 해가 다함을 알리고 인생의 가을을 상기시키어 쓸쓸하고 적적하다고도 하나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와 그 아름다움 속에 한 덩어리가 되어 그윽히 바라다 보면 삶의 어느 한 순간도 기대하지 못한 신비감과 아름다움이 없는 순간이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여러 번 보았습니다만 장기로 있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단풍들을 만났습니다. 최근 도시샤대학 창립 기념일로 주말까지 연휴여 고요 紅葉를 찾아 나섭니다.
그간 집과 학교만으로 어느 도시에 있는지도 잘 모르고 지냈습니다만 다녀보니 과연 교토라는 감이 옵니다. 12월이 단풍의 절정이라니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고쇼御所 기요미즈테라 고다이지 엔도쿠잉 에이칸도 난젠지 도후쿠지 센뉴지 기타노텐망구 시셴도 콩까이코묘지 신뉴도 엔코지 텐류지 등 많은 곳의 이 가을을 보았습니다만 해마다 새로운 영상의 Performing이 펼쳐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집, 고다이지高臺寺, 그 고요한 연못에 투명한 거울로 비치는 새빨간 밤 단풍을 표현할 길은 없습니다. 바로 맞은 편, 그의 아내 네네의 집에서 바라다보는 단풍나무도 딴 세상의 예술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된 키타노텐망구北野天滿宮의 긴 개울따라 흐르는 늘어진 단풍나무 가로수,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천황이 자주 와 단가를 지었다는 방에서 내다 보는 묘한 가을 빛깔의 쇼렝잉靑蓮院의 정원과 아라시야마嵐山의 호공잉寶嚴院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입니다. 시센도詩仙堂와 엔코지圓光寺의 우아한 단풍 정원도 말과 글로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누구 하나, 와 아름답다 멋지다 라는 탄성 한마딜 내지 못하고 고요히 바라다만 보았습니다. 저도 그 조화가 깨질 것만 같아 숨죽이며 조용히 바라봅니다.
단풍나무 키가 보통 15 내지 30미터인데 그 큰 키를 목을 젖히고 올려다 보면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몇 그루의 손톱 크기만한 잎사귀들이 새빨간, 오렌지, 노오란, 연두, 녹빛으로 겹치어 하늘에서 내리는 별꽃 레이스로 펼쳐집니다.
단풍의 물듬에도 격이 있습니다 공작처럼, 무도회의 넓다란 드레스처럼 커다란 스케일로 펼쳐지는데 오랜 연륜 켜켜이 쌓인 품위와 격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천년도 넘어 전 6세기, 백제가 일본에 그 정원을 전수해 주었다고 하여 전에는 그걸 자랑도 했습니다만 이젠 그 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여러 종을 연구 개발하여 가장 알맞은 것으로 위치와 모양, 물 흐름, 전체 조경 디자인까지 완벽하게 천년의 세월, 흐트림 없이 유지 관리 발전시켜 온 공이 크다는 걸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흘만에 지는 봄꽃보다는 길지만 지는 잎이 애처럽고 이 가을 끝, 딴 세상만 같은 이 생명의 조화가 떨구어져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위대한 神과 인간의 합작품은 사진에 담아지지도 않습니다. 몇 해 전 카메라를 잃고는 핸폰을 어설프게 누르며 가슴 깊이 새길 뿐입니다.
이리저리 고단했던 타국의 긴 한 해 끝, 이런 극상의 아름다움이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에 감격하며 언젠가 그 단풍잎 하나하나의 마음을 조금 세세히 써볼 여유가 있기를 바랍니다
홀로 보기 아깝고 두고 가기 아까운 별꽃
두고 가기 진정 아까운 이 세상
콘카이코묘지의 끝없이 펼쳐지는 단풍 모미지 - 2015 12 5
콘카이코묘지金戒光明寺의 하늘로 올려다 본 오색 紅葉
아라시야마嵐山의 산을 물들인 모미지와 카쯔라桂 강 - 2015 12 1
아름다움이 있는 곳엔 늘 한 줄의 詩 단가가 새겨져 있다
요새로 만든 곳의 긴 개울에 늘어진 紅葉 - 2015 11 28 키타노텐망구 교토
-------------------------------------------- 이승신 시인, 에세이스트, 손호연단가연구소 이사장 이대영문과 와싱톤 죠지타운 뉴욕 시라큐스 대학원, 교토 동지사대 재학중 방송위원회 국제협력위원, 삼성영상사업단, 제일기획 제작고문
저서 -치유와 깨우침의 여정, 숨을 멈추고, 오키나와에 물들다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그대의 마음있어 꽃은 피고 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