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에 쏟아낸 詩心, 열도의 심금을 울리다
시집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펴낸 이승신 시인
“문학 작품의 정수인 시詩가 나라와 나라를 가깝게 이어주는 아주 좋은‘문화 외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저의 시집이 한·일간에 그 계기를 열 수 있기 바랍니다”
새 시집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서촌 발행)를 펴낸 시인 이승신
예술공간‘더 소호’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스무번째 저서이자 4번 째 시집을 펴내며 활발한 저술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특별히‘일본 동북지방의 대재난에 부쳐’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 국민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저도 깊은 슬픔을 느꼈고 그 마음이 그 순간에 250여 수의 시로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 작품 중의 일부가 일어 단가로 번역되어 일본의 주요 일간지인‘아사히 신문'과 중앙일보에 실렸고 나머지 시도 보내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신문사에 쇄도했다. 신문사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나머지 작품들을 보내주다 책으로 펴내게 되었다.
한글로 지은 짧은 시편들을 전통시인 단가의 운율로 번역한 것이다. 단가는 하이쿠俳句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 시 형식인데, 발음으로 5·7·5·7·7의 5구절 31음音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외국어로 된 시를 일본어 단가로 바꾸어 단가집으로 나온 것은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국내에는 단가 시인이 한 분도 없고 더욱이 모국어인 한글로 된 단시를 일본 단가로 바꾸는 작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번역 전문가들의 이야기였지요. 그러나 단가로 해야 더 큰 감동이 있다는 일본 단가 권위자의 말에 한국과 일본 문학인 그리고 지인 여러분들의 수고로 마침내 해내었고 200여수의 단가시가 한일 양국어로 담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의 감격은 자신의 시를 단가로 번역하여 책을 펴냈다는 것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 2003년 타계한 어머니 손호연 시인이 평생 해온‘시를 통한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잇게 되었기 때문이다. 손호연 시인은 국내 유일의 단가 시인으로 일본 천왕의 초청을 받을정도로 일본 내에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어머니가 일어로 단가시를 지은 것을 제가 우리 말로 번역해 알렸는데 이젠 거꾸로 제가 모국어인 우리 말로 쓴 시가 일어 단가로 번역되어 시집으로 나오게 된 것이지요. 기연이라 할 수 있지요 "
일본에 앞서 국내에서 먼저 출간된 이 시집은 국내 독자들이 우리 말 시만 읽어도 긴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어디에 해일이 지진이 지뢰와 전쟁이 있을지 몰라 어디에도 도망을 칠 수가 없다'
'삶에 나라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그러나 봄이 없는 겨울은 없다'
'다 쓸려간 마을에 무슨 꽃이 피랴 싶어도 그대의 마음 있어 꽃은 피리라'
'아파하지 말아요 삶이라는 상처를, 인류가 그대에게 위로받고 있어요'
'오늘 나는 미야기의 그대 생각을 한다, 하늘에서 슬퍼하실 어머니를 생각한다'
今日吾 は宮城の君に思いせ空で悲しむ母をも思う
시인이 이웃 나라의 슬픔을 위로하고 한·일 양국의 우호를 강조하는 것에 누가 반대를 할 것인가. 하지만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인에 대한 민족 감정 측면에서만 보면 이 시집은 미묘한 시선을 받을 수 있다
“독도는 역사적 자료를 보나 과학적 증거로 보나 우리의 땅입니다. 소수의 정치인이 주목을 받기위해 그런 주장을 하지만 양식 있는 일본인들은 그런 말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시어로 등장하는 ‘무궁화'를 ‘한국의 국화 韓國の國花’라고 표기했다. “우리는 벚꽃이 그들의 꽃인 줄 다 알고 있지만 그들은 무궁화가 일본 전국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데도 우리의 국화인 줄 모르고 있어 알려주고 싶었다"라고 했다
그는“일본의 국시로 우러름을 받는 단가가 1400여년 전 도래인(渡來人·백제 이주민)에 의해 전해진 것"이라며“그러한 사실을 한·일 양국민에게 알리고 있다"고 했다. 나까니시 스스무 교토시립예술대 총장 등 양식 있는 일본 문학인들은 일본의 최초 문학집이요 단가집인, 만요슈萬葉集를 백제인들이 짓고 만들었음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천왕의 스승인 나까니시 스스무선생은 이번 책에 “이 감동의 시편을 보며 국경을 뛰어넘어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시의 힘을 나는 크게 느낀다"라고 상찬했다.
이승신 시인은 “일본인들이 천 년이 넘는 전통시인 단가를 오늘날에도 학교와 언론에서 배우고 낭송하고 즐기는 것을 보며 묘한 감회를 느낀다”며 “그러나 이 시편들은 꼭 대재난을 맞은 지역의 분들만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이웃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모든 분들에게 그리고 내 마음에 전하는 내 마음이기도 합니다"라고 했다.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