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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 東海 '손현덕 칼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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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0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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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경경제                                   2021 7 28

 

동해 東海


       ⩥ 고시엔에 울려퍼진 동해 바다

      단가 시인 손호연의 동해
      평화와 공존의 바다를 두고
      여기선 반일, 저기선 혐한

             


2010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1Q 84'를 누르고 베스트셀러가 된 이와사키 나쓰미의 '모시도라'. 만약이라는 뜻의 '모시もし'와 드러커의 일본식 발음 '도라ドラ'를 합쳤다. 우리 말 번역은 '만약 고교 야구 여자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내용은 간단하다. 일본의 한 고등학교 야구부의 매니저를 맡은 미나미란 여학생이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읽고, 그의 경영이론을 야구부 운영에 접목시킨다. 그 결과 만년 꼴찌 팀이 고시엔甲子園 대회에 진출하는 해피엔딩 스토리. 그러면 그렇지. 내 나름 엉터리 결론을 내렸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고시엔. 야구의 성지聖地이자 청춘의 희망이다.

지난 3월 이른바 봄 고시엔 대회에 '모시도라' 같은 청춘소설에나 나올 법한 기적이 일어났다. 4000개가 넘는 일본 고교 야구팀 중 전체 학생 수가 131명인 교토 국제고가 본선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이 학교는 해방 후 2년이 지난 1947년 교토 조선중학으로 시작한 한국학교지만 지금은 학생 거의가 일본 국적이다. 학생 수가 70명 정도로 줄어들자 아이디어를 낸 게 야구팀 창설이었다. 고시엔 대회엔 독특한 규정이 하나 있다. 교가를 부른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교토국제고 교가가 한국어로 되어 있다.

동해바다 건너 / 야마토大和  땅은 /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 아침저녁 몸과 덕 / 닦는 우리는 / 정다운 보금자리 / 한국의 학원

고시엔 구장에서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교가를 부른다. 한국어 발음은 서툴지만 당당하다. 동해바다로 시작되는 교가를 부르는 걸 불편해하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었다. NHK가 자막으로 동해바다를 '동쪽의 바다'로 번역해 내보내고 교토국제고의 뿌리를 알게 된 일부 일본 팬들이 '죽창가'를 부르는 한국으로 가라고 야유를 보내는 건 참으로 속 좁은 처사이나 학생들은 그런 거에 신경 쓰지 않는다. 스포츠는 스포츠다.

일본에는 단가短歌라는 짧은 시詩가 있다.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단가 시인으로 활동하다 1 8년 전 작고한 손호연 씨. 한국 사람이 왜 일본 시를 쓰느냐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한반도에서 전해 준 백제의 혼을 지키겠다는 소신으로 시를 쓴 손호연이다. 그녀의 시를 좋아했던 아키히토 일왕의 초대를 받아 한복 곱게 차려 입고 왕궁에 들어가기도 했고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한일정상 회담 때 그의 시를 낭송하며 그 평화 정신을 이야기 하기도 했으며 아오모리엔 높이 3 m 가까이 되는 그의 시비도 세워져 있다. 한일 양국 간 상호 이해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에선 문화 훈장을, 일본에선 외무대신 표창을 받았다.

그의 장녀로 2대 째 단가시를 이어오고 있는 이승신 시인은 15년 전 쯤 도쿄 긴자에 있는 갤러리에 들렀다가 우연히 오카노 고지라는 화가를 만나게 된다. 그에게 어머니의 시 중에 마음에 드는 걸 골라 그림으로 표현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카노 고지가 고른 시가 바로 '동해'였다. 한 점 부탁에 넉 점이나 그렸다.


            다 같은 바다
            나라에 따라 이름이 다르네
            여기서는 동해 저기선 일본해


도쿄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외교 참사라 하기엔 민망하기 짝이 없는 해프닝이 생겼다. 상대국 지도자를 겨냥해 성적 표현을 한 일본 공사의 발언이 문제였지만 그의 방정맞은 입을 핑계로 대통령 방일을 취소한 것도 마음 편한 건 아니다. 반일몰이, 혐한몰이 하는 정치에 질리고 그러면서도 추후 교섭의 여지를 말하는 외교가 얄밉다.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를 이루고 공존공영하자는 올림픽 정신. 우여곡절 끝에 열린 도쿄올림픽이 바로 한국과 일본이 마주하고 있는 동해東海다. 교토국제고 학생들이 꿈꾸고, 손호연과 오카노 고지가 안타까워했던 그 공존공영과 평화의 바다.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어쩌면 한일관계를 정상으로 되돌릴 마지막 기회를 저버렸는지 모른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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