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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 조회 5816
  • 2013.10.03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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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번 째 만남                                          2013    9   28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명동성당의 최인호 장례 미사는 엄숙하고 평안하고 아름다웠다

둘러 보니 안성기가 보이고 배창호가 보였다

그들의 만감이 서리듯 슬퍼하는 표정을 보자 좀 더 슬퍼졌다

 

미사가 다하자 그의 관이 내 앞을 스쳐갔고 따라 나오니 유난히도 긴 리무진 속에  길게 넣었다

차 앞을 살짝 붙잡고 들여다 보니 유리 속 좌석에 꼭 살아 있는 것만 같은 영정 속 최인호가 빙긋이 나를 보고 웃었다   세번째 만남이다

 

처음 보았던  그 미소는 2007년 12월 20일

오랜만에 펼쳐 본 카렌다 북에 그가 써넣은 날자이다

 

젊은 PD를 붙잡고 한류의 원조가 손호연 시인이라고들 하니 그의 러브 스토리를 KBS 드라마로 만들어 보자고 기획을 만들어 준 지가 오래 되었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이면 독도 사건이 터지는 등 일이 벌어져 미뤄지기를 여러 해, 세월이 지나 어느 날 그가 KBS 부사장이 되었다

하루는 최인호가 구상해 만든 드라마는 성공이니 그가 하자면 되는 것이라고 하며 최인호와  KBS 일급 다큐 카메라맨들 일당 다섯이 나를 찾아 왔다

 

최인호라

미국서 전에 서울 집에 올 제마다 '가족' 시리즈를  본  재미며  TV 방송 일로 정부가 초빙해 한국에 귀국했을 제에  동생이 느닷없이 누나, 문학으로 성공할 수 있어?   할 제도 아이 뭘 ~ 하며 퍼뜩 떠오른 것이 전혀 본 적도 없는 최인호의 글빨이었다

그런 이야기 만도 벅찬데  나는 그 때 어떻게든 처음 보는 최인호를 설득을 해서 손호연 한류 드라마를  KBS에서 만들 근거를 만들어 손호연의 깊은 사랑의 마음을 전해야 했다

 

그의 어려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평양 출신의 변호사였다는 걸 어디서 보고 그의 좋은 머리가 그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닐까 혹 평양 출신의 변호사인 나의 아버지와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저녁을 들며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고 서로의 아버지가 가셨으니 확인할 길도 없는데 아무렇게나 입고 오려는데 마침 자기 집 아래 층에 살고 있는 서울고 동기 친구가 그 대단한 분을 만나려면 옷을 예의바르게 차려 입고 가야 한다고 해서 일부러 집에 도로 가 자켓을 입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예의가 3분을 채 가지 않았다

 

전에 이화를 다녔다고 하니 히히거리며 자기가 글을 처음 쓴 동기가 예전에 이화여중 다니는 눈부신 여학생을 보았는데 자신을 도저히 그의 눈에 띄게 할 도리가 없어 궁리해 낸 게 글을 잘 써 유명해지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났고 그 때부터 열심히 쓰게 됬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게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그런 한 두 나라 말을 더 하더니 그 쪽 방향으로만 계속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왜 손호연 드라마를 만들어야만 하는가를 부드럽게 말했고 그는 연방 승신씨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를 히히거리며 수시로 읊었다

 

분위기를 바꿔 본다고 옆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고 부사장이 건네 준 다음 해 카렌다를 뺏더니 첫장을 열고 북북북  연필로 나를 스케치해 '사랑하는 이승신'  2007 12 20  최인호라고 썼다

장난기에다 도시 그에겐 심각이라곤 없어 보였다

 

부사장이 설득이 되려면 최인호가 설득이 되어야 하는데 서울고 친구의 코치까지 받고  왔다는 이가 저리 막무가네로 나오니 아예 하고 싶은 문학 이야기나 할 걸 싶었다

나머지 네 사람은 우리 둘의 방향을 말 없이 관전하고만 있었다

 

 

늦게사 일어나 어머니의 시집을 건네니 놀라며 아 신문에서 그 이야기를 보았어요 하며 처음으로 다소곳해지더니 자료를 더 달라고 했다

백제 이야기를 그리 많이 썼는데 또 써야겠구만 이라고도 했다 

 

그리고는 곧 2008년이 되었고 최인호 침샘암이라는 희귀한 이름의 병명을 기사로 봤다

주위를 웃기는 유쾌함과 우려가 교차 되었다

 

4년이 지났고 교보 영등포점에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사인회가 있다고 해서 갔다

나는 한국어 일어로 된 시집을 내느라 지쳐 있을 때였는데 꼭 한마디 해주고 싶어 긴 줄에 섰다

그는 나를 곧 알아보았고 경쾌하게 포옹을 했다

 

바짝 마르고 한 여름에 목도리를 두른 게 애처로웠지만 천진난만한 눈빛은 그대로였다

제발 생명을 위해 고만 쉬고 이리 두꺼운 책일랑은 이제 고만하라고 에스커레이터를 몇 칸 타고 내려와 그가 주차한 데까지 같이 걸으며 애원을 했다 

응 응 ~ 

어머니 말년에도 그 말을 듣지 않으셨듯 듣지 않을 게 뻔하지만 제발 그 탁월한 재능과 영성을 세상이 조금은 더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잃으면 우리만 손해다

 

귀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작가 정신을 끝까지 불태우다 갔다고 하지만 아쉬울 뿐이다

그가 가자 신문에는 연일 시인 소설가 문화부장 문학기자 연예인의 오랜 인연이 대서특필이다

나는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이지만 그 순박한 마음과 영성을 느끼기엔 충분히 진한 시간이었다

 

그에게 위로와 희망을 얻었던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 아직도 성당 속에서 서성이는데 나는 먼저 나와 그를 실은 길다란 리무진 속에서 예의 환히 웃는 그의 좀 젊은 얼굴을 한동안 마주 했다

유리를 사이로 이승과 저승이었으나 결국 같은 거였다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사랑합니다  가 들려온다

 

아  그가 짧은 생에 주님을 보았다는 순간까지 수 없이 글로 전하려던 메세지가 그거였구나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어느 해 예수 오기 닷새 전 제발 깨달으라고 귀가 따갑게 그가 들려준 말을 그 순간 나는 돌려 주었다

 

눈물 어린 화안한 미소와 함께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즈땜므

                   사랑해요

                   삶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결국은 사랑이다

            

 

 

 

    


두 번의 만남 -  2007  12  20  과  2011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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