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서쪽 문 '영추문'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 가을의 서촌 산책
완연한 가을인데도 무지막지했던 그 더위가 잊히지 않는다.
나무가 많은 집뒤 인왕산 둘레길이나 가까운 수성 계곡을 가면 기온이 조금 내려가지만 그래도 넘치게 더웠다.
그래 이 짧아서 애처로운 가을을 누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내 한 복판이요 사대문 안인데도 오랜 세월 서울 속 시골로 치던 서촌이 몇 해 전부터 고층 아파트에 진력이 났는지 몰려들 오고 있다.
한옥 마을이 얌전히 있고 4층 고도제한이 있어 주민들은 불만이나 고즈넉한 분위기에 옛 모습이 비교적 그대로 있고 낡은 부분도 여전히 많으나 그게 좋다고 오고 있는 듯 하다.
20여 년의 미국서 오니 어려서부터 지내온 서촌 마을이 거의 그대로여 반가웠다. 그런데 초 중 고가 가까이 걷는 곳이어 친구들이 있었는데 하나 같이 강 건너로 가버렸다. 이 동네 집을 팔아 당시의 강남은 쌌는데 그걸 살 여력도 없는 이들만 이 마을에 남아 있는 듯 했다.
어머니는 평수로 봐서 그건 아닌데도 아버지 갑자기 가시고 우리 형제들은 다 미국 공부여서 홀로 커다란 한옥 집을 덩그러니 지키셨다.
아마도 아버지와의 사랑의 추억, 아이들이 어려서 자라난 그 기억을 버릴 수 없어 자고 나면 치오른다는 강남을 마다하고 약한 몸에 힘겨운 수리 관리를 해오며 겨울이면 샛바람으로 추워지는 그 집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차마 떠나지 못 하는 그 심정을 시로 쓰기도 했다.
종로구는 예전에 궁궐 옆에들 모여 살아서인가 작게작게 구획을 잘라놓아 사직동 효자동 필운동 통인동 통의동 내자동 누하동 누상동~
동 이름이 수없이 많다.
지극한 효자가 살았는가 효자동 정도는 알려졌으나 수십 년 넘게 살아온 필운동은 안 알려져서 워싱톤 뉴욕 살 때 5개 신문에 칼럼과 에세이를 쓰며 그리운 고향의 필운동 이야기를 꽤 쓰기도 했다.
첨에는 강남으로 많이들 가 집값은 버쩍버쩍 오른다는데 엄마만 한겨울 추운 한옥에 계시니 답답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고층 아파트가 사방 팔방으로 지방까지 아파트 공화국이 되는 걸 보며 옛 모습을 바꾸지 못 해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한 이 마을이 새삼 정겹고 고맙기까지 하다.
당시는 사업들 한다고 가장이 밤늦게 귀가 하던 때인데 5 16으로 관에서 내려와 책상 두개로 법률사무소를 차린 아버지 만은 일에서 일찍 오셨고 우리와 저녁을 하고는 사직 공원 등 동네 산책을 하셨다.
그 기억이 떠오르며 동네 산책 길을 나선다.
경복궁의 네 개 대문 중 하나인 서쪽 영추문迎秋門 쪽을 향한다.
내가 잘 걷는 길 중의 하나다.
광화문 일대는 거목 가로수들이 사라져 슬프나 여기는 엄청 키큰 플라타나스 가로수들이 어려서 본 고대로 서있고 경복궁 옛 담장을 끼고 한 5백여 미터, 내 앞으로 다가오는 잘 생긴 북악산을 바라보며 걷다 우측으로 들어서면 청와대로 연결되는 고급 진 길이 된다.
오늘은 전동차에 여덟 외국인이 자전거 밟듯 발을 열심히 돌리며 지나간다. 못 보던 새 모습의 차가 오래된 길을 달리니 신선하고 참 보기 좋다.
영추문은 '가을을 맞이한다' 는 뜻으로 과연 이 계절에 딱 맞는 사랑스런 이름이다. 그냥 지나던 그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언젠가 고건 총리, 송복 선생과 점심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영추문 바로 앞에 공원을 자신이 총리 때 만들었다며 그 문 이름의 뜻을 말해 인상에 남았다.
'통의동 마을마당' 이라는 이름의 아담한 그 공원은 벤치에 앉아 느긋이 책 보기에 좋고 주말에는 음악 공연도 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꽤 이름이 난 역사 깊은 메밀국수 집도 있다. 청와대 구경한다고 하루 5만 명이 몰려 올 때에 줄 서던 곳이다.
청와대로 이어지는 고풍스런 이 길을 걸으면 워싱톤 살 때 그리던 고향을 지금 내가 걷고 있네, 이게 꿈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서울의 모든 거리가 고풍 고급 신선함 아름다움이 한꺼번에 다 있는 이런 수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날의 그대가 생각이 나네
꽃 돗자리 마루에 펴고
더위를 식히던 저녁 한 때
손 호 연
영추문 맞은 켠의 작은 마을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