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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간 이중섭

  • 조회 332
  • 2024.07.0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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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편지화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마흔에 간 이중섭

 

 

화가 이중섭이 일본 아내와 함경도 원산에서 남으로 내려와 부산에 있다가 한국 전쟁이 나자 제주로 까지 갔고 피난 통에 어려우니 두 아들과 아내를 일본 친정으로 보낸 후 그리워하다 급기야는 서울 적십자 병원에서 숨졌다는 건 알았으나 그때가 겨우 마흔이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국민 화가로 불리우는 그를 떠올리면 그저 측은하고 가엾은 마음이 드는 게 사랑하는 가족도 멀리 떨어뜨려 놓고 자신도 영양실조에다 종이나 캔버스를 구하지도 못한 가난 이미지에 애석하게도 너무나 일찍 생을 다한 것도 한 몫을 한다.

 

몇 살에 숨을 다했는지는 생각을 못 하고 집 가까이 서대문 적십자 병원을 지날 때면 저기서 그 화가가 가족도 못 보고 외로이 갔다지 하며 그를 떠올렸었다.

 

<시인에게는 '요절의 특권' 이라는 것이 있어 젊음이나 순결함을 그대로 동결한 것 같은 그 맑음이 후세의 독자까지도 매혹시키지 않을 수 없고 언제나 수선화와 같은 향을 풍긴다>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말이다.

 

내가 교토의 동지사 대학을 가지 않았다면 사는 서촌 동네의 잠시 머물었던 그의 하숙집 정도만 알았을 것이다.

옷가지와 책 몇 개만 들고 공부하러 간 동지사 캠퍼스 한 가운데 아담한 윤동주 시비가 서 있어 늘 지나고 바닥을 닦으며 급기야 그를 연구하다 알게 된, 그가 간 후 그를 흠모하여 일본에 알린 여성 시인이다.

 

같은 인물의 우수한 작품이라도 길게 장수한 것 보다는 요절을 해야그 순수함과 순결한 아름다움이 영구히 박제되게 된다는 말이다.

27 살에 간 윤동주의 죽음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요절로 그 대학에 가서야 뇌리에 그게 깊이 입력이 되었다.

 

허나 100세 120세를 운운하는 이 시대에는 생각하면 마흔도 더구나 이중섭 같은 천재에게는 요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먹을 것도 그렇게 그리고 싶던 종이도 캔버스도 없던 시대에

작품을 팔아 아이들과 아내를 보려 일본을 가려던 기대로 열었던 첫 개인전도 실패해 가보지 못한 생각을 하면 마음이 저리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그의 국내 전시에 빠짐없이 갔고 이번에도 부암동 석파정 서울 미술관의 편지화 전시를 보았다.

 

지상에 대대적으로 난 거에 비하면 조촐한 전시다.

두 아들에게 글도 종이 주변의 그림도 차별없이 똑같이 쓰고 그려서 보낸 것이다. 미술관에서 큰아들 태현에게 지난 해 샀다고 한다.

 

그걸 편지화라 하여 3 점이 있고 손바닥보다 자그마한 엽서에 그린 구상과 기하학적 6점이 다다.

 

그러나 작은 편지지에 그리움이 꽉 찬 사무친 사랑의 말과 빈틈 남기지 않고 사방에 그린 펜화에 색깔을 조금 넣은 즉석의 그림들은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의 그 요절함이 안타깝기만 하다.

 

시인 어머니의 편지도 떠오른다.

대학 졸업 후 워싱톤에 유학을 가자 비싼 국제 전화는 거의 못 하던 때에 서울 어머니에게서 정겨운 편지가 왔다. 

항공우편이라 해도 오는데 열흘은 걸렸을 것이다.

 

내가 차 타고 가 부친 편지 생각은 나질 않는데 북쪽 Upstate New York 살 때 눈을 밟으며 한 30분 걸어가 어머니에게 자주 편지 부치던 생각은 뺨을 스치던 찬 공기와 함께 난다.

 

얼마나 힘들다는 말을 내가 많이 썼으면 '인생은 고해다~ ' 로 시작한 어머니 편지 생각이 또렷이 난다.

 

어머니가 시인인지도 잘 모르던 때에 내가 보낸 편지는 지금 없지만

어머니의 편지는 미국에서 이사를 다녀도 한국에 귀국할 때에도 들고 온 걸 보면 내게 큰 힘이 되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한다. 단아하게 정성들여 쓴 그 편지들은 작은 장 속에 지금도 있다.

 

그 생각이 난 건 20 년 전 어머니 갑자기 가시자 일본의 역사 제일 깊은 출판사 고단샤에서 7권의 시집과 전기집을 출간했는데 그 담당 편집장이 여러 해 받았던 두툼한 편지 박스를 주며 어머니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책으로 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귀국해 한 번도 안 열어 본 어머니 편지 생각이 났다.

도우미가 어머니가 밤 늦게까지 편지를 쓰신다고 늘 걱정을 했다. 

일생 한국에서 글을 써도 한국 독자는 없던 시절, 빙점을 쓴 미우라 아야코를 비롯한 일본 팬들 편지에 일일이 답을 한 것이다.

 

편지라~

유명 화가 유명 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 쓰던 그 순수한 시대가 그립다.

 

 

 

 

 

 

 

 

        큰 아들 태현에게 쓴 편지 양피 잠바를 입고 팔레트와 붓을 든 - 1954년

 

 

 

 

 

기하학적 엽서화

 

 

 

 

이중섭 전시회 때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 山本方子 19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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